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골 늑구1리 마을

by Henry


'고시리역과 늑구1리 마을' 구글 어스


2월 25일 토요일 아침의 일이다.

전날 목요일과 금요일 그만큼 먼 거리를 다녀왔다.

밤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피로가 덜 풀렸다.


역사 기행(驛舍紀行)의 첫 여행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내1리

고사리역이 있는 이곳까지 자동차로 4시간이 걸린다.


멀다는 생각이 들자 꼭 오늘 가야 할까?

갈까 말까 망설였다.

다음 주에 가면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

오늘 미루면 내일 다른 급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오늘 지금은 내가 가진 확실한 시간이다.

그래 오늘 가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시동을 건다.

뭉그적거리다 보니 시간은 오전 10시

너무 늦은 출발이 아닐까.

토요일이니 고속도로가 안 밀릴 거야.

그런 바람으로 길을 나섰다.


웬걸 서울 외곽을 빠져나가는 길이 죽음이다.

엉금엉금 기어서 간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일찍 출발할걸

늘 뒤늦게 후회한다.


경기도 광주, 초월 IC를 지난다.

이때까지는 가다 서다 반복이다.

어차피 밀린 도로 마음만은 밀리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 느긋해진다.


초월 IC를 지나고도 차가 밀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터널을 지나니 강원도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진다.

눈이라도 오려나 잔뜩 흐린 하늘이다.


제천을 지나 영월로 접어드니 산길이 점점 높아진다.

해발 800미터 표지판을 지나자 1,000미터다.

한반도의 등줄기 태백산맥을 지나는가 보다.

귀가 멍해지는 걸 보니 고도가 높다.


산길 도로는 태백시를 향해 길 머리를 튼다.

구불구불한 게 대관령 고갯길 못지않다.

눈이라도 내리면 난리가 날 것 같다.

돌아갈 때까지 눈이 안 와야 할 텐데..


고개 길은 정선으로 접어든다.

사북(舍北)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 유명한 사북사태가 일어난 탄광 지역이다.

끝내 아픈 역사의 한 자락으로 남은 곳이다.


1980년 초 군사 정부 시절

탄광 노동자와 가족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약 6,000명의 시위대가 며칠 동안 사북읍을 점거했다.


끝내 경찰과 충돌하고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이 잔인하게 노동자를 탄압했다.

지금 상상하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때는 군사 정부가 통치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겨울 끝자락이라 쌀쌀한 날씨다.

전날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렸다.

하얀 눈이 쌓인 풍경이 그림 같다.

태백시로 접어드니 눈발이 날린다.

이러다가 오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태백시 초입에 있는 주유소에 들렀다.

연료 게이지 눈금이 더 올라갈 곳이 없다.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까짓 폭설이 내리면 어때.

밤새 가다 보면 집이 나오겠지.

가득 찬 기름만큼 배짱도 두둑하다.


삼척시를 지나 다시 고갯길로 올라선다.

고갯길을 몇 구비 돌자 좁은 협곡 지역이 나온다.

산과 산 사이에 자리한 늑구리 마을이다.

탄광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첩첩산중이다.

빼어난 경치 덕분에 운전이 한결 수월하다.


10시 출발해 오후 3시 20분에 도착했다.

동해시로 가는 강원도남부 도로다.

큰 도로에서 왼쪽으로 꺾어 샛길 빠진다.

산과 산 사이에 늑구1리 마을이 자리했다.


다행히 성긴 눈은 그쳤다.

15여 가구 남짓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마을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늦은 겨울 오후는 깊은 고요 속에 잠겼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르기만 하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