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 보통의 하루 : #원조홍두깨손칼국수 #삼산월드체육관 ]
"오늘 부평 가자."
"부평?"
"응. 인천 부평. 배구 경기 미리 예매해 뒀어. 매번 매진이더라고. 이번에는 성공했지. 김연경선수 속한 구단이래."
"전 국가대표 선수요?"
"응. 배구는 본 적 없으니 한 번 보러 가자. 부평 시장에 맛집도 많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야구 비시즌. 무덥고 추웠던 144경기의 기나긴 야구 경기가 막을 내리고 적적하던 차. 농구를 보러 갈까 하다가 이번엔 '배구 경기'다. 게다가 전 국가대표 김연경 선수가 속한 팀 경기라니. 처음 가는 배구 경기장이라서 주차하느라 헤맬까 서둘러 부평으로 향한다.
- 인천시 부평구 부흥로 334번 길 65 1층
금강산도 식후경. 오후 2시 배구 경기 전에 점심을 먹고자 부평 시장으로 향한다. 추운 날씨에도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많은지 주차장이 차들로 가득 찼다. 부평 시장 내 수많은 맛집 중 우리는 손칼국수를 먹기로 결정했다. 벌써 식당 입구에 사람들이 대기 중이다. 얼핏 보니 세 팀 정도 기다리고 있다. 번호표를 받고 대기시간 동안 시장 한 바퀴를 둘러보기로 한다. 시장보다는 마트가 익숙한 우리 가족. 통로가 좁아서 오며 가며 사람들로 부딪치기 일쑤지만 갓 나온 따끈따끈한 떡, 싱싱한 생선, 다양한 곡식류, 채소류에 눈을 둘 데 없이 신기한 것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아이들도 신기해하며 우리도 구경하느라 바쁘다. 시장에 이렇게 많은 물품들을 팔고 있구나. 게다가 맛있는 떡볶이, 어묵, 닭강정, 호떡 맛있는 먹거리들이 우리의 허기진 배를 사정없이 끌어당긴다. 군침 도는 냄새가 솔솔.
여러 맛집 중 이 가게는 닭강정이 유명하다. 이미 대기 중인 사람들도 7팀. 손칼국수도 먹어야 하는데. 배구 경기장에서도 먹을 수 있으니 닭강정을 사겠다고 한다. 남편이 줄을 서서 닭강정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맞은편 호떡 가게를 들여다본다. 호떡 가게도 유명한 맛집인가 보다. 거기도 대기 중인 사람들이 열댓 명은 되었으니까. '왕꿀호떡'이라고 해서 꽈배기랑 팔고 있었는데 매장 안에서 일하는 점원이 6명, 밖에서 호떡을 튀기고 파는 점원이 3명 정도다. 작은 가게 안에 여러 명의 점원들이 호떡과 꽈배기를 빚고 튀기고 판매하고 있었다. 아, 맛있겠는걸. 왕꿀호떡 이름답게 호떡도 성인 얼굴만큼이나 크고, 깨끗한 기름이 담긴 철판에 튀겨지니 맛도 깔끔하고 달콤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손칼국수와 닭강정을 결정했다. 호떡은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룬다. 10여분 기다렸을까. 닭강정 조금 매운맛(신라면 정도의 맛)으로 중(中) 자를 건네받고서 손칼국수 식당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혹여나 오해 살까 봐 닭강정은 잠시 가방 속으로. 신라면의 매콤한 냄새가 솔솔 난다. 너는 식후타임에 만나자.
이곳은 23년 전통의 칼국수 식당이다. 대표가 연구하고 개발한 반죽으로 매일 아침 끓이는 진한 멸치육수로 만든다고 한다. 특이하게 면이 흑미다. 그래서 면 색이 거뭇거뭇하고 손으로 직접 빚은 거라 면발이 투박하게 생겼다. 면발을 처음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은 순간 고소함과 쫄깃함이 느껴진다.
"부드럽다. 너무 부드러워."
남편은 재차 면발의 부드러움을 강조했다.
"그냥 꿀떡꿀떡 넘어가네."
"우리 저번에 의정부에 있는 칼국수 맛집 갔었잖아. 거기는 사골 육수였지. 명동 칼국수는 마늘이 많고. 여기는 흑미가 포인트네."
"음, 저는 고기가 들어간 칼국수가 1등이에요. 여기는 2등이요."
"나는 다 맛있어. 이 손칼국수도 맛있어요."
아들과 남편은 이전에 먹었던 칼국수 맛집들과 맛을 비교해 보며 점수를 매긴다. 고기를 좋아하는 둘째는 무조건 고기 칼국수가 맛있단다. 양념장도 있었지만 후추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저 후추만 솔솔 뿌리고는 칼국수 면을 후루룩후루룩 들이킨다. 거참 소리가 군침이 도는 군.
팥칼국수를 받자마자 숟가락으로 국물을 먼저 떠먹어본다. 팥도 오래간만에 맛본다.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고소한 팥내음이 참 정겹다. 국물을 1/2 정도 떠먹고 나서야 면을 들이켰다. 역시 남편 말대로 흑미 면이 부드럽다. 김치에 먹으니 안 어울리는 듯한데 단무지에 먹으니 찰떡이다. 팥에는 단무지가 짝꿍인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는 김치 맛집이다. 김치가 이렇게 싱싱하고 감칠맛이 돌 수가. 손칼국수에 딱 제격이다. 김치를 셀프로 리필하며 2그릇이나 비워냈다. 오, 김치가 맛집이면 음식도 맛집임을 증명하는 바. 메뉴가 칼국수이다 보니 손님들이 금방 빠지고 맛집이다 보니 손님들이 금방 새로 들어찬다. 추운지라 가게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대기를 하고 있다. 옆 테이블을 슬쩍 보니 '만두'도 주문했던데 만두도 맛보고 싶다. 닭강정이 아니면 만두도 시켜서 내 위를 더 확장했을 텐데 아쉽다. 만두를 주문하지 못한 채 우리 가족은 손칼국수와 팥칼국수를 깨끗하게 비워냈다. 역시 맛집답게 아들도 엄지 척을 내민다. 배고픈 배가 뜨끈하게 두둑하게 채워졌으니 이제 경기장으로 가보자.
- 인천시 부평구 체육관로 60
배구 경기장은 처음이다. 문턱 닳듯이 다닌 곳은 야구장. 그리고 농구 경기는 2번 갔었다. 배구 경기는 어떨까. 생각해 보니 배구 경기는 TV로도 본 적 없는 것 같다. 갑자기 전 국가대표 김연경 선수에게 미안해지는 마음. 이 삼산월드체육관은 '흥국생명 배구단'의 홈 경기장이다. 인천광역시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실내 경기장이며 관중 수용규모는 7,140명이다. 이곳에서는 배구 경기뿐만이 아니라 농구, e스포츠 경기도 열린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경기장 매표소부터 선수들의 프린팅 된 사진이 크게 걸려있고 경기를 관람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야구장처럼 남녀노소 관람객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흥국생명 배구단은 2005년 국내 프로배구 출범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한 팀이다. 또한 현재 V리그 배구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기 관람을 갔을 때는 흥국생명 배구단이 주전들의 연이은 부상 속에 3연패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반대로 상대팀인 GS칼텍스 서울 KIXX는 V리그 배구 7위를 달리고 있다. 과연 오늘 경기로서 PINK SPIDERS는 연패를 끊을 것인가, 서울 KIXX는 7위에서 벗어날 디딤돌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전석 매진이며 승패가 중요한 12월 마지막 경기다.
건물 안에 들어서니 PINK SPIDERS 답게 모든 곳이 '핑크핑크'하다. 마스코트 색인가 보다. 전 국가대표 김연경 선수가 해맑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오, 이렇게 마주하게 되다니. 경기장 안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벌써 경기가 시작됐나 보다. 경기 보며 먹을 것을 사야 하는데. 급히 매점으로 달려가니 매점은 2곳뿐이고 키오스크마저 고장이 났다. 점원에게 직접 가서 급히 음료수만 구매했다. 얼핏 보니 음식은 따로 반입하지 않는 것 같다. 아, 가방 속의 닭강정은.
경기장 안에 들어서자 텁텁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벌써 경기가 시작되어 코트 안에서 선수들이 매서운 배구 경기를 펼치고 있다. 자리가 어디인가. 코트 안만 밝게 비추고 좌석은 빛을 켜지 않아 어둠 컴컴하다. 겨우 자리를 찾았다. 다행히 통로 좌석이다. 따뜻한 실내 공기에 겉옷을 벗어두고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 이제야 살 것 같다. 한숨 돌리고 나니 경기장이 보인다. 야구장이 익숙한지라 배구 경기장은 아주. 매우. 무려. 작아 보인다. 매진이라더니 관중석 자리마다 꽉꽉 들어차있다. 농구 경기처럼 코트 위에는 TV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줌인돼서 보인다. 오오, 지미집도 보이고. TV로 생중계되나 보다. 크게 전광판도 보이며 코트 근처 양쪽에는 점수판도 보인다. 천장에는 홈(HOME)인 만큼 '흥국생명 PINK SPIDERS'가 적힌 분홍색 현수막과 선수들의 사진과 번호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온통 핑크로구나. 김연경 선수는 어디 있지. 오, 저기 있다. 등번호 10번. 멀리 서봐도 그녀의 훤칠한 키와 미모가 눈에 보이는 듯 선하다. 배구 경기의 특이점은 코트 가까이 감독들이 서 있다는 것이다. 야구는 멀리서 더그아웃에 서서 수신호로 작전을 짜고는 하는데, 배구 경기는 감독들이 코 앞에서 뭐라고 외치며 손짓하는 듯하다. 또한 배구 선수들 역시 뒷짐 지고 수신호로 선수들끼리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직접 보니 신기하네.
"얘들아, 봐봐. 등번호 10번. 김연경 선수야. 우리나라 전 국가대표 선수. 직접 보니 놀랍지?"
"키 엄청 크지. 거의 190cm 넘을걸. 배구 선수들은 다 키가 커. 어, 넘어간다."
"김연경 선수, 스파이크. 와, 점수 냈어."
순식간이다. KTX 만큼 빠를까, 비행기만큼 빠를까. 배구 경기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정말 어떤 것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순식간에 경기가 지나간다. 그래서 다들 음료수만 벌컥벌컥 들이켤 뿐 치킨이나 떡볶이를 먹는 사람도 없고 자리 한번 뜨는 사람도 없다. 아쉽게도 상대적으로 느긋한 야구 경기에서나 치킨이나 떡볶이를 먹는 게 가능한 것이었다. 작전타임도 금세, 경기 진행도 금세. 슉슉 지나간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난 남들과도 다르게♪' 화살처럼.
가슴팍에 명찰을 단 것을 보니 구단 직원이다. 관중석에 앉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펼쳐보니 분홍색 천으로 천 위에 '철쭉응원단'이라고 적혀있다. 아, 응원 타월이구나. LG TWINS의 노란 타월처럼. 응원도구도 생겼겠다. 열심히 '철쭉응원단' 분홍색 천을 펼쳐 흔들며 응원한다. 그런데 배구 경기는 어떻게 응원하지.
야구라면 응원석이 있는 만큼 응원석에 단상이 있어 치어리더와 응원단장이 있다. 분명 스피커를 통해 남성의 응원목소리가 들리는데 응원단장이 어디 있는지 도저히 못 찾겠다. 우리 앞에는 치어리더분들과 키즈 치어리더들도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데 대체 응원단장은 어디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단 말인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니 아, 응원석과 2층 관람석 사이 통로에 서 계시다. 겨우 찾아냈다. 어떻게 응원하나 들어보니. 상대편의 공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우리가 한번 받아칠 때 "흥", 두 번째 받아칠 때 "국", 세 번째 받아서 스파이크를 날릴 때는 "빠샤". 오, 색다르다. 빠샤,라고 외치는구나. 이게 V리그의 매력인가. 좋았어. 응원법을 알았으니 힘차게 외쳐본다.
"흥"
"국"
"빠샤"
"와우."
김연경 선수와 익숙한 얼굴의 김수지 선수가 블로킹을 성공할 때마다 오호,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특히 서브 넣을 때는 정말이지, 와.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 같아 심장이 괜히 두근거린다. 경기 뒤편에 서서 서브를 넣을 때는
"김. 연. 경. 김. 연. 경. 오. 빠샤."
응원도 한다. 서브 넣고 작전이 성공할 때 파이팅 외치는 김연경 선수의 모습이란. 멀리 있지만 전광판을 통해서도 그녀의 표정을 세세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 그녀의 흥이 여기까지 차오르는 듯하다. 그렇게 흥이 넘치는 만큼, 경기는 김연경 선수의 최고 17 득점으로 5 SET를 채우기도 전에, 3 SET에서 0:3으로 승리를 거머 줬다. 3 SET에서 경기가 마무리된 만큼 경기 시간이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아주 신속하구먼. 어쨌든 경기가 이겼지 않은가. 오늘 특별히 '흥국생명 PINK SPIDERS'팀을 응원했으니 이겼으면 됐다. 12월 마지막 경기에서.
"벌써 끝났어요?"
"그러게. 김연경 선수가 제일 잘했나 봐. 저기 방송사 인터뷰하네."
"정말 빨리 끝난다. 야구 경기는 4시간도 넘는데."
"그렇지. 우리 야구 볼 때 춥고 더워서 엄청 고생하잖아. 여기는 실내라서 춥지도 덥지도 않고 좋네. 고척돔처럼 말이야."
"다음에는 농구 보러 가요."
경기가 끝나고 철쭉 응원단에 감사 인사를 하는 선수단에게 박수를 보낸다. 처음 본 배구 경기 이겨줘서 고마워요. 인터뷰하는 김연경 선수와 코트 위에서 스트레칭하는 선수들을 뒤로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배구 경기는 처음이다. 너희들은 어때? 경기 규칙을 몰라서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 보다 보면 금방 경기 규칙을 익히게 되지, 뭐. 그나저나 경기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네. 호루라기 불면 바로 작전타임이라 코트 옆에 서 있는 감독 앞으로 다 동그랗게 모이고. 또 호루라기 불면 바로 경기 시작하고. 비디오판독도 15초면 금방 끝나는 것 같은데. 정말 숨 넘어갈 듯 스피드 한 경기였어. 그나저나 엄마는 김연경 선수를 이렇게 가까이 보니 신기하다. 연예인 보는 것 같고. 서브 넣을 때 멋있었지. 챡, 탁. 역시 국가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경기 중 팀원이 실수해도 다독여주고. 배구가 그런 따스한 경기인가 보다. 응원법도 특이하고. 특히 '빠샤'는 새로웠어. 배구에게 기운을 불어넣는 응원 같아. 다음에 배구 경기 또 보러 오게 되거든 그때는 경기 시작 전에 도착해 보자. 처음 경기 시작을 못 봐서 아쉽네. 야구 경기처럼 웅장한 음악과 각 선수들 등장곡이 있을지도 몰라. 경기 끝나서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아파트'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외쳤잖니. LG TWINS 야구 응원처럼. 우리도 열심히 불렀잖아. 물론 텀에 'LG'라고 외쳤지만. '아파트'는 어느 스포츠에서나 통하는 노래구나. 그나저나 저 가방 속의 닭강정은 어쩌지. 집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먹자. 와, 식어도 맛있는 걸. 역시 맛집. 이제, 집에 가자.
이제 야구 개막 84일 남았네
잠실에서 롯데랑 붙는대
엘롯라시코 직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