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붙잡는 힘이 벅찰 때가 있다. 내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주변 사람의 비아냥에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가장 마음을 열었던 사람이 내뱉는 '현실적으로'라는 말은 나를 가장 휘둘리게 한다. 사이가 가까우면 무시를 하고, 사이가 멀면 응원을 한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관계가 최선인가 싶기도 하다. 이것이 희망을 붙잡는 사람의 자세인가?
'내가 바라는 사람은 겁쟁이가 아닌데..'
다시 한번 힘을 내어 희망을 붙잡을 때가 온 것 같다. 내 희망은 언제쯤 단단해질까?
나는 매일 무기력과 싸우고 매일 다시 일어난다. 이것이 나의 최선이다. 매일 다시 일어나 밖에 나가 뛴다.
달리기만이 진흙탕으로 끌어내리려는 어둠을 유일하게 떼어낼 수 있다. 매일 달릴 수 있다는 희망만이 나를 살게 한다.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은 달리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걱정만 할 바에 차라니 우산을 들고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갑을 끼고 우산을 들고 쉬지 않고 여섯 바퀴를 뛰었다. 숨이 차고, 땀이 났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가 도는 게 느껴졌다. 역시 행복했다.
뛰고 나면 내가 겪는 어려움이 별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겪는 배신감과 좌절도 지나고 보면 별게 아닐 거다.
군중 속에서도 나는 외로움과 고립을 느낀다. 내가 원하는 길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자.
잠시 흔들려도, 외로워도, 휘청거려도 더도 말고 더도 말고 하루 1센티만 나아가자.
고사성어로 '마부위침'이 있다.
중국 최대의 시인 이백의 일화에서 유래한 이 말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을 지닌다.
이백은 한때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에서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때 마음 입구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는데, 노파는 도끼를 바위에 갈고 있었다.
이를 이상히 여겨 물었더니 노파는 몹시 귀찮아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고 있네."
이백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두지 않으면 가능하다네."
이백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다시 산 위로 올라가 학문에 정진했다.
_바보 Zone, 차동엽 지음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노파의 이야기처럼 난 어둠을 갈아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될 거다.
미래에 내가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겼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심을 때까지 아니, 죽는 날까지 나는 평생 희망을 우길 생각이다.
'그만두지 않으면 가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