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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17. 2019

불에 구운 고기 맛에 중독되는 이유

비건이 굳이 될 필요는 없어.

미국에서 공수해 온 그릴에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통구이용 고기 더미를 넣고 훈연한 지 10시간이 지났다. 이른 아침 식당에 출근하자마자 그릴에 불을 지피고 시간마다 고기 상태를 점검한다. 불의 상태, 고기의 육즙 상태, 부위별로 제대로 익혀지는지 계속 확인해야 한다. 나라면, 좋은 부위를 내놓기로 유명한 식당이나 정육식당을 찾아가 맛있게 와인이나 소주 한잔 곁들이다 끝낼 텐데, 나영 아빠는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인 듯하다. 고기가 최상의 맛과 향으로 익혀지는 과정을 즐기는 그릴 마니아다. 스마트폰으로 보내오는 사진만 봐도 답답하다.


몇 시에 가면 돼?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갖은 인연을 통해 이웃을 만나고, 어색한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매번 기대를 크게 거는 신선함에는 변함이 없어서 살만 하다. 저녁 늦은 밤 10시 즈음 나영 아빠가 운영하는 식당에 모였다. 아름다운 솜씨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붉은 와인잔을 비워갔다.


고기는 우월성의 상징이지,
예전에는 고관대작들이나 서양 사람들만 먹는 걸로 알았잖아.



그렇다. 불에 구워 맛있게 익은 고기를 덩어리채 먹는 호사를 누린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다. 이전까지 내가 먹어본 고기 음식은 경상도식 소고깃국이 전부다. 밥알같이 작게 썰은 쇠고기를 콩나물과 무만 넣은 국물에 우리고 고춧가루로 얼큰하게 자아내면 커다란 공깃밥을 몇 그릇씩이나 비우곤 했다. 고기가 밥알 속에 뒤엉켜 치아로 씹는 질감을 느낄 수 없었지만 벌겋게 우려진 국물 위로 둥둥 떠 있는 고기 기름에서 감칠맛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쇠고기의 감칠맛인지 미원의 감칠맛인지 대충 감이 오지만, 쇠고기의 맛을 일생에서 가장 환호했던 기억이다.


고기란 무엇인가? 라고 나영 아빠가 뜬금없는 퀴즈를 냈다. 와인 두 세병과 고기 맛에 흥분한 우리들은 별 가치 없는 농담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뱉은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고기를 정의했다.


식물을 먹고사는 육식동물의 살과 근육을 도려낸 덩어리


 

다들 훌륭하게 만들어낸 답안에 고개를 끄덕인다. 동물을 먹고사는 육식동물의 살과 근육이 식탁에 올랐던 기억이 없다.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그렇구나, 우리가 먹는 고기는 초식동물들의 살과 근육이구나!


불에 구운 고기를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영양학적으로 설명된다.

고기에 포함된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이 고기를 굽는 고열로 인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아로마를 만들어 낸다. 이 반응을'마이야르 반응'이라 부른다. 그리고 고기의 지방이 불에 타면서 지방 타는 냄새를 사방에 방출하고, 이런 지방에서 감칠맛이 풍미를 더하게 된다.
즉, 불에 태우면서 고열로 인해 만들어진 아로마, 지방이 타는 냄새와 그 질감에 의해 사람이 고기에 중독된다고 한다.


 그런데 고기는 이런 중독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우월성과 남성성을 나타내는 의식의 소모품이 되었다.


소빙하기를 맞아 나무 위 생활을 청산한 인류의 조상이 풀이나 과일보다 육식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고기는 위도를 달리하면서도 널려 있지만 풀이나 과일은 비슷한 위도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인류는 불을 통제하는 기술과 집단 사회의 생산 잉여물이 유한계급을 만들면서, 귀족과 상류층이 여가를 즐기는 유흥의 장식품으로 자리 매김 했다.


그래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기 요리는 상류층, 귀족, 문명인, 서양인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각인되었다. 이러한 권위의식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어졌는데, 개발도상국이나 가난한 아이들은 당연히 고기를 먹지 못하는 불쌍한 기아 계급으로 인식하는 이유다. 그래서 측은한 사람을 만나 안쓰러운 자비심을 베풀 때, 사람들이 말한다.


고기 먹은 지 오래지? 삼겹살이나 먹을까?



곡물과 육류를 공급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소수의 중개상들을 통하여 전 세계 식량을 통제한다. 그래서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식량이 인류의 1년 치 식량을 웃돌지만 현존 인류의 30% 이상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돈으로 구입비를 치르지 않는 고기는 차라리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이들 기업의 독과적 수익 확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유럽의 정부 정책과 육식 업체의 마케팅으로 인해 고기는 여전히 권위와 경제 지표의 상징으로 굳어간다. 농작물, 유통, 육가공, 도소매 등을 육식에 관련해 종사하는 인구가 세계적으로 1억 3천만 명에 이른다고 하니 당분간 해결의 방법이 흐려 보인다.


탄소배출량의 80%를 차지하고 지구에 있는 식용수의 90%를 소요하는 육식 산업을 없애자는 주장이 환경보호주의자들 사이에 있지만, 평생 덩어리로 된 고기 하나 먹지 못하고 죽어가는 20억 명 이상의 기아 인구를 돌아본다면 차라리 균형 잡힌 유통 시스템으로 인류 전체에게 보편적 식량의 하나로 전락시키는게 더 낫지 않을까? 기아를 해결하고 우월적 수익 착취가 레드오션의 고전산업으로 전락하면서 이런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까? 그 이후 고기는 사람을 가르는 우월의 상징이 아니라 아로마와 감칠맛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택으로만 남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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