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쓰기모임이 있는 날이다. 이 모임은 내게 숨구멍이 되어준다. 돌보는 사람이 아니어도 되는 시간 속으로 들어와 그냥 나로 있다 간다. 우리는 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각자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쓴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나와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집이 아닌 곳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는 엄마이고 아내로 존재한다. 아무도 없을 때조차 그렇다. 4인 가족이 사는 집은 오랫동안 내게 안전한 울타리였지만 어느 순간 여기에만 머물면 그 울타리가 나를 집어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런데 막상 집을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었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내가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카페에서 친구와 자식들의 미래와 남편의 퇴직 이후 어떻게 살 것인지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오면 왠지 더 공허해졌다. 자식과 남편이야기 말고는 나눌 이야기가 없는 관계란 지루하기만 했다. 그런 이야기는 집안에서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내나 엄마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로 엄마로 이십오 년을 살아온 내가 그 이야기 아니면 무엇이 나일까. 이 질문이 나를 아프고 슬프게 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지금껏 없었던 사회적 지위가 생기는 것도 아닐 테고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삼십 대인 두 친구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글을 썼다. 그리고 넉 달 뒤에 엄마가 되는 친구에게 부디 계속 글을 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들이 글쓰기로 가족과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가꾸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건 내가 듣고 싶은 위로와 응원이기도 했다. 자주 실망하고 자주 우울해지는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말에 늘 허기져 지냈다. 누구보다 내가 믿으려 하지 않는 말이기도 했다.
쉰을 한 달 앞둔 겨울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용하다는 곳에 사주를 보러 갔었다.
"제 인생은 정말 이게 다인가요? 혹시 앞으로 뭐 좋은 일 없나요?"라고 물었다. 칠순이 넘은 마른 제구의 여성은 내 사주가 적힌 A4용지에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더니 드디어 마침표를 찍으며 말했다.
"네. 없습니다. 이게 다입니다. 그래도 이만하면 한 세상 잘 살았지요. "
무거운 나무 대문을 열고 나와 전철역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만족할 줄 알아야지. 이만하면 됐잖아.'
엄마이고 아내인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하자는데 '○○○'이라는 사람은 허기진 듯 자꾸 뭔가를 찾아다녔다.
어느 자리에서도 숫자로는 밀리지 않는 나이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삶은 계속 헤매며 살아가는 것 말고 구원이 없다. 그런데 이젠 헤매더라도 좀 담담하고 당당하고 싶다. 누구에게 인정받아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가난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다.
딸들을 힘껏 응원해 주다가 뒤돌아서면 화가 나 있는 내가 보였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내가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다른 엄마들은 딸들에게 '너희만 잘되면 엄마는 지금도 괜찮아. 너희가 좋은 옷 입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사람 만나면 엄마는 행복해'라고 말하는데 나는 왜 그것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 없을까.
내 딸들이 꼭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도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껏 식구들을 위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많이 썼으니 이제 내 차례인 건 아닐까? 그래도 되지 않나? 묻고 또 묻는다. 그렇게 묻는다는 건 아직도 내 것보다 급해 보이는 숙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실하게 살다가 숙제보다 목숨이 먼저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냥 매일매일 조금씩 발을 빼기로 말이다. 조금씩 꾸준하게 불성실해져서 마침내 아무도 내게 기대하지 않는 그날이 오기를 앞당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