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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Dec 08. 2022

나의 '자의식 과잉'의 역사

베르그손 <물질과 기억> 수업 후기 (2)

나는 꽤 오랫동안 내가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대부분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맞춰주거나 배려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해도 말하기보다는 듣는 편이었으며, 식사 메뉴를 골라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먹었고, 선물할 때는 그 사람이 꼭 필요할 것 같은 것들을 골라서 최고의 선물을 한다고 믿었다. 갈등이 있을 때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적지 않은 친구들이 나에게 고민 상담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다. 늘 눈치보며 살았던 삶이기에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변화와 감정 변화를 읽을 줄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세심하게 살피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맺어왔기에 나는 내가 그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모든게 거대한 착각이었다.


"사람들 원래 다 그런거 아니에요?"


첫 철학 수업 뒷풀이에서 내가 내뱉었던 말이다. 대화의 맥락은 정확히 떠오르진 않지만, 내가 살아온 삶이 기쁜 삶이 아니라며 조심스럽게 일러주는 사람들이 불편해서 나도 모르게 그만 심통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경박스러운 말 한마디에 사람들 모두 눈알을 굴리며 뒷목을 잡았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당시 나는 인간 존재의 보편성을 어느정도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창피하게도 이렇게 생각했다. '나만큼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눈치보느라 늘 주눅 들어있던 나였으니 그렇게 착각할 법도 했다. 가까운 사람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에게까지 모두 신경 쓰느라 항상 피곤하고 지쳐 있었으니까. 그렇게 타자에게 맞추고 맞추느라 내가 누군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처음 철학 흥신소에 왔을 때 나는 나를 '안개' 라고 묘사했었다. 그만큼 나는 내가 무색무취의 희끄무레한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과거부터 그 당시까지,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서운함' 이었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나 배려해 주는데 너는 왜 내 마음을 몰라주니. 나는 너의 이야기가 이해가 가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들으려 애쓰는데 너는 왜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거니. 너는 왜 필요할 때만 감정 쓰레기통처럼 나를 찾는거니. 그런데 그 서운함에 합세하여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또 다른 감정들이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나에게 힘든 이야기를 하거나 고민을 털어놓을 때 속으로는 은근히 기뻤다. 이 사람이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 놓을만큼 이 사람에게 나는 소중한 사람이구나. 그만큼 나는 배려심 있고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구나. 소유욕과 은근한 우월감과 연민이 뒤섞인 기이한 감정들 속에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 사람이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거야' 라는 서운함과 피해의식.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의 아픔을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하는 착한 사람이야' 라는 뒤틀린 소유욕과 은근한 우월감과 찌질한 연민. 누군가를 만나면 항상 이 감정들이 엎치락 뒤치락 난장을 벌였고 그 사이에서 나는 지쳐갔다. 마냥 남탓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야에 얼핏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찝찝한 의구심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내 감정과 마음을 직면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나는,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이라고 멋대로 규정하고 말았다. 사람들 모두 자신의 필요에 의해 타인을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타인을 위하는 이타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랑은 이기적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것은 모두 위선과 허구이고, 나쁜 것 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악함이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이라고 믿었다. 나만 형편없는 사람이 되기 싫으니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라고 믿어버리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아니, 전부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원래 다 그런거 아니냐고. 그놈이 그놈인거 아니냐고.


늘 다른 사람 눈치보고 그들에게 맞추려 애를 쓰는 삶을 살았으니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이해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스승에게 '중증 자의식 과잉'을 진단받고 충격에 빠졌다. 창피했고 모욕적이었고 불편하고 불쾌했다. 나만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이 앞섰다. 처음 철학 공동체에 왔을 때 느꼈던 기쁨이 기억난다. 철학 스승도 철학 수업도 재밌고 좋았지만 이 곳에서 함께 공부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쏠렸다. 철학 수업을 그저 교양으로 혹은 유튜브 흘려 보듯이 듣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직접 살아내려 애를 쓰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들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늘 해왔던 습관대로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운이 좋게도 우리에게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도 공유하는 글쓰기 카페라는 공간이 있었다. 관심이 가는 사람의 글을 모두 읽고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해 보고자 나름대로 애를 섰다.


그렇게 몇몇 사람에게 다가갔다. 선물을 하기도 하고, 먼저 밥 먹자고 불쑥 말을 꺼내기도 하고,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면서 알았다. 이거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그 사람은 이런 사람 일거라고 상정했던 그 모습이 아닌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닌 전혀 생뚱맞은 반응을 맞닥뜨릴 때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는 분명 그 사람을 읽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일 것이라고 내 마음속에 잠정적으로 그려놓았던 모습이 있었는데 실제 내 앞에 존재하는 그 사람은 그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 사람을 잘못 읽은 나를 돌아보고 성찰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생각한 바와 일치하지 않는 그 대상이 잘못 되었다고 치부하며 속으로 은근히 상대방을 원망하고 질책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뿜어내는 반감과 원망의 기운을 그들은 분명 느꼈을 것이다. 정말이지 무례함과 사랑없음의 끝을 달렸던 나였다.


스승이 나에게 했던 말 중에 뼈를 때리는 말이 있었다. 보경이는 화살은 여러개 쏘는데 적중율은 낮다고.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내 자의식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구나. 나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나의 세상에서 나는 주인공이고 타자는 모두 무화된 조연들이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진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을 위해 '맞춘다'는 명목으로 '이해하는' 척 했을 뿐 나는 누구보다도 고정적인 선입견과 편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여행이 즐겁기만 한데, 여행하는 것이 피곤하고 시간낭비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헤비메탈을 들으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삶의 활력이 생기는데, 헤비메탈을 들으면 귀가 아프고 피곤하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리를 두는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머리로 '이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감성구조가 저절로 바뀌게 된다. 그 사람이 좋다고 하면 좋은 것이고 싫다고 하면 싫은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삼십년 남짓 살아온 협소한 삶의 경험들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의 고통이 가장 아픈 줄로만 알았다. 철학 공동체에서 가장 빡세기로 유명한 수업 중 글쓰기 수업이 있다. 첫주차 주제가 내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과 불행했던 순간을 3가지씩 적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내 삶에 행복했던 일은 없고 불행했던 일만 잔뜩 있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스승은 "그렇다면 보경씨는 불행하고 싶은 사람이예요" 라고 말했다. 스승의 말에 따르면, 아주 낮은 확률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한 사람의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반반이라고 했다. 하얀공과 검은공이 1개씩 들어있는 주머니에서 공을 무한대로 뽑으면 각 색깔의 공이 나올 확율이 1/2에 수렴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내가 내 삶을 과도하게 불행 혹은 행복했던 삶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은 나의 지각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베르그손 수업을 듣는 최근까지도 머리로는 '이해' 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우주라 부르는 상들의 총체 속에는 내 몸이 내게 그 유형을 제공하는 어떤 특별한 상들의 매개에 의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새로운 어떤 것도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진행된다" <물질과 기억> 44p, 앙리 베르그손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은 결국 사물들이 우리의 자유에 반사되어 온다는 데서부터 발생할 것이다. 광선이 한 매질에서 다른 매질로 지나갈 때, 일반적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통과한다. 그러나 두 매질의 상호 밀도가 어떤 입사각에서는 굴절이 불가능하도록 될 수 있다. 그때 전면적인 반사가 일어난다. 이를테면 광선이 자기 갈 길을 계속하지 못한다는 그 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잠재적인 상이 광점에 대해 형성된다. 지각은 같은 종류의 현상이다. 주어진 것은 물질계의 상 전체와 그들의 내적인 요소들 전체이다. 그러나 진정한 활동성, 즉 자발적인 활동성의 중심들을 가정하면 거기에 도달한 광선 중에 그 활동성이 관심을 갖는 것은 통과하지 않고 광선을 보낸 대상의 윤곽을 그리기 위해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질과 기억> 74 p, 앙리 베르그손


지금 내 눈앞에는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 책이 놓여있다. 그 책은 '사물' 이라는 물질로 내 눈에 반사되어 들어온다. 한편 우리의 정신 어딘가에는 그 '상'을 어떠어떠한 물질이라고 떠올리는 (represent) '표상'이 있다. 베르그손은 물질로서 실재하는 '사물'도, 정신에 존재하는 관념인 '표상'도 책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베르그손은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자 일반'상', 즉 진동과 떨림으로 본다. '상'은 '사물'과 '표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인간의 지각 능력으로는 그 존재자 일반을 지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사물'이나 '표상'을 가지고 외부 세계를 판단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같은 사건과 대상에 대해서도 제각기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된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사물'에 대한 '표상'은 우리의 자유에 반사되어 온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통과하지 않고 나에게 되돌아와서 그 대상의 윤곽을 그리고 그것이 표상으로 자리잡는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나 뿐만 아니라 글쓰기 동기들과 과거 이 수업을 거쳐갔던 수많은 선배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나 이후에 수업을 수강했던 다른 사람들의 삶 역시도. 그들의 삶을 보니 부끄러워졌다. 내 삶에서 고통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없었는데도 나는 그 손톱 밑의 가시가 아프다며 내 삶을 통째로 불행한 삶으로 지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한 일이라고 해봤자 고작해야 어렸을 때 당했던 따돌림이나 지나치게 억압하고 간섭해왔던 부모님과 성장 배경 정도뿐이었다. 반면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험난한 고난과 역경을 겪었던 분들 중에는 나보다 더 씩씩하고 의연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의 스승 역시도 나보다 훨씬 힘겨운 삶의 조건 속에서 자랐지만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기만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행복도 불행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있었던 삶이라고 회상한다.

잠재적 상 (표상)이 형성되는 과정

같은 사건을 겪었더라도 그것에 대한 개개인의 기억은 모두 제각각이다. 얼마 전 엄마에게 엄마에 대한 내 진심이 담긴 편지를 전해주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서 어떤 상처를 받아왔는지 고백하는 일방적인 살풀이였다. 그 편지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알았다. 내가 상처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는 일을 엄마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많은 기억들을 날조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내가 마주치는 사건들을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까운 뒤틀린 감성구조로 받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베르그손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의 자발적인 활동성은 몽땅 슬픔에만 관심이 있었기에 나에게 반사되어 되돌아온 광선이 그렸던 표상이 모두 불행하고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스승이 나에게 "보경씨는 불행하고 싶은 사람이예요" 라고 했던 말은 뼈아픈 사실이었다. 나는 불행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의 몸이 공간 속에서 이동함에 따라 모든 다른 상들이 변한다. 반대로, 내 몸이라는 이 상은 변하지 않는 채 남는다. 따라서 나는 그것을 중심으로 만들고 모든 다른 상들을 거기에 관계시킬 수밖에 없다. 외부세계라는 것에 대한 나의 믿음은 내가 내 밖으로 비연장적 감각들을 투사한다는 것으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또 나올수도 없다. 그런 감각이 어떻게 연장성을 획득할 것이며, 나는 어디서 외부성이라는 관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중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하듯이 내 몸으로부터 출발해 보라. 내 몸의 표면에서 받아들여지고 그 몸에 관계될 뿐인 인상들이 어떻게 나에 대해 독립적 대상으로 구성되고 외부세계를 형성하러 오는지를 당신은 결코 내게 이해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상들 일반을 내게 주어보라. 그 상들은 끊임없이 변하고 내 몸은 불변적이므로, 내 몸은 반드시 마지막에는 스스로를 상들 가운데 구별되는 하나의 사물로 그릴 것이다. 내부와 외부의 구별은 이처럼 부분과 전체의 구별로 귀결될 것이다." <물질과 기억> 90p,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에 따르면, 나와 외부세계는 비연장적인 것이 아니라 연장적이다. 나와 세계를 서로 독립적인 '내부'와 '외부'로 인식하는 것 (비연장)은 삶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것이다. 반면 이러한 비연장성을 펼쳐서 나와 세계를 바라보면 세계 안에 내가 존재 (연장)하게 된다. 지각의 펼쳐짐을 통해 세계를 바라볼 때 '내부'와 '외부'의 구별이 '부분'과 '전체'의 구별로 귀결되는 것.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내부'와 '외부'의 존재들 사이의 관계는 단절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전체' 안의 '부분'으로써의 존재들은 연결되어있다. 베르그손의 말처럼 "나의 몸이 공간 속에서 이동함에 따라 모든 다른 상들이 변하"니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사랑하는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너의 슬픔이 나의 슬픔이 되기도 한다.


내가 내 삶을 불행하다고 인식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의식 과잉 때문이었다. 나는 왜 자의식이 과잉되었을까? 세계를 비연장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인간은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베르그손 역시 "우주라 부르는 상들의 총체 속에서는 내 몸이 내게 그 유형을 제공하는 어떤 특별한 상들의 매개에 의하지 않고는 진정으로 새로운 어떤 것도 일어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진행된다"고 했으니까. 문제는 이 자의식이 과도하게 비대해졌을 때이다. 이는 타자는 '외부' 세계에, 나는 '내부'에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불변하고 확고부동한 존재로 고정시켜 놓은 뒤 내 외부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획득한 왜곡된 믿음, 표상들 속에서 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고 착각했다. 그 결과 나의 자의식이 과도하게 비대해졌던 것이다. 자의식의 덩치가 너무 커져버려서 타자들을 모두 가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온통 나에게로만 관심이 쏠려 내 고통에만 매몰 되었기에 옆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타인의 고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몸은 모든 다른 물체들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은 실재성을 가지지도, 가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더 멀리 나아가 원리의 적용을 끝까지 따라가서 우주를 생체의 표면으로 축소시킨 후 그 신체 자체를 종국에는 비연장적으로 가정할 중심으로 응축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중심으로부터 비연장적인 감각들을 출발하게 할 것이며, 그것이 말하자면 부풀어서 펼쳐짐 (extension)으로 불어날 것이며, 끝내는 우선 우리의 연장적인 신체와 다음으로 모든 다른 물질적 대상들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연장적인 상과 비연장적인 관념 사이에, 다소간 모호하게 장소를 가지는 일련의 중간적 상태들, 즉 정조적 상태들이 있지 않다면, 그런 기이한 가정은 불가능할 것이다.
...<중략>...
지각의 역사는 내적이며 비연장적인 상태들이 펼쳐지고 밖으로 투사되는 역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다른 형태로 나타내기를 원하는가? 우리 신체에 대한 그 대상의 작용의 증가에 의해 정조 (감정)와 더 특수하게는 고통이 될 수 없는 지각은 거의 없다." <물질과 기억> 101 p, 앙리 베르그손


어떻게 하면 자의식 과잉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인식하는 비연장적 지각에서 '부분'과 '전체'로 인식하는 연장적 지각으로 펼쳐야 한다. 지각은 우리의 잠재적 행동 (내 몸 밖)을 내포하고 감정은 우리의 실제적 행동 (내 몸 속)을 내포한다. 지각이 펼쳐지게 되면 우리는 잠재적 행동을 실제적 행동으로 실현하게 된다. 나의 밖이었던 것이 나의 안이 되는것이다. 즉, 세계라는 '전체'에서 '부분'이었던 나의 인식이 점차 확대되는 것이다. 자의식이 과잉되었다면 '내 몸 안'에서 눈을 떼고 '내 몸 밖'을 봐야 한다. 그렇게 나는 고정적인 점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부분적이며 변화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각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 베르그손에 따르면, 감정과 지각 사이에는 본성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우리 신체에 대한 그 대상의 작용의 증가에 의해 감정과 고통이 될 수 없는 지각은 거의 없다고 했다. 즉, 지각의 강도가 일정 정도 이상이 되면 정조 (감정)이 되고, 지각과 감정 모두 생명체에게 강도가 다른 고통이라는 점에서 본성에는 차이가 없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베르그손은 지각이 펼쳐져서 확장되기 위해서는 지각의 강도가 증가해 감정 (연장적인 상과 비연장적인 관념 사이 일련의 중간적 상태들)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과정은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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