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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27. 2022

나는 잘났다. 모두 내 것이다

오직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아이   

한 아이가 있다. 아버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어머니는 아이와 동생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다. 평범하다는 말에서 어디까지를 평범이라 보느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둘이고 직장 다니는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로 이루어진 집을 평범하다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특별히 궁핍하거나 쪼들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학원이나 사교육비를 마음껏 쓸만한 여유도 없다. 공립학교를 보내고 영어나 수학 기초 학원 정도 보낼 여유가 있는 가정을 평범하다고 말하자. 

               

이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수학이나 영어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 없다. 워낙 성실해서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집에 와서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했다. 딱히 사교육이라고 말할 만한 과외를 받아보지 않았다. 한마디로 성실성의 대명사요 스스로 공부하는 모범적인 아이다.              

  

덕분에 아이는 중학교 내내 전교 1등 자리를 차지했다. 시험이란 시험에서는 이 아이는 2등이라는 숫자를 꿈에도 본 적 없다. 공부의 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러니 부모님은 아이를 예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도 은근히 자부심이 넘치고 겉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속으로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했다. 학교에서나 주위의 칭찬을 독차지할 정도로 빼어난 아이다.                


당연히 특목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중학교 때 한가락하는 아이들만 모인 영재학교에서도 아이는 발군을 실력을 보였다. 시쳇말로 전교 1등 한 번 안 해본 아이라곤 없는 곳에서도 아이는 늘 1등이었다. 특목고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 형편이 부유했다. 아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부잣집이다. 그런 아이들은 학교 마치고 따로 특급 과외 선생과 공부하든가 소수 정예로만 운영하는 고가의 과외를 받았다.      

          

사교육이라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는 그런 집안의 아이들과 경쟁하면서도 늘 1등을 차지하는 아이를 보고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선생님도 아이의 실력에는 혀를 내둘렀다. 아이는 특유의 성실함과 재능만으로 최고의 자리를 고수했다. 재력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이 사교육으로 밀고와도 아이를 이길 수 없다. 공부의 신이자 지존인 아이는 어떤 편법 없이 오직 공정하게 실력을 입증했다.         

       

아이는 국내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미국 하버드대학에 입학했다. 그것도 4년 전면 장학금을 받으며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학부에서는 컴퓨터공학을 하고, 대학원에서는 요즘 가장 핫한 인공지능(AI) 분야를 공부했다. 인공지능의 딥러닝 알고리즘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전에 구글에서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연봉을 주겠다고 하면서 아이를 데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못 이기는 척하며 아이는 구글에 입사해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구글에서 3년을 일한 아이는 인공지능(AI) 분야의 유망 아이템을 갖고 창업했다. 창업하자마자 불어닥친 인공지능 열풍은 아이를 돈방석에 앉혔다. 단숨에 수조 원의 재력가로 올라섰다. 아이의 인생은 순풍에 돛을 달았다. 자본으로 넘쳐나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젊은 부자가 됐다. 남부럽지 않은 아이의 삶은 탄탄대로를 따라 성공 가도를 달렸다.                


아이는 단 한 번도 부정한 일을 저지른 적 없다. 한순간도 공정하지 않은 행동을 한 일이 없다. 성실하게 규칙을 지키고 법을 준수하며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했다. 이런 아이의 삶은 공정하지 않은가?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공정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아이가 성공의 과실을 독점하는데 문제가 있나?     

마이클 샌델 교수(Michael Sandel)는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2010.6)와 『공정하다는 착각』(2020.12)에서 새로운 관점에서 ‘정의’와 ‘공정’을 생각하라 주문한다. 그는 『정의론 무엇인가』에서 미국 정치 절학자 존 롤스(John Rawls)가 제안한 “무지의 장막”이라는 사고 실험을 소개한다. 롤스는 원칙을 정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자기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속할지 모른다고 가정하고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우리는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무지의 장막” 뒤에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 심지어 자신의 계층과 성별, 인종과 민족,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신념에 대해 전혀 모른다. 당연히 우리는 남보다 무엇이 유리하고 무엇이 불리한지도 모른다. 자신이 건강한지 허약한지, 고등교육을 받았는지 고등학교를 중퇴했는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아닌지도 모른다. 이처럼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야말로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원칙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합의한 원칙은 공정하다는 것이 존 롤스의 말이다.              

  

자유 시장경제는 평등한 사회인가? 샌델은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장기능은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법 앞에서 평등을 보장한다. 어느 정도는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임의적 요인을 제거하고 능력을 지닌 사람을 제대로 평가한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받은 상태에서, 소득과 부의 분배가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회균등을 인정한다. 적어도 신분제도가 엄격한 봉건제도나 카스트제도보다는 개선된 사회적 모습이다.     

           

자기 능력으로 성공한 아이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아이는 자본주의가 강조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그 대가로 성공이라는 과실을 독차지했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자신의 힘으로 기업을 만들었다. 그 대가로 그는 젊은 나이에 수조 원의 재산을 일군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능력주의의 혜택을 온몸으로 받은 실력자다.       

         

센델 교수는 다음과 같이 공정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던졌다. 자본주의의 시장경제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한다고 해도, 현실의 불평등한 분배나 불공정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좋은 교육을 받을 조건을 보장한다. 이런 사람은 남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교육 경쟁에 참여한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 아이들은 출발선이 남들보다 훨씬 앞에 있다. 아이는 운 좋게 처음부터 유리한 출발점을 차지한 것이다. 아이가 잘 못한 것은 없지만, 공정하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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