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을 돌고 나면
남은 길이 짧아지고
살아갈 날이 산 날보다 작아지면
시간은 더 빨리 흐른다
아침 따뜻한 커피를 내렸다. 데운 우유를 올려 셀프 카페라테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라떼를 들고 창밖을 본다. 흐린 하늘 아래 회색빛 도시가 보인다. 모처럼 마이클 프랭크스의 보사노바 재즈 ‘Antonio’s Song’을 듣는다. 잔잔한 멜로디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문득 어느 해 봄, 송파에 살 때가 떠오른다. 그땐 마라톤을 좋아해 한강을 열심히 달렸다. 그해 봄날, 한강에는 유달리 바람이 세다. 그날은 온몸으로 봄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잠실대교를 출발해서 올림픽대교와 광진교를 지나 구리암사대교까지 간다. 그곳에서 잠시 멈추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잠실대교가 있는 한강공원으로 되짚어 온다.
그때 느꼈지만 갈 때보다 되돌아오는 길이 한결 쉬웠다. 반환점을 지나면 길이 한층 짧아지고, 시간도 잘 간다. 길이 단축될 리가 없고 보면 마음이 그렇게 느낀다. 일도 시간도 길도 반을 지나고 나면 여유가 생긴다. 이미 왔던 길을 되짚는 것이라 어찌 생겼는지, 무엇이 있을지 잘 안다. 멋모르고 갈 때보다는 시간이 짧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인생의 남은 시간이 짧아진다는 뜻이다. 짧아진 시간만큼 흐르는 속도는 빨라진다. 남의 시간이 가속 페달을 밟는 바람에 시간은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빨라진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지면, 남의 시간의 가속도 원리가 작용한다. 금방 한 해가 가고 그렇게 세월은 쌩하고 앞만 보고 내달린다.
2021년 여성의 기대 수명은 86.6세로 남성의 기대 수명은 80.6세이다. 이 반을 기준으로 자기 나이와 비교하면 반환점을 돌았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아직 반환점이 돌지 않았다면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이미 반환점을 통과한 사람은 기대 수명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의 속도는 가속도가 붙는다.
기대 수명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날을 생각하기보다 지난날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40대를 지나 50대에 접어들면서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엔 버겁다는 마음도 든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기 전보다 재기의 기회가 확연히 줄어든다. 점차 마음은 쪼그라들고 투쟁심도 약해진다.
앞일을 계획하는 시간보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면 나이가 든다는 표시가 아닐까. 뭔가 하겠다는 의욕보다 옛날의 실수를 생각하며 후회하는 횟수가 많아진다. 젊을 때는 실수도 개의치 않고 관대했다. 그것을 만회할 기회도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인생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실수를 만회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면서 그때 일을 후회한다.
나이 먹는 일은 누구든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음마저 주눅이 들 것까지야 있겠나. 뇌의 회로가 어떻게 반응해도 정신으로 그 회로를 바꾸면 된다. 그게 의지적 삶이고 낙관적 삶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도, 지난날을 후회하기보다 내일을 꿈꾸는 게 더 낫다. 어차피 살아야 할 시간이라며 그게 훨씬 보기 좋다.
참, 사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삶은 신비하다. 힘들고 고통으로 모든 것이 끝날 듯한 순간도 있었다.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지고 또 나는 살아간다. 꿈꾸던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슬플 때도 있다. 아직 할 일이 남았기에 그리 나쁘지 않다.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 일만 해도 소중하다.
여전히 의욕은 식지 않고, 열정은 뜨겁다.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그 길이 한때의 후회할 일을 진심으로 바로잡는 길이다. 오늘도 나는 아쉬움에 한숨짓기보다 신발 끈을 동여매고 길을 나선다. 길은 길로 이어져 언젠가는 영원으로 안내할 것이다. 시간이 제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때까지는 아끼지 않고 영혼의 발품을 팔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