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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7. 2022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혹등고래

사진 출처 :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0448256&memberNo=38419283


센강의 길 잃은 고래 벨루가      

지난 8월의 이야기다. 프랑스 수도 파리를 흐르는 센강에서 길 잃은 벨루가(흰고래)를 발견했다. 벨루가의 고향은 아무리 가깝게 재봐도 센강에서 3천㎞가량 떨어진 노르웨이 북쪽 스발바르 제도다. 북극해에 사는 벨루가가 가을철에 먹이를 찾으러 남쪽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먼 길을 돌아 센강으로 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안타깝게도 기력이 탈진한 벨루가는 끝내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안락사했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 일본 작가 구보 미스미(窪美澄)의 장편 소설 『길 잃은 고래가 있는 저녁』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혹등고래가 떠올랐다. 구보 미스미의 소설은 2012년 제3회 야마다후타로상(山田風太郎賞)을 받은 작품이다. 


소설은 왜곡된 모성과 모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다룬다. 여기에는 유토, 노노카 그리고 마사코라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유토는 동생만 사랑하고 자신을 홀대하는 어머니로부터 상처받는다. 마사코는 어머니의 지나친 억압과 간섭으로 피폐해진다. 노노카는 자신이 어머니이면서 갓 난 딸을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비정한 모성을 가졌다.      


주인공들은 모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지나친 모성의 억압으로 고통받는다. 또 어떤 이는 스스로 모성을 버렸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이들을 죽음의 절망에서 구해내는 것은 길 잃은 향유고래다. 향유고래의 모성으로 이들은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는 것이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다.     

 

모성으로부터 받은 상처 

유토는 시골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형과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 출신으로 병약하고 섬세한 형을 더 사랑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은 유토는 어머니의 관심 밖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한테 꾸지람이나 듣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유토는 도쿄에 있는 삼 년제 디자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또 다른 주인공인 노노카의 회사에 취직한다. 경기가 나빠지자 회사가 부도의 위기에 봉착한다. 하필 그때 애인 미카오와도 헤어지고, 설상가상으로 가족 내 유일하게 자신을 지지해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신다. 마음 둘 데가 없는 마지막 짐을 정리하고 자살하려고 회사로 왔다. 


노노카는 어릴 적 천부적인 그림 실력으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학원조차 다닐 형편이 아니었다. 그녀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학교 미술부 고문 선생의 추천으로 히데노리의 학원으로 간다. 히데노리 학원에 다니던 그녀는 고등학생으로 덜컥 그의 아이를 가진다.    

  

지역의 유력한 정치인인 히데노리의 아버지는 서둘러 둘을 결혼시킨다. 원치 않은 결혼을 했다고 생각한 히데노리는 노노카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한다. 남편 히데노리는 그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게다가 시댁 식구들은 그녀가 가난한 집의 딸이라고 대놓고 무시한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갓난 딸을 두고 시댁을 뛰쳐나와 무작정 도쿄로 온다.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일한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번듯한 디자인 회사를 차린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지면서 밤낮없이 일했지만, 디자인 회사가 무너져간다. 가끔 자신이 버린 딸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일에 매진했다. 그런 보람도 없이 회사는 망해간다. 이런 상황을 버텨내기 힘든 노노카는 살아갈 용기를 잃는다. 그녀도 자살하려고 회사로 왔다.    

  

마지막이 될 뻔했던 두 사람이 회사에서 마주친 것이다. 막막한 심정으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 됐다. 두 사람은 길을 잃고 해안으로 들어온 고래 소식을 듣는다. 두 사람은 고래를 보기 위해 잠시 죽음을 미루고 남쪽 반도 끝의 바닷가로 간다. 출발하는 도중에 팔목에 자해 흔적이 가득한 소녀 마사코를 만난다.

      

마사코는 첫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둘째 딸로 태어났다. 마사코의 엄마는 또 딸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엄마의 숨 막히는 집착 속에서 마사코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같은 반 남자 에비와 친하게 지낸다. 그의 집에서 쌍둥이 여동생 시노부를 만난다. 엄마의 눈을 피해 자주 만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눈다. 마사코는 그곳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그 사실을 안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병원에 가서 임신 검사를 한다. 엄마는 마사코가 임신한 것이 아닌가 의심한 것이다. 마사코는 엄마의 억측에 충격을 받는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어느 날 밤 그녀는 사는 것에 크게 회의한다. 그녀는 커터 칼로 그녀의 손목을 그었다. 몇 차례 손목을 그었다. 한차례의 큰 소동을 벌이고 난 후 그녀는 조용히 집을 나온다.   

   

'모성'으로 인해 생긴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세 사람은 우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죽으려 한다. 그들은 길 잃은 고래를 보고 난 후 죽자고 말한다. 세 사람은 길 잃은 고래가 떠밀려왔다는 마을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는 고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마치 헤어날 수 없는 처절한 절망에 빠져든 세 사람의 모습과 닮았다. 해 질 녘의 바닷가의 향유고래는 상처 난 몸을 뒤척이며 가쁘게 잿빛 숨을 몰아쉰다.   

   

삶의 의욕마저 버린 그들이 안타까워서 일까. 죽어가던 고래는 다시 기운을 차린다. 자기가 살아야 세 사람도 산다는 것을 안다는 듯 향유고래는 힘차게 먼바다로 떠난다. 기운을 차리고 먼바다로 씩씩하게 떠나는 향고래를 보고 그들도 아픈 마음을 치유받는다. 그렇게 그들은 도쿄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혹등고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혹등고래가 자주 등장한다. 우영우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았다. 가난한 아버지와 엄청난 가문의 딸인 어머니 사이의 신분 차이가 그들을 멀어지게 했다. 아직 대학생인 그들은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아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낙태하려는 것을 아버지가 반대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인연을 끊고 아버지인 자신이 아이를 키우겠노라고 약속한다.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태어났다. 천재적인 기억력을 가진 그녀는 훌륭하게 자라 변호사가 된다. 그녀가 바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그녀는 어릴 적 엄마가 없는 것을 매우 슬퍼했다. 아빠는 엄마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할머니로부터 엄마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 후로 한 번도 엄마를 찾지 않는다. 그녀가 아직 엄마가 누구인 줄 모를 때 이렇게 말한다.    


“고래 사냥법 중 가장 유명한 건 새끼부터 죽이기야. 연약한 새끼에게 작살을 던져 새끼가 고통스러워하며 주위를 맴돌면, 어미는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대. 아파하는 새끼를 버리지 못하는 거야. 그때 최종 표적인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지는 거지. 고래들은 지능이 높아. 새끼를 버리지 않으면 자기도 죽는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래도 끝까지 버리지 않아. 만약 내가 고래였다면, 엄마도 날 안 버렸을까?”     


고래는 바닷속에서 사는 포유류다. 포유류가 태아를 낳아 어미가 젖을 먹여 기르듯 고래도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른다. 고래는 큰 덩치만큼이나 크고 강한 모성애를 가졌다. 우영우가 혹등고래를 좋아하는 것도 모성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의 말이다. 모성은 언제나 위대하고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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