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불도 다시 보고, 꺼진 사랑도 다시 보자

by Henry



술 권하는 사회

새벽 2시가 넘어 술에 취한 남편이 들어왔다. 아내는 남편을 다독이면 잠자리를 다듬는다. 그러면서 아내가 볼멘소리로 묻는다.


“원 참, 누가 술을 이처럼 권했나요?.”

“아무도 권한 사람 없어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남편은 말을 잇는다. “되지 못한 명예 싸움, 쓸데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 적으니… 밤낮으로 서로 찢고 뜯고 하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정신이 바로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지....”


한참 넋두리를 늘어놓던 남편은 답답하다며 한밤중에 또 집을 나간다. 밤이 깊었다고 말리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이 문을 나선다. 아내는 크게 낙담하며 말한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인 현진건(1900~1943)의 1921년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대화를 옮겼다. 매일 술에 절어 사는 남편과 이를 걱정하는 아내의 대화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 따왔다. 남편은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마친 유학파였다. 그런 그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일상을 그렸다. 말하자면, 일제강점기 우리 지식인들의 무력함과 고뇌를 담은 이야기다.


처음 그는 뭔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열심히 바깥출입을 했다. 집에 들어오면 정신없이 무슨 책을 보기도 하고, 밤새도록 뭔가를 쓰기도 했다. 그러다가 출입을 뚝 끊고 늘 집에 붙어 있다. 그러다가 자주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심지어 흐느껴 울기까지 했다. 또 한 두어 달 지나고 다시 바깥줄입이 잦았다. 이때부터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술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지성인이 식민지의 현실 앞에 절망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좌절감에 점차 술에 중독되었다. 그때는 뜻을 펼 수 없는 식민지 사회의 모순 때문에 술 마신다고 말했다. 그들은 식민지 사회에 적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족의 이해도 얻는 것도 아니었다. 소설 전체에 나약한 지식인의 괴로움이 묻어있다. 그들은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술 권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지금부터 100년 하고도 2년 전에 발표된 이야기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지도 무려 77년이 됐다. 세상과 풍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한민국은 식민지 사회에서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했다.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살기가 나아진 정도가 아니다. 사회가 술을 권한다고 소리치던 당신 사람이 지금의 우리를 보면 놀라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술을 권하지 않게 되었는가?


역사는 변했고, 시대도 변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는 술을 권하고, 고독을 강요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이 많은 것은 다를 바 없다.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이 자본주의의 억압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달라졌다. 해방된 우리 땅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술을 권유받고 있다. 우리는 그때보다 훨씬 다양한 중독을 권하는 사회에 산다.


꺼진 불도 다시 보고, 헤어진 연인도 다시 보자!!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라고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가 말했다. 개인의 의식 수준을 결정하는 데 사회가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잘 일러준다. 인간의 의식은 사회적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중독을 권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 건강한 의식을 갖기가 어렵다. 그런 사회에서는 평범하게 사는 일조차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마약 중독자나 사랑 중독자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 더 많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세상이 갈수록 험악하고 위험하다. 날마다 보도되는 사건 소식을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잘못된 애정 관계 때문에 벌어지는 참혹한 사건 소식은 마음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한다. 이제 누굴 만나서 어떤 사랑을 할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연일 벌어지는 헤어진 연인의 집착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못해 끔찍하다. 사랑할 하는 일보다 헤어질 일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머릿속 화학물질의 농도는 정신이상자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신경전달물질의 폭발로 가슴이 떨리고, 호흡이 가쁘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경험을 한다. 또 두려움과 기쁨, 행복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면 마음이 들떠 주체하기 힘들다. 사랑할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치광이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반 사람은 점차 사랑의 묘약 농도가 묽어져 정상 수치로 돌아온다. 그것은 사랑이 식는 소리이자 사랑이 떠나가는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뜨거운 사랑은 머릿속의 화학물질로 들끓기 때문에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없다. 사랑이 식지 않으면 우리 뇌 신경 회로의 과열로 고장 날 수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랑의 열기는 점차 식어간다. 이것은 사랑이 갖는 숙명적 모순이다.


사랑에 중독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사랑에 중독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제일 마음에 짚이는 것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나쁜 기억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시절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다고 다 사랑중독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이 미성숙한 상태로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어릴 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고도 성숙한 인격으로 잘 산다.


그렇지만 더 각박해지는 현실과 더 치열한 경쟁은 사람의 영혼을 난도질할 수 있다. 오직 성과주의에 묻혀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회는 사람들에 중독을 권한다. 술이든, 마약이든, 사랑이든, 어느 한 곳에 파묻혀 현실을 잊으라고 유혹한다. 모두가 그런 유혹을 이겨내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면 좋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중독을 권유하고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말 것을 권유한다.


사회가 책임을 인식하고 빨리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은 늘 더디고 시간이 걸린다.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일을 막을 당장의 방법이 필요하다. 사랑에 빠지는 일보다 헤어질 때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한때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표어가 유행했다. 지금은 '자나 깨나 사랑 조심, 헤어진 사랑도 다시 보자'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사랑 중독자의 머릿속은 화학물질로 뒤범벅되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포탄과 같다. '꺼진 불도 다시 보고, 꺼진 사랑도 다시 보자'는 슬로건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웃긴다고 말하기엔 상황이 너무 심각하고, 가슴 아프다. 처음부터 사람을 너무 의심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쉽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세상이 흉흉하고 불안하다. 지나치지만 않으면 조심해서 나쁜 것도 없다. 이제 사랑하는 기술 못지않게 헤어지는 기술을 배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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