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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7. 2022

승률 14%와 긍정의 배신

늘 지면서도 다음을 기대한다.        

“형님은 매번 지면서도 무얼 무슨 믿고 그리 큰소리칩니까?”하고 후배가 묻는다.      

“왠지 다음에는 꼭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어”라고 나는 천연덕스레 대답한다.


요즘은 일이 바빠 뜸하지만, 한때 가까이 사는 후배들과 가끔 스크린 골프를 즐겼다. 승률을 따져보니 내가 이긴 게임이 고작 14%에 불과하다. 오랜만에 얼굴 보고 대화하며 게임을 한다. 주로 점심 내기를 했다. 내게 '어점김'과 '어꼴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어차피 점심도 내 차지고, 꼴찌도 내 것이다. 유난히 허리가 잘 도는 날은 내가 이긴다. 그런 날은 흔치 않다.

     

긍정은 자주 나를 배신한다. 기다려도 승리의 신은 오지 않는다. 시나브로 패배만 늘었다. 다음에는 꼭 이길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골프 신이 강림한 날 몇 번 이긴 짜릿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그분이 자주 나를 찾지 않아도 좋다. 그분을 숭배하는 내 마음은 변함없다. 이제나저제나 오시려나 해와 달을 보고 빌어본다.


마틴 셸리그만(Martin Seligman)의 『긍정 심리학』은 긍정적인 심리가 개인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말한다. 자신감, 희망, 신뢰 같은 긍정감은 불행이나 시련이 닥쳤을 때 큰 힘을 준다.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불행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셸리그만은 주장한다.      

     

행복은 거창하고 큰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 사랑, 자녀 양육, 여가 활동 등 생활 속 어디든지 행복은 널려 있다. 누구나 자신의 장점과 미덕을 알고 개발하면 그것들을 찾을 수 있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는 훈련을 하면 된다. 글 쓰기, 책 읽기, 가을 산 오르기, 음악 듣기 등등 손 닿는 곳마다 행복이 있다. 그것을 만지고 즐기고 느끼면 된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자신의 어려움을 잘 극복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만나도 쉽게 낙담하지 않는다. 어려움도 자신이 잘 대처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에 집중하고 해결을 위한 모든 수단을 찾는다. 이런 노력은 결국 성과를 보인다. 이처럼 낙관적인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믿는다. 늘 행복한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이것이 긍정 심리학이 말하는 행복의 방법이다.       

     

긍정의 배신      

긍정이 좋은 것은 맞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긍정주의마저 좋은 건 아니다. 바버라 에런 라이크(Barbara Ehrenreich)는 근거 없는 긍정은 사람을 배신한다고 말한다. 지나친 낙관주의, 추상적인 긍정심리는 오히려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서 눈을 돌려버리게 한다. 현실을 냉철하게 보지 못하게 만들어 문제를 악화시킨다. 그녀의 저서 제목처럼 『긍정의 배신』이다.


에런 라이크도 긍정적인 마음이 행복감을 높인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지나친 긍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실을 찬찬히 뜯어보면 해결책이 있다. 그러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뼈를 깎는 실천을 동반하지 않으면 풀 수 없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잘 될 거야!!'하고 외치면 상황만 더 나빠진다. 이것이 에런 라이크가 말하는 지나친 긍정의 위험성이다. 

     

오늘도 긍정의 효과를 찬양하는 책들이 쏟아진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금방이라도 형편이 나아질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깨달음과 함께 의욕이 솟구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다는 자기계발서의 말은 달콤하다. 마치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긍정적이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로도 들린다. 매사 긍정적이어야 하고, 언제나 웃어야 한다. 우리는 과잉 긍정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현실은 냉정하다.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되는  아니다.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따라도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어난 문제가 구조적이고 제도적이라면 단순히 긍정적인 습관  가지를 바꾼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 의심조차 없애면 문제는  악화 있다. 맹목적 긍정은 언제든지 우리를 배신할 수 있다. 


그래도 긍정을 믿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된다는 일도 있다. 불가능은 엄연히 존재하고 세상일이 뜻대로 되는  아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말에 매몰되어 매사를 부정적으로 봐서는  된다. 내게 일어난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가능성과 실현가능성은 엄연히 다르다. 가능성의 긍정을 정확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실현가능성의 긍정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도 긍정을 믿는다. 14%의 승률이면 처음부터 같은 수준에서 경기해서는 안 된다. 무턱대고 긍정과 희망만 앞세우고 게임에 임했다. 준비되지 않은 긍정으로부터 배신당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다 잘 될 거라는 주술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매번 지면서도 다음에는 이길 거라는 근거 없는 긍정과 희망이 나를 즐겁게 만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의 말처럼, '희망은 가난한 이의 빵'이니까 말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라면 맹목적인 낙관은 위험하다. 게임이야 지면 어떻고, 이기면 뭐가 대수인가. 친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점심 한 끼 먹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다. 아무리 실력을 발휘해도 게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현격히 실력 차이가 나는 건 분명하다. 작은 긍정이 늘 나를 속이고 배신해도 전혀 불만이 없다. 이겨서 좋은 것이 아니라 만남이 좋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는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했다. 현실을 날카롭게 살피고, 낙관적인 의지로 행동해야 한다. 냉철한 이성을 동반한 긍정은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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