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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Dec 01. 2022

 #11 프렌치토스트의 촉촉함처럼

프랑스 니스


프렌치토스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진부해져 버린 요즘이다. 백 주부의 먹다 남은 식빵 프렌치토스트 레시피가 아니더라도, 요리에 큰 취미가 없는 사람도 어떻게든 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프렌치토스트가 되었다. 아마 나처럼 삼십 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계란물에 담갔다 프라이팬에 부쳐 백설탕을 솔솔 뿌려먹는 한국식 프렌치토스트가 가장 익숙한 버전이리라. 초등학생 때 하교 후 집에서 엄마가 이렇게 만들어주신 프렌치토스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였다. 꼭 대각선이 교차하게 두 번 잘라 작은 삼각형 모양으로 내주는 것이 우리 집 룰이었다.

 

 우리 한국인에게도 ‘추억의 먹거리’가 된 프렌치토스트는 그러나 정작 프랑스에서는 아무데서나 파는 음식은 아니다. 메밀가루 반죽으로 얇게 부쳐 갖가지 속을 넣어 말아먹는 ‘걀레트’, 두툼하면서도 가벼운 빵 속에 불맛 나는 고기를 채우는 ‘케밥’이 훨씬 일반적인 아침이자 간식이다. 하지만 비행을 하던 당시의 나는 프랑스 식문화를 아는 것만 빼고 몰랐던 사람, 프랑스 가면 바게트에 와인만 먹으면 만족했고 또, 호텔 조식에서 먹는 프렌치토스트에 열광했다. 특히 프랑스 남부 지방 대표 주자 ‘니스’ 비행을 받게 되면, 비행 내내 이튿날 먹을 당시 묵던 호텔의 프렌치토스트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날의 니스 비행은 무탈했다. 사실 특별한 것이 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비행. 큰 재미는 없어도 어쩌면 가장 좋은 비행이 무탈한 비행일 것이다. 일이 생긴다면 드라마가 생기기 마련인 게 특수한 기내라는 장소니까 말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목적지에서 뭘 할까 뭘 먹을까 생각하며 호텔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스테이가 하루뿐인 유럽 비행이라 제대로 먹는 시간은 딱 한 끼라고 봐야 해서 항상 신중하다. 이미 여러 번 가 본 니스라서 그 유명한 자갈밭 바다는 물론, 옆 나라 모나코도 다녀왔다. 가보고 싶던 샤갈 박물관은 어째 매 번 비행 갈 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고, 동기가 추천한 근교 에즈 eze도 한 시간은 가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비행 직후 한 시간 또 이동하는 건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쉽지 않다.

 3월의 끝자락이었던 날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날씨에 그냥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지칠 때까지 걸어야겠다. 해변 끝까지 걷다가 산자락에 올라 니스 해변을 카메라 렌즈로 내려다 보고, 등산 겸 산책하는 현지인과 여행객이 뒤섞인 사람들을 지나쳤다. 어렵게 고른 식당에서 처음 맛봐서 그런가 비릿했던 피시 수프에 레몬 버터소스를 곁들인 가자미 구이를 먹었다. 젤라토를 올린 애플 타르트까지 디저트로 먹고 배를 두들기며 나왔는데 호텔까지 돌아가려니 피로가 몰려온다. 버스를 타야겠다. 버스 타면 금방이야.

 정류장에 서서 이튿날 먹을 프렌치토스트를 떠올리고, 조식 먹고 장 보러 가야지 생각하고 있는 일차원적으로 눌려버린 지친 나, 그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bon soir!”

  혹시 내 비행에 타셨던 손님인가 싶어 나도 모르게 서비스 미소를 장착하고 인사를 받았다.

 “아침에 호텔 앞에서 봤어요 아가씨, 바다 구경하고 있던데.”

 어맛,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다 있었다니. 그런 나를 기억하시다니, 그리고 또다시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정말! 여기 사세요?”

 버스가 한참이나 오지 않아 우리는 담소를 나누었다. 홍콩에서 오신 아주머니는 니스에 별장이 있다고 하셨다. 세상 부러운 사람이었다.

 “저도 이곳에 별장이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아주머니는 자기가 원래 부자가 아니라며,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모으고 모았고 좋은 남자와 결혼해(프랑스인 남자와) 두 사람이 좋아하는 도시에 별장을 구입했다고 하신다. 되는대로 쓰지 말고 일 한창 할 때 꼭꼭 모아두길 바란다, 그리고 뜻이 맞는 이와 결혼하거라. 정류장에서 인생 조언을 하시는 것이 영락없는 동양계 아주머니다, 하하.

 내가 하루만 묵는 승무원인 것을 알고 갑자기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신다. 조금 망설였지만 사진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니, 휴대폰을 뒤져 몇 장 없는 유니폼 사진을 보여드렸다.

 “어머어머, 이것 좀 봐요, 너무 예쁘지 않아요?”

  휴대폰을 가지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진정한 오지라퍼 아주머니! 내가 아주머니 딸이라도  마냥, 자랑을 하시는 모습이 쑥스러우면서 웃기기도 해서 나는 그냥 까르르, 웃었다. 잠시 머물다 갈 뿐인 나이니까.


  기대했던 것처럼 호텔 식당에서의 프렌치토스트는 부들부들 촉촉하니 맛있었다. 그냥 식빵이 아니라 버터와 달걀이 가득 들어간 브리오슈 빵으로 만드는 프렌치토스트는 식빵의 것보다 두 배는 보드랍고 풍미 있다. 슈가파우더를 톡톡 마무리한 모양디저트와 식사  가지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기도 하다. 내가 항상 추억할 프렌치토스트는 역시나 엄마표 설탕 뿌린 식빵이겠지만, 이제 니스를 추억할  있는 브리오슈 버전이 생겼다. 나도 이곳에 별장 하나 가지려면  먹을 생각이 아니라 빵을  생각을 해야 하나, 하면서 오늘의 촉촉함을 채워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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