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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Nov 02. 2019

하루키의 카프카처럼, 인생 갈 데까지 함 가 보자!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사에키 씨, 저와 자지 않겠습니까?”하고 나는 말한다.
“내가 다무라 군의 가설 속에서처럼 다무라 군의 어머니라고 해도?”
p118-119(카프카와 사에키)     



덩치는 또래보다 크지만 그래도 고등학생의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열다섯 살의 주인공이 오십 대의 도서관장 사에키에게 꺼낸 말이다. “저와 자지 않겠습니까?”. 동맥 속 혈류가 과분하게 흐르는 어린 남자아이의 당돌한 성애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에 담긴 사에키의 질문이 고개를 기울이게 만든다. 함께 자자고 청하는 남자아이의 어머니라니. 그럼 어머니 일지 알 수 없는 여인에게 육체적 관계를 제안한다는 말인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단 이렇게 끊어 만든 단면만 본다면.   

  

해변의 카프카 속에 그려진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는 내가 꼽은 정형적인 하루키 키드다. 어릴 적 누나를 데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의 빈자리엔 카프카를 자신의 조각 작품 가운데 하나 정도로 여기는 아버지가 채우고 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카프카의 뇌 속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각인을 새기고 마감질 하며 단 한 톨의 풍화물도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카프카는 스스로 아버지를 버리는 열다섯 생일날까지 각인된 글자 하나하나를 낭독하듯 읽으며 살아간다.

“나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와 육체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냉혹한 아버지는 열다섯 번째 생일날에도 보이지 않는다. 소년에게 아버지는 거무스럽게 푸른빛의 날 선 달빛을 받으며 창가에 선 유령과 같다. 그리고 유령은 소년을 바라보며 입 속으로 조용히 되뇐다. 그들을 둘러싼 차가운 공기의 떨림을 통해 유령의 말없는 되뇜이 소년의 머릿속으로 쏟아진다. 그리고 소년은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무슨 수를 써도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 아버지는 말했어요. 그 예언은 시한폭탄처럼 내 유전자 속에 심어져 있어서, 무슨 짓을 해도 예언을 변경할 수는 없다고 그랬어요.”
p358(카프카)    


 


오이디푸스의 저주를 미리 알아버린 소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는 아버지의 저주로 인해 더 빠르고 무서운 힘으로 다가온다. 소년에게 가혹한 저주가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열다섯 살 생일 밤. 소년은 아버지를 버린다. 혼자 남은 아버지에게 죽음보다 더한 외톨이의 외로움을 선물한다. 그리고 소년은 여정을 떠난다. 다가오는 운명의 수레바퀴에 밟힐 날을 기다리는데 지쳤다. 소년은 수레바퀴의 테두리가 닿는 지면의 어느 즈음을 해 마주 보며 달리기로 결심한다.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중략).....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 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방향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거기에는 백골을 분쇄해 놓은 것 같은 하얗고 고운 모래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지.”
p17(프롤로그)     




살기 위해 뛰어간다. 뛰지 않으면 폭풍 속으로 삼켜질 것 같다. 일단 삼켜지면 나의 존재가 분쇄되어 백골이 될 것만 같다. 그래서 죽어라고 뛴다. 그런데 아무리 뛰고 뛰어도 모래폭풍은 내 엉덩이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무서운 그 힘을 피하려고 방향을 바꾸고 다시 뒤를 바라보면 내 두려움을 이미 알아챘다는 듯 모래폭풍은 변경된 진로에서 더 센 바람을 일으키며 내 세상을 부수고 집어삼킨다. 얼마 버티지 못해 나도 그 희뿌연 악마의 입속으로 들어가 하수구 같은 위장 속에서 오폐수 같은 위산에 범벅되어 나의 존재가 녹아내릴듯하다. 이게 인생이다. 아니 인생이라 여기는 우리의 두려움이다. 닥쳐보지 않은 미래의 나는 항상 겁에 질려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내 인생의 나락이고 끝이라 여기고 공포에 떤다.     

 

하지만 뜀박질을 멈추고 정신 나간 피스톤처럼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허파를 진정시키자. 그리고 폐 속의 공포와 버무려진 무거운 공기를 입 밖으로 들어내자.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주변의 백색소음을 찾아 정교하게 튜닝해 보자.


백색소음의 주파수를 정확히 찾아내어 조금씩 조금씩 노이즈 캔슬레이션 회로를 만들어가자. 그리고 내 귀에 백색소음을 흔적 없이 도려내어 내 눈에 띄지 않는 먼 차원으로 보내버리자, 온몸의 떨림이 사라지고 들숨과 날숨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호흡이 골라지면 조용히 뒤를 향해 몸을 돌리자. 그리고 다가오는 모래폭풍의 쾌쾌한 먼지 냄새를 맡아보자. 내 폐 속의 세포가 놀라지 않도록 폭풍의 먼지 담긴 그 공기를 가슴을 최대로 부풀려 마셔보자. 더 이상 가슴이 커지지 않을 때까지 최대한 부풀려 들이키자. 


나의 폐는 폭풍의 유전자를 지닌 먼지와 하나 되어 나의 유전자를 단련시킨다. 폭풍의 자욱하고 뿌연 냄새는 나의 후각을 통해 정신을 긴장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긴장된 정신은 나의 뇌 속 피질을 이루는 뉴런 하나하나에 활성화된 생체 전압을 일으킨다.


마치 뤽 베송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루시의 뇌를 100퍼센트로 활성화시킨 신종마약 CPH4의 역할처럼. 그리고 나는 조용히 폭풍도 알지 못하게 아주 조용히 두 눈을 뜬다. 내 눈 앞의 거대한 모래폭풍이 두 눈으로 감당할 수 없을만치 가까이 다가왔다. 따가운 폭풍의 모래가 두 눈과 얼굴과 피부를 때리고 할퀸다. 따가운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할퀸 표피 사이에서 핏방울이 올라오지만 이미 활성화된 뉴런의 생체 에너지가 나의 몸을 훌륭한 방패막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폭풍 속에서 나의 육신에서 영혼을 잠시 분리해 폭풍과 싸운다. 결국 이 싸움에 주인공과 조연은 나의 영혼과 육신이다.     


“그리고 물론 너는 실제로 그놈으로부터 빠져나가게 될 거야. 그 맹렬한 모래폭풍으로부터. 형이상학적이고 상징적인 모래폭풍을 뚫고 나가야 하는 거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놈은 천 개의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네 생살을 찢게 될 거야.
......(중략)......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 폭풍의 의미인 거야.”
p18-19(프롤로그)     




비록 열다섯 살이지만 왕좌의 게임 속 이름만 그럴듯한 대현사와 달리 카프카는 운명을 만나서 끝내 버리려 달려간다. 모래 폭풍을 없애는 장치를 만들고 기후를 변경시키려는 거창한 전략 같은 것 없이 전술적으로 모래 폭풍을 감내하듯, 카프카는 운명의 허를 찌르려 한다.


그리고 어머니 일지 모를 사에키 여사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다. 어머니일 거라고 스스로 세뇌하며 사에키 그녀와 육체적 관계를 맺고 사랑한다.    

  

카프카는 이미 폭풍 속으로 돌아설 때, 누나 일지 모를 사쿠라를 성적으로 이끌렸고 꿈속에서나마 그녀를 범하고 자신의 운명을 앞당겨 끌어당긴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거라면 빨리 맞는 게 낫다, 라고 카프카가 자조한다.     


카프카가 벌이는 적극적인 인생 돌격작전에 고대 오이디푸스의 조력자들이 현대적 등장인물로 튀어나와 카프카의 페르소나로 거듭난다. 그리고 운명의 허를 찌르는 돌격대의 갑옷으로, 창으로, 백마로, 투석기로, 식량으로 변해 카프카와 함께 한다. 일면식도 없는 나카타 노인이 카프카를 대신해 운명의 포학함을 대신한 아버지를 죽인다. 운명은 자신이 카프카로 인해 죽게 될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것일지, 나카타 노인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을 수 없도록 아버지 스스로 삶을 재촉한다. 그리고 문맹의 나카타 노인을 도와 카프카가 운명에 미련을 버리고 현실로 귀환하도록 도와주는 호시노는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와 같다. 삶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에게 고대의 페르소나를 환생시켜준다. 운명의 줄거리는 비슷해도 페르소나는 주인공의 의지를 위해서만 움직인다. 그 또한 태곳적부터 저주받은 페르소나의 운명이다.     


다무라 카프카는 신 앞에서 혹은 아버지가 정성 들여 새겨놓은 운명 앞에서 절망하거나 무릎 꿇지 않았다. 스스로 운명을 맞아 헤치고 성장했다. 그래서 카프카는 “이제 이 운명을 끝냈구나”라고도 자조하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운명을 뚫고 나와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만들었다는 희망을 안는다. 그리고 카프카와 까마귀 소년은 대화한다.     


“이윽고 너는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너는 새로운 세계의 일부가 되어 있다.”
p420(까마귀 소년)   



  

천 개의 면도날이 도륙하고 지나간 두 눈과 피부에서 빨간 체액이 흘러 나를 적셨다. 998개, 999개, 1000개. 면도날이 바닥나자 폭풍 속 먼지와 모래의 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바람의 무거운 압력도 줄어든다. 선발투수보다 약한 공을 뿌리는 마무리 투수를 만나면 풀죽었던 9번 타자도 홈런을 쏘아 올리듯, 약해진 폭풍의 모래와 바람은 여느 따스한 봄가을이면 감내할 수 있는 바깥공기의 변덕 수준으로 변했다. 그리고 내 몸을 마구 할퀸 면도날 자국이 갑옷을 이루는 비늘처럼 나의 피부를 단단히 여매온다.


 난도질당한 두 눈의 칼자국은 세상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날카로움으로 눈의 기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나는 강해졌다.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세계의 일부로 세상의 끝에 선다.     


나는 꿈꾼다. 그리고 책임진다. 예츠가 말하고 하루키가 옮긴 것처럼.     


많은 의미를 지녔을 이 꿈처럼, 비중이 있는 시간이 나에게 덮쳐 올 것이다.

세계의 맨 끝에서도 나와 카프카가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세계의 끝까지 가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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