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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7. 2022

능력 제일주의가 불러온 오만함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

혼자 힘으로 성공한 아이가 보여준 노력과 그 결과로 얻은 수조 원의 재산과 명예는 당연히 그 아이 것이다. 전통적인 견해는 아이의 능력과 성실성의 대가이기에 아이는 응당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도덕적 임의성 개념은, 해당 개인이 태어난 시대와 그 사회가 그 개인의 자질과 특성을 요구하기에 성공했다. 이처럼 우연적 요소 때문에 부와 명예가 돌아간 것일 뿐이다. 따라서 그 개인이 그러한 부와 명예를 당연히 받을만한 어떤 도덕적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공정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정은 샌델의 저서 제목처럼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표현이 맞다. 더욱이 능력만 있으면 성공한다는 신화는 능력주의를 맹신하게 만든다.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좋은 대학을 진학해야 하고, 이것을 위해 스펙 쌓기 등 다양한 편법을 동원한다. 다양한 과외활동을 하거나 대학 입시에 좋은 평가를 받는 자격을 갖추는 것도 있는 집안에서야 손쉬운 일이다. 그렇지 못한 집안 아이와 비교하면, 있는 집안 아이는 출발선이 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법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상황이 공정한가?


우리 사회 지도층 자녀의 스펙 쌓기가 위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논란이 뜨겁다. 설혹 그것이 법적으로는 문제없다고 해도,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집안의 아이라는 자체가 이미 도덕적 임의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이 롤스와 샌델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물론 법망을 피하거나 위배하면서 만든 경쟁의 불공정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능력이 없어 실패한 당신은 루저다!!"

샌델은 능력주의의 신화가 가진 한계를 통렬하게 지적한다. 지금처럼 능력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는 모든 성공과 실패를 오직 개인의 능력만으로 판정한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거나 서울 시내의 명문대학을 진학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 된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못했고, 공부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개인의 잘못이다. 노력하는 성격조차 우연히 갖게 된 것임에도 노력하지 않은 것도 개인의 잘못이다. 재능이 없고, 능력이 없고, 성실하지 못한 성격도 본인 잘못으로 귀결된다. 


운이 좋아 성공한 것까지 모두 자기 능력이라 말할 수 있는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조기교육을 받아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예가 허다하다. 그렇게 해서 받은 명문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평생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진짜 개인의 능력인가? 샌델은 이런 특권을 평생 독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한가 하고 묻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명문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일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재능이 있고 성실하다. 그래서 나는 성공했다. 법을 지키고 규칙도 준수했다. 오로지 내 노력만으로 일군 성과라 당연히 내 것이다.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성공과 수조 원의 재산은 내 능력의 보상이기에 누구도 시비할 수 없다. 나는 능력을 갖춘 ‘정의’와 ‘공정’의 모범이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말한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능력이 없어 실패했다. 당신은 루저다!!!‘


운을 인정하면 겸손해진다. 

샌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과연 그들의 능력과 성공이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결과인가? 능력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는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가? 능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회는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진 사회다. 오만하고 거만에 찬 엘리트들이 금융가를 야기하고 부를 대물림하면서 승승장구한다. 자기 능력이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결과로 착각한다. 이런 오만함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멸시하게 한다. 


이렇게 샌델은 능력주의를 공정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능력과 공정을 결부하지 않고, 행운을 인정한다면 엘리트는 생각은 바뀔 것이다. 성공한 엘리트는 자신의 성공에 행운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일 것이다. 자신의 노력에 엄청난 보상을 주는 사회를 만난 것이 큰 복이라 생각한다. 성공한 사람도 이렇게 한결 겸손해진다. 그는 행운을 만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하고 나의 몫을 기꺼이 나눠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결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롤스와 샌델이 말하는 공정은 과연 현 사회가 말하는 능력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엄연히 출발선이 다른 아이들을 놓고 그들의 능력의 우위만으로 과실을 배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또 우연히 좋은 환경과 좋은 머리를 물려받은 사람의 능력을 전적으로 노력의 결과로만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렇다고 타고난 우연에 의한 능력마저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재능이 사장되고 사회발전은 퇴보할 수 있다. 재능 있는 사람의 성과를 인정하면서 그들의 성과 일부를 사회 전체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방안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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