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그렇게 산다

by Henry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괴로움을 이기면 행복이 온 다고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걸 알면서도

다들 그렇게 사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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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 속에서 즐거운 마음을

“즐거운 속에서 즐거움은 참다운 즐거움이 아니다. 괴로움 가운데서 즐거운 마음을 얻어야만 마음의 참된 쓰임새를 볼 수 있다.”


고요한 가운데 있다면, 따로 고요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즐거움 속에 살면 즐거움이 당연하다. 그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고요도 아니고 즐거움이 아니다. 거저 우연히 주어진 것이다. 소란스러운 저잣거리에서 고요함을 찾고, 괴로움 가운데서 즐거운 마음을 얻어야 한다. 『채근담(菜根譚)』이 들려주는 멋진 말이다.


좋은 환경, 좋은 상황에서 잘하는 것도 잘한 것은 맞다. 큰 자랑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운 좋게 받은 것들이라 마음의 참된 쓰임새를 가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태어남이 내 의지가 아니고, 부모를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남보다 못한 환경에서도 잘해야 그게 진짜 잘하는 것이라 해야 할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세상살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정된 자원을 갖고 경쟁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출발부터 남보다 더 가진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출발선이 저만치 앞서 있다면, 경주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밤잠을 설쳐 공부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노력해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힘들기는 하지만,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위안하자. 그러고는 신발 끈을 동여매어야 한다.


“고뇌의 이 불길 속에서 오히려 무르익어 감이여! 내 삶은 더없이 충만하여라. 고뇌의 이 기나긴 밤 지나면 그 영혼에 새벽빛 밝아 오리라,”


고뇌의 아픔은 삶을 충만하게 만든다? 고뇌의 불길을 견디면 영혼은 그만큼 성숙하고, 삶은 충만할 거라는 말. 그러니 새벽이 환하게 밝아 올 때까지 고뇌를 참고 견디라고 『법화경(法華經)』이 당부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괴로움을 이기면 행복이 온다는 말과 다름없어. 그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너무 훌륭한 말이지만, 보통 사람으로서 이게 가능할까. 고뇌의 불길 속에 있을 때는 몸과 마음이 온통 타버리고, 아픔과 고통으로 짓이겨지는데. 마음의 상처에서 진물이 흐르고, 그 잔인한 시간을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데 가능할까. 고뇌의 불길이 잦아들고, 고통을 극복하고 난 후의 이야기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아팠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가 나에 대해 가장 행복하게 느꼈던 시간이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정도면 고통 예찬(苦痛禮讚)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가 한 말이다. 그는 고통을 인간 창조성을 발현하는 훌륭한 자극제라고 말했다. 그가 괴로움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읽어보면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느낄 수 있다.

“괴로움이 남기고 간 것을 맛보라! 고난도 지나고 보면 감미롭다.”


희망의 등대를 켜고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글들이다. 긍정은 자주 나를 배신한다.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도전했는데 탈락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절박하게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끝내 승리의 여신이 외면하곤 했다.


운이 없어서, 복이 없어서 그렇다. 맞는 말이다. 세상일이 어찌 노력만으로 다 이루어질까. 운도 복도 실력이라면, 결국 실력이 모자란 탓이다. 역경과 고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위인들의 말은 차고 넘친다. 적어도 그들은 고통을 이겨내고 위인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경은 영광으로 빛났고, 그들의 고통은 환희로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이 다 성공하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그렇게 될 수 없다. 영광의 자리는 늘 모자라고, 도전하는 사람은 많아. 그 바람에 패배의 고통으로 좌절하고 무너지는 사람도 많다. 그들에겐 고통과 역경을 즐기라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아픈 건 아프고, 힘든 건 힘든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 때론 기쁘고, 또 때론 슬프고, 그렇게 살아간다. 짧은 승리의 환희와 긴 패배의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패배의 고통과 아픔이 마음속에서 푹푹 썩고, 끝내 발효해 추억으로 남게 된다. 그때쯤이면 니체의 말처럼 과거의 고난을 달콤하게 음미할 것이다.


나침판도 없고, 까만 밤 바닷길을 인도할 무엇도 없는 아득한 시절이 있었다. 선원들은 늘 북쪽 하늘 끝을 올려보며 망망대해의 짙은 어둠을 헤쳐갔다. 그때는 북극성만 보고 배를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북극성에 갈 수 없다는 건 잘 안다. 그건 뱃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목표이자 인생의 좌표이다.


우리에겐 희망이 북극성이다. 그것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삶의 거친 바다를 항해한다. 그래야 풍랑을 견디고 태풍도 이겨낼 수 있다. 북극성이 뱃사공의 칠흑 바닷길을 안내하듯, 희망은 칠흑 인생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희망이 없다면, 인생의 배도 좌초할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나만 중뿔나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산다. 삶은 기쁨과 슬픔의 이중주다. 기쁨보다 슬픔을 연주할 때가 조금 더 많아 아쉽기는 하다. 슬픈 멜로디가 길어지면, 곧 환희의 연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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