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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Jan 05. 2023

5. 독일 대학의 영광과 후퇴

중세에 설립된 대학은 이름을 유지했지만, 옛날의 화려한 명성을 누리지 못했다. 18세기 이후 중세 대학은 껍데기만 남은 채 신학자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은 정도에 불과했다. 역사의 일몰로 사라진 중세와 함께 중세 대학의 유명세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강자가 사라진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중세 대학의 둥근 보름달이 가득 찼다가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절대 왕정 국가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대학이 등장했다. 절대 왕정 국가의 탄생이 가장 늦었던 독일에서 새로운 대학이 먼저 등장했다. 17세에 이르러 독일은 30년 전쟁과 전염병의 창궐로 인구의 1/3 이상이 감소했다. 독일은 300여 개의 연방으로 쪼개지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독일의 여러 도시는 극심한 무력감과 경제적 침체에 직면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가 함께하는 것이다. 독일은 근대 산업 국가 초기의 혼란과 무질서를 기회로 국가 회생을 도모했다. 주요 도시들은 대학 설립을 통해 인구를 끌어들이고, 경제적 회복의 기회로 삼았다. 1737년 괴팅겐시의 괴팅겐 대학은 도시 인프라가 잘 갖추진 도시에 설립됐다. 도시 인프라가 잘 정비되어 있어 학생들의 생활비가 적게 들었다. 시 당국은 대학 설립을 통해 학문과 인재 양성이라는 명분을 얻었다. 동시에 외부에서 학생들이 진학함으로써 인구 유입에 따른 경제적 실리를 취할 수 있었다.      


독일은 중세를 가장 늦게 끝낸 나라지만,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근대적 대학의 설립을 선도적으로 추진했다. 중세 대학과 다른 새로운 대학의 수요를 잘 포착했다. 독일의 각 도시는 근대적 대학을 설립하여 자유로운 학문의 토론과 연구를 권장했다. 이를 통해 근대화의 이론적 기반 제공, 학생 유입을 통한 인구 증대 등의 경제적 실리를 동시에 추구했다. 정부와 교수, 학생과 지역을 연결하는 플랫폼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독일 정부는 대학을 통해 근대화를 위한 이론과 실천의 기반을 다졌다. 독일 대학은 강력한 근대국가 건설에 이바지했고, 대학의 지식이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독일에서 시작한 새로운 대학의 형태가 유럽과 미국으로 확산했다. 이후 대학은 중세 대학의 기능을 새롭게 재창출했고, 전문학교와 아카데미, 살롱 같은 교육기관의 역할을 흡수했다. 대학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갖춘 시민을 육성하는 훌륭한 교육 기관으로 거듭났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대학은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대학을 압도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잘 안 돼지만, 이 당시에는 유학을 간다 하면 유럽의 대학을 선택했다. 산업혁명의 성공 이후 미국의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놀라운 경제적 번영은 미국 대학의 혁신을 지원했다. 미국의 대학은 대학원을 도입하고 대학 조직의 혁신을 통해 대학 역량을 강화했다. 그렇지만,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여전히 유럽의 대학이 대부분 학문 분야에서 압도적인 주도권을 장악했다. 20세기 초반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현대 과학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 대학의 교수이거나 연구자였다.      


독일의 연구 중심 대학 모델은 미국, 일본, 러시아의 대학들에 큰 자극을 주었으며, 유럽 여러 나라도 독일 대학들을 관찰하고 모방했다. 교육과 연구의 통합, 새로운 연구 방법론 등은 세계 각국의 대학 발전 모델이 되었다. 대학의 지적 기반과 학문적 토양은 근대 국민 의식 형성에 이바지했고, 사회과학 과목은 효율적인 국가 운영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 시기에는 미국 대학원생들도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다. 


히틀러 정권이 등장하면서 독일의 대학은 큰 위기를 맞았다. 히틀러 정권이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은 여러 곳에서 극심한 피해를 주었다. 그중 하나가 대학의 몰락이다. 히틀러 정권은 대학에서 유대인 교수들과 직원을 축출했다. 그 바람에 유능한 교수와 인재들의 탈출이 줄을 이었다. 이중 상당수 고급 인재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은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지만, 독일 대학은 상당 기간 침체기를 겪으면서 인재 유출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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