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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창문을 열어준 아이

작은 행동 속에서 배우는 진짜 가르침

by 자유

요즘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
가장 큰 이유는 숙면 덕분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뜨고, 자연스럽게 하루를 시작한다. 7시에 집을 나서니 도로도 덜 막힌다.


학교에 도착하는 시간은 거의 8시.


조용한 주차장에는 교통 도우미님의 차만 있다. 텅 빈 주차장이 주는 고요함, 그리고 곧 단풍으로 물들 나무 그늘 아래 놓인 의자들의 여유로움이 나를 잠시 붙잡는다. 그러나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다시 발걸음을 학교 건물 쪽으로 옮긴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닿을 건물 현관 앞. 그곳에서 잠자리 떼를 마주하니, 가을도 곧 모습을 드러낼 참인가 보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햇빛을 쏟아내는 여름은 아직 자신의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기상이변이 가져온 이 폭염 앞에 이유도 모른 채 힘겨운 환경에 맞닥뜨린 작은 생명들을 바라볼 때면 그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예전 같았으면 가볍게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았을 잠자리들. 지금은 뜨거운 공기에 눌려, 내 그림자를 기댈 언덕 삼듯 의지하며 나는 것만 같다.


단지 몇 걸음을 옮겼을 뿐인데, 그 사이 스쳐간 생각들은 한없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현관 앞에 이르자마자,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내려 마시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탕비실로 들어가 창문을 열어 꿉꿉한 공기를 먼저 내보냈다.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커피를 내리고, 얼음정수기에서 얼음을 가득 담았다.


아침이지만 복도에는 한낮 같은 열기가 가득했다. 한증막 같은 복도를 걸으며 교실 앞 복도 창문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소처럼 교실 맞은편 복도 창문으로 다가갔는데, 이미 열려 있다. '어? 이게 무슨 일이지? 누가 창문을 열었을까!' 이 시간에 창문을 연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교실 문을 열자, 뒤쪽 매트에 앉아있던 아이가 인사했다. 항상 일찍 등교하는 아이다.

“혹시, 네가 복도 창문도 열었니?”

“네, 제가 열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몽글몽글 감동이 번졌다. 복도 창문은 방충망 앞에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아이가 열기엔 무척 빡빡하다. 나조차 힘을 쓰다 손을 다친 적이 있어 아이들에게 부탁하지 않던 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늘 하던 모습을 눈여겨보았던 모양이다.


“정말 고마워. 이런 세상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음을 써주다니 감동이야!”

“헤헤헤.”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이고는 마침 사회 시간 빙고게임 상품으로 가져온 쌀과자를 꺼내 건네주었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인사하고 두 손으로 받아간다. 아직 가라앉지 않은 감동을 소중히 마음에 담아두고 나는 아이에게 아침은 먹고 왔냐고 물었다. 이 시간에 등교하려면 보통 아침밥은 먹고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궁금했다.


"엄마가 전날에 빵을 사 오셔서 오늘 아침에 우유랑 같이 먹었어요."

"그랬구나. 엄마가 일찍 출근을 하시지? 맞아. 그럼, 언니도 같이 왔겠네?"

"네. 언니랑 저는 우리 학교 교문 앞에서 내렸어요. 언니는 좀 더 걸어가야 중학교가 나와요."

"그래. 고생이 많다. 늘 이렇게 일찍 등교해서 교실 환기도 해주고 정말 고마워."

"넵!"


아이는 큰 소리로 밝게 대답을 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개학날, 일찍 등교해 휴대폰을 보고 있던 아이에게 “등교하면 휴대폰은 가방에 넣어두고, 아침활동 시작하기 전에 책을 읽는 건 어떠니?”라고 조용히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후로 아이는 약속을 잘 지켜주고 있었다.


작은 친절과 배려, 관심은 어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무언가를 배우면, 그것을 삶 속에서 곧잘 실천한다.


다만 무심한 어른들의 눈에 잘 띄지 않거나, 그들이 기대하는 기준에 못 미칠 뿐이다. 아이들은 매 순간 성장한다. 특히 하루 중 삼분의 일을 보내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등교부터 하교까지 모든 순간 속에서 배우고 실천한다.


오늘 내가 느낀 진한 감동은 작은 일이었지만, 그 행동은 아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 그리고 믿음은 표현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이 아니라, 어른들의 행동을 따라 배운다.”


오늘 아이가 보여준 모습은, 내가 해온 작은 행동이 아이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이리라. 그 작은 울림이 또 다른 성장의 시작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졌다.


그러다 문득, 내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은 때로 스승을 넘어 더 크게 자라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보여주는 언행 하나하나가 아이들의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내 언행 또한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나 역시 늘 배움에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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