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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Feb 27. 2021

꿈이지만 오랜만이야

꿈은 반대, 맞지?

티비를 보는데 홍대가 나오더라고. 홍대에서 참 재밌었던 적 많았는데.

옷 살 때마다, 과감하게 옷을 스캔하는 너가 참 고마우면서도 든든했었는데. 이제 옷은 누가 골라주나 몰라.

길가에 외국 과자 상점에 들려 초콜릿을 사달라는 너가 참 귀여웠었는데. 이제 그런 걸 먹을 일이 있을까.

사실 제일 좋았던 건 그때 오유라는 음식점에 갔을 때야. 난 그 집 인테리어를 보면서 나중에 혹시 같이 산다면 이렇게 디자인해야지 생각했었으니깐.


이젠 다 헛짓이지. 길가에 멈춰있던 우리의 모습이 이제서야 움직이는 걸 보다 보면 너한테 달려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아지지만, 휴가제한을 핑계되며 마음을 다잡곤 해.


사실 무서워. 여전히 내가 사랑했던 그 모습일까를 고민하면 회의적이야. 가끔 정색한 너의 모습에 겁쟁이마냥 심장이 멈춰버렸던 나였으니깐. 이제는 식어버린 너를 앞두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하고 또 상상하지만, 눈치도, 기억력도 안 좋은 나에게 어울리는 좋은 결말은 없어 보이네. 너와의 대화는 가위바위보 같은 거지. 난 아쉽게 주먹밖에 가지지 못했고 너가 날 보내버리면 거기서 끝나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600일을 사귀면서 주먹밖에 가지지 못한 내가 참 우스워.


고마워 그래도. 꿈에라도 나와줘서. 꿈은 꿈 답더라.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틈틈이 내 인스타를 확인하며 나를 미처 다 지우지 않은 널 보며 얼마나 안도했는지. 단단히 여맨 마음이 풀릴까 긴장하던 얼굴 속에서 미처 용기가 없었던 반가움을 보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너와 못다 한 이야기를 하다 꼭 껴안았을 때 참 따뜻했었는데 이불 안이더라고.


꿈은 반대니깐. 너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었나 보구나. 원래 너한테 마지막 손 편지를 쓸까 고민했었지만, 그건 나를 너무 아끼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었어. 브런치 글 때문에도 한번 크게 싸웠던 우리지만, 혹시 너가 내 브런치를 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짧게 남겨놓을게.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던 너의 마지막 바람. 나도 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카톡 프사나 배사 염탐하는데, 힘든 건 아닌가 걱정되더라고. 그치만. 그치만 말이야. 행복해지고 힘듦을 덜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 날 완전히 지우는 거지만 말이야. 살면서 내가 언뜻언뜻 생각나고 그때마다 마음 아파했으면 좋겠어. 나는 시간이 남는 군대라 고통 속에 사는데, 넌 바빠서 그런 거 다 잊고 지내면 좀 억울할 것 같아. 나도 그릇이 작은 사람인가 봐. 눈치도, 기억력도, 센스도 다 꽝인 남자친구였는데 착하지도 못하네. 사귀었던 순간들이 좋았더라도 차마 없어져버린 그 시간을 선물해줘서 고맙단 말은 못 하겠어 나는. 그래도 600일 동안 나 같은 사람 사랑해주고 사귀어줘서 참 고마워. 꼭 한번 봤으면 좋겠다. 남몰래 주머니에 주먹을 넣어놓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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