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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Nov 01. 2019

역사 예능에 빠진 우리와 아편에 빠진 중국인이 다를까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TV에서 역사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면, 채널을 돌린다. 쇼 같이 감동을 주입하는 플롯이 탐탁지 않아서다. 자체의 콘텐츠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매회마다 편향된 반복에 넋을 잃는 내 모습이 싫어서다. 꼭 치매 걸린 노인들만 모아놓은 양로원의 어린 노인네들 같다. 대중가요 3곡이면 그 분들과 십 년은 놀 수 있다는 어느 개그맨의 농담이 나 같은 시청자를 치매노인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싫다. 그중에 역사 예능이 가장 싫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연극영화과 출신의 지식 소매상이 그럴싸한 슬로건을 내세워 앞장섰고 그 소매상이 시장을 독점하자, 공장까지 차려 지식 원자재를 직접 구매하고 공장에서 가공해 직접 내다 파는 시스템을 보인다. 그래서 다소 역겹다. 이게 정말 지식 소매상이네, 처음엔 씁쓸하다가 이제는 역겹다.


Diamond is Forever.



2차 세계대전 후 드비어스가 전세계 신부들의 왼손을 다이아몬드 반지가 차지하도록 세뇌한 프로파간다 슬로건과 같다.  


그래서 채널에 보이면 바로 돌려 버린다. 나 같은 사람이라도 시청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지식 소매상이 원자재 구입, 제조가공과 유통까지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지, 라는 생각이다. 


일종의 정의와 공정이 바탕된 지식 유통시장에 소비자의 한 명으로 기여하고 싶다.


커피에만 공정 거래와 공정 무역이 있는 게 아니다. 커피는 현물 경제와 무역의 불수급이 인류에게 부조리를 떠넘기는 문제를 일으키지만, 역사 지식의 불공정 유통은 우리와 미래 후손들이 지녀야 할 자존과 실체를 파괴한다. 그러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 소매상은 사교육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벗어나, 공중파와 케이블 예능에서 감동을 신파적 무기로 해서 역사 지식의 유통 시장을 틀어쥐었다. 더 많은 수급을 맞추기 위해 공급을 늘여야 했고, 그래서 그 소매상은 조직을 구성하고 지식 원자재를 발굴하고 이를 역사 연구소라는 간판을 단 공장에서 가공해 그럴싸한 소매 제품으로 만들어 방송에서 내다 판다.

그리고 공장은 점점 커지고 연구소 스태프들은 공장 노동자가 되어 수많은 책과 서평을 긁어모아 정리한 뒤 비슷비슷한 상품으로 여기저기 방송 소비자에게 구매를 강요한다. 당연히 1시간 이내에 눈물을 자아낼 감동이 각인된 상품이어야만 시장에 노출될 수 있다.

우리의 역사는 E. H. Carr의 우려와 달리 연극영화과 출신의 지식소매상에 의하여 뜻하지 않은 궤도로 빠지고 있다.


몇 몇 노벨상 수상자들 가운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무기로 에코 챔버를 상술로 하는 페이스북을 꼽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지식 소매상의 물상주의와 저급한 에코챔버 프레임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자멸할 수도 있다. 지식 예능이 오히려 사회의 지적 자산을 파괴하는 아이러니다. 



그래서 나는 <역사저널 그날>과 <차이 나는 클래스>를 애청한다. 다양한 지식을 다양한 패널들과 다양한 시각에서 마주한다. 어쩔 때는 동일 사건과 사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강사가 판이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무엇을 선택하고 기억할지는 시청자의 기억력과 정성에 달렸을 뿐이다. 그래서 날 것 같은 이런 꾸튀르를 사랑한다.


프랑스어로 꾸튀르는 수제 재단을 의미하는데 오트 꾸튀르라고 하면 뛰어난 명품 재단 의류 등을 말한다. 프랑스의 럭셔리 패션은 오트 꾸튀르에서 기성복으로 변환해 시장을 확장했다. 지금의 지식 소매상은 오뜨 꾸튀르를 퇴보시키고 기성복의 획일화된 시각과 설계된 프레임으로 역사와 지식을 강요한다. 소비자가 오트 꾸튀르를 선택할 자본력과 노력이 없다면 백화점 기성복에도 설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역사와 지식에도 강요한다.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수정자본주의로 야경 정부를 대신했듯, 약간의 조정과 노력이 방송가와 시청자들 사이에서 필요할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얼마 전 예술의 전당에서 유망주로 떠오른다는 도슨트의 강연 퍼포먼스를 보았다. 일반 관람자보다 더 깊은 관심으로 무장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벌인 퍼포먼스인 만큼 기대가 유독 높았다. 하지만 이내 몇 분 지나지 않아 큰 실망이 일었고, 이내 나의 기대치를 낮추어 "그래, 쇼라고 생각하고 감동받자."라고 나를 달랬다. 연극이고 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리허설을 몇 번이나 하고도 대사를 잊어버린 배우처럼, 심금을 울리기 시작하다 깊이 감동에 빠지려들 때 즈음. 도슨트의 적막을 깨는 이 같은 비명이 들렸다.


나레이션을 잊어 먹어 다시 중간 부분에서 시작을 반복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그래서 고흐는....", 아이고, 이게 뭐야,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연신 떼어낼 줄 몰랐다.


이 모두가 적반하장의 뻔뻔함 때문이다. 미술관의 미술품과 화가보다 도슨트의 나레이션에 감동받는 관람객, 역사적 고찰과 탐구보다 인스턴트 감동을 주입하는 쇼를 연극하는데 혈안인 연극영화과 출신의 에듀테이너 지식소매상, 자신들이 후세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무식한 방송 패널들. 적반하장의 뻔뻔함이 현실의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가려버린다.


역사를 예능으로 기억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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