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낙장불입(落張不入)이라

by Henry

판을 물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은 낙장불입이라

이제와 새판을 짤 수도 없고

남은 판이나 열심히 해야지


사진 출처 Pixabay


그리 뜨거운 8월의 태양도

점차 힘이 빠져

가을에 제 자리를 내줄 요량인지

오늘 아침은 바람이 제법 시원해.


그렇다고 그리 쉽게 물러갈

위인이 아니고 보면

아직 몇 날이고 남은 무더위가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야.


그래봤자 대세는 꺾였으니

또 한 번의 여름과 이별하고

그렇게 우리는 세월 속으로 걸어가겠지.


가는 여름 붙들어 맬 수 없고

다시 올 여름 기약해도

과연 몇 번이나 남았을까

산다는 건 그러한 걸

시간이 제 갈 길 가겠다는 어쩌겠나.


이리될 줄 몰랐고

이리 살 줄 몰랐다고

하나님을 만나

한 판만 물릴 수 없냐고

매달려 사정하고 싶지만

인생은 낙장불입이라

그냥 이대로 살아야겠다.


세월이 무심하다는 말은 진작부터 들었고

특별히 나만 봐줄 일도 없고 보니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는 시간의 꽁무니를

허겁지겁 쫓을 수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두고 온 시간이 늘어나고

남은 시간이 줄어들면

뒤돌아보는 횟수가 늘어나지.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하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면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겠지.


그때는 그랬어.

빈약한 현실이 아팠고

알 수 없는 내일은 불안했지.

사랑 없는 열정은 공허했고

열정 빠진 사랑은 허무했어.


주머니 탈탈 털어 추렴한 돈으로

구운 고등어 한 마리에

비워낸 막걸리가 몇 통이나 되었을까


도시에 자리한 호수를 채우겠노라

흰소리 날리던 청춘의 밤은 지금도 또렷한데

친구들은 제 살기 바빠 다들 흩어지고

호수의 벤치에는 연인들의 속삭임만 뒹굴고 있어.


그때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가슴은 눈물로 가득하고

울음 참으려

허겁지겁 술잔을 목 안으로 부어버리면

종내에는 눈물만 그득한 빈 술잔뿐


젊음은 막걸릿집 낡은 탁자 위에서 뒹굴고

청춘은 막힌 골목길 찻집에서 헤매던 시절

수상한 날을 한탄하고

오지 못할 세상을 꿈꾸며

들이부은 술 탓에

쓰린 속이 새벽을 깨우던 시간


기억은 흐릿하고

그리움은 그예 사라졌지만

가끔 끄집어내 시간의 붓은

추억을 선명하게 덧칠하지.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스치듯 지나간 그네들의 안부가 궁금해.


멀리서 친구라도 올라오면

신도림역 근방이든

양재역 근처든

어딘들 어떨까?


그 시절보다는 형편이 한결 나아졌으니

고등어만 올라올까

산해진미 한 상 차려 놓고

밤새 권커니 잣거니 술잔을 기울이고 싶지만

마음만 앞서고

정작 술 몇 잔에 쉬 취기가 올라.


그래도 좋은 건 옛이야기 안주 삼아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해도

지겹지 않은 까닭에 금방 밤 깊은 줄 모르지.


다시 먼 길 가야 할 친구를 배웅하고 나면

연례행사처럼 치르지는 모임도 끝이 나고

달이라도 있는 밤이면

도시의 불빛에 짓눌린

어눌한 달빛을 친구 삼아

도시의 높다란 아파트 숲속으로 숨어들지.


달팽이는 뒤로 가지 않고

나는 새도 후진을 모르고

우리 삶도 후진 기어가 없으니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가르쳐야 할 아이들이 있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어.


알아주는 이 드물고

입신양명은 물 건너간 지도 오래고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초야에 묻힌 몸에

이만하면 호사가 아닌가.


삶의 끝을 누가 어찌 알까.

희망이 늘 나를 배신해도

다시 마음 추스르고 일어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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