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포항(浦項), 카뮈의 알제 해변

by Henry
까뮈의 고향 바다, https://economy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09/2020020900035.html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 있을까. 아들이 자기 엄마가 죽은 날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버젓이 장례식까지 참석했으면서도. 알프레드 카뮈의 소설《이방인》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로 시작한다.


"-------- 나는 빨리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


사람을 죽인 동기를 분명하게 말하라는 재판장의 물음에 뫼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말만 들으면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여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없다. 뫼르소는 빼도 박도 못하는 잔인무도한 살인자로 낙인찍힌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날 알제 해변의 태양이 어땠길래 뫼르소가 권총 방아쇠를 당겼을까?


“------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붓는 것만 같았다. ------”


알프레드 카뮈가 말한 알제 해변의 뜨거운 태양이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이만큼 적나라하게 묘사한 장면을 읽은 적이 없다. 주인공 뫼르소가 시비가 붙은 아랍인을 쏟아 죽이기 직전 태양은 너무 눈부시고 뜨거웠다.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기 전에 다툼이 있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그들이 우연히 해변에서 다시 만났다. 아랍인은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그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뫼르소는 온몸이 긴장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날의 사건은 일방적인 살인이 아니었다. 서로의 다툼으로 일어난 사건이고, 자신을 겨눈 아랍인의 단도가 원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뫼르소는 형을 줄이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자기 딴에는 '태양 때문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했지만, 그 말을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서 무관심한 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재판 내내 사건이 있던 그날의 사정이나 변명도 하지 않았다. 뫼르소에게 삶은 권태롭고 무기력하다. 그에게 삶과 죽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기 속내를 그래도 드러내고 진실하게 행동했다. 솔직한 것이 좋다고 하지만, 뫼르소의 행동은 그 정도를 넘어섰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낯선 이방인으로 여겼다.


우리는 착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면 따돌림받거나 이방인 취급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현실은 진실을 말하라 해놓고, 실제로는 그것을 억압한다. 우리는 늘 속내를 털어놓고 싶지만, 그것을 꼭꼭 숨긴 채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해 여름의 태양도 뜨거웠다.

다음 주 일을 보러 멀리 포항으로 간다. 언제인가 기억이 흐릿하지만, 한여름 며칠을 구룡포의 친구 집에서 보냈다. 친구 몇 놈들과 작당해 쳐들어갔다. 줄곧 내륙 도시에만 살았던 나는 그렇게 가까이서 바다를 보는 일이 흔치 않았다. 언덕 위의 하얀 집 아래서 출렁이는 바다는 환상적이었다. 그해 여름의 태양은 알제 해변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다.


여름 방학이고 해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놀았다. 아담한 어촌 마을의 여름은 푸른 파도가 넘실댔다. 작은 바위섬까지 배를 타고 갔다. 어설픈 낚시꾼 흉내를 내며 뱃놀이도 즐겼다. 낮은 바위를 붙잡고 헤엄을 치고, 손으로 물고기를 잡겠다고 난리도 쳤다. 뱃머리에 앉은 친구들을 밀쳐 바다에 빠뜨리는 재미도 좋았다. 7월의 태양은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고 우리의 젊음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모처럼 먼 길을 앞에 두고 그때의 추억으로 마음 설렌다. 나는 늘 여행을 꿈꾼다. 다른 지방, 다른 도시의 낯선 풍경을 좋아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거리 풍경에 마음이 설렌다. 그래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 낯선 곳의 에뜨랑제(étranger)가 되고 싶다. 그렇지만, 현실은 늘 발목을 잡는다. 가끔 높은 언덕 벤치에 앉아 멀리 보이는 바다 위의 긴 다리를 본다. 하늘이 맑은 날에는 어디론가로 향하는 비행기를 올려다본다.


코로나19는 사람의 여행 욕구를 억눌렀다. 같은 자리를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다. 가상현실, 인공지능, IoT를 활용한 비대면 관광이 한때 유행이 되기도 했다. 급기야 여행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트래블테크(Travel-tech)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여행지 정보를 알아보고, AR과 VR 기기를 이용해 가고자 하는 도시의 거리를 살펴본다.


여행의 마지막 마무리는 언제나 발품을 파는 일이다. 직접 걷고 그곳을 봐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AI와 메타 버스가 아무리 발달해도 마지막 순간은 아날로그적 체험이다. 여행은 늘 두 발로 시작하고, 두 발로 끝난다. 여행은 직접 가서 만나야 할 아날로그의 보루다. 아직 철이 이르지만, 그 바다의 태양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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