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수 있다는 말 뒤에는, 팔아야만 한다는 압박이 숨겨져 있다.”
그날 영업팀장이 회의실에서 말했다.
눈빛은 강했고, 말투는 단호했다.
“저 제품, 지금 출시하면 진짜 다 팔 수 있어요.
타이밍이 이렇게 좋은 적 없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제품팀장이 맞받았다.
“그 제품, 지금은 안정성도 부족하고
기획서에도 없는 색상이에요.
우린 ‘뭘’ 파느냐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회의실엔 긴 침묵이 흘렀고,
시선은 내게 향했다.
그 순간, 나는 **“CFO”**였다.
그리고 동시에,
조율자였다.
영업팀은 “기회”를 본다.
“요즘 이 색상 인기 많아요.
경쟁사도 이 시기 노리고 있어요.”
“팔릴 때 팔아야죠.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아요.”
제품팀은 “가치”를 본다.
“이건 브랜드 톤과 안 맞아요.”
“제형 테스트도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의 기준이 있어야죠.”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럴 때, 나는 엑셀을 연다.
그리고 말한다.
해당 SKU 예상 매출 vs. 생산/유통비용
동일 조건 제품의 리오더율
불완전 제품 출시 시 CS 비용 추정
브랜드 평판 하락 시 회복 비용
신규 고객 LTV (고객 생애 가치) 시뮬레이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내는 게 이익이 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리스크가 큽니다.”
회사가 커질수록
각 팀은 자기 역할에 더 몰입한다.
영업은 매출에,
제품은 브랜드에,
마케팅은 반응에,
CS는 평판에.
그러면 어느 순간,
각자의 ‘정답’이 생긴다.
그 정답이 부딪힐 때,
누군가는 그걸 연결해줘야 한다.
그게 바로 CFO다.
CFO는 중간에 선 사람이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지만,
모두의 말을 숫자라는 언어로 번역해서,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 다 팔 수 있는 거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다 팔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팔아도 괜찮은지, 브랜드는 괜찮을지,
우리가 만들어온 건 괜찮은지를
숫자로 살펴보자는 겁니다.”
영업팀의 “팔 수 있어요”는
진심에서 나온 말이다.
그 말 안에는 책임감, 압박, 실적의 무게가 담겨 있다.
제품팀의 “아직 안 돼요” 역시
브랜드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중간에서 생각한다.
지금 팔 수 있는 것을 택할지,
앞으로 팔아야 할 브랜드를 지킬지.
그 판단을 돕는 것이,
내가 CFO로 있는 이유다.
다음 편 예고
하지만 문제는 있다.
요즘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건
진짜 ‘우리 제품’이 아닐지도 모른다.
팔리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이름들.
색조 브랜드 CFO 13편: 콜라보의 역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