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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27. 2019

82년생 김지영 이전에 72년생 김철수가 있다.

남자도 젠더 부조리의 피해자다.

요즘 때아닌 페미니즘 논쟁이 이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생각하면 왜 이런 남녀의 상대 혐오가 현상화되는지 의아하다.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나는 바로 구입해 읽었다. 쉰 먹어가는 한국 남성인 나는 몇 번이나 가슴이 먹먹했다. 맨 마지막 의사의 대화에선 실소와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여자가 아니고, 외국인도 아니며, 평생 한국에서 살았고, 아들만 있는 아버지다. 게다가 남자 형제뿐인 맏아들이고 남고, 공대를 다녔다.  요즘 남자들이  영화를 두고 그렇게 못난 짓을 하는지 실소가 나온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남자의 억울함이 왜곡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남자로 태어나 남자의 신분으로 교육받고 남자로서의 의무와 지위를 강요당했다. 대한민국 남자에게는 몇 가지 독특한 의무가 지어진다.


하나는, 역사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애와 애국심에 심취되어야 한다.

둘째는, 부모와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있고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기며 희생 정신이 드높아야 한다.

셋째가, 직장에서는 애사심을 우선으로 해야 하고, 회사와 직업을 위해서라면 모든 욕심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정말 피곤하고 모호하고 중장기적이고 애닳픈 의무들이다. 가지 의무 가운데 하나라도 불성실하다면 양아치, 패륜아, 망나니 등으로 불리게 되고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다.


보통의 우리나라 남자들, 특히 40대 이상, 에게 자신의 일생은 누군가를 위한 삶이었다. 학교를 다니던 때는 부모님의  가난을 끊어내기 위한 막중한 책임을 졌다. 군대에 입대해서는 국가와 전우를 위해 죽음까지 각오하며 초연히 도록 세뇌당했다. 졸업 후 취직해서는 회사와 국가경제를 위해 온갖 회식, 출장, 접대, 야근을 어떤 대가도 없이 강요당했다. 내가 일한 만큼 급여를 달라고 감히 말했다간 사회성 없는 무책임한 놈이 되고 말았다.


결혼해서는 집을 사고 아이를 키우는데 자신의 담배값도  아껴야 했고, 아내에게는 항상 죄인처럼 미안해하며 자격지심에 빠졌다. 그러다 모두 사십이 넘고 오십이 되었다. 이제는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해서, 혹은 자녀가 결혼하는데 혼수와 조그만 집을 장만해줘야 해서, 라는 이유가 또다시 우리 앞에 우뚝 서있다. 우리 장년들은 거인의 발아래 발치 너머 있는 자신의 삶을 향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반드시 그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
나는 타인의 인생을 위해 태어난 부역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행복하도록,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도록,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게 생명을 주신 신에 대한 을의 계약이자, 나의 존재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몇 가지 철칙을 정했다. 그리고 아직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하나는, 나의 판단, 결정, 결심 혹은 이를 깨닫지 못해 놓친 데 대해서 어떤 원망도 후회도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

둘째는, 나는 나를 위해 건강과 운동을 반드시 챙긴다. 비타민 섭취, 식단 조절, 격투기를 배우는 시간과 돈의 투자, 탈모와 피부 노화를 막는 안티에이징에 나의 삶의 리소스를 투여한다. 조금이라도 젊게 살고 싶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아내, 자녀들을 두고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현실의 걱정과 계획에 투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온 가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온 가족이 '알아서 잘 살 테니 걱정도 팔자다' 라며 유쾌한 핀잔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렇게 나는 세 가지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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