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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30. 2024

삼십칠일.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의 취향

핸드드립 커피


커피를 안 마시고 하루를 어떻게 지내지?


임신을 확인하고 든 생각이었다.

한국인 대부분이 커피가 일상화되어 있는 오늘, 나도 더하면 더했지 커피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아니었다. 승무원으로 일할 때는 하루 묵는 각국의 도시에서 맛있는 커피 가게를 점찍어두었다가 찾아가는 게 나의 미션이었고, 결혼 후 일을 안 할 때는 소소하게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면서 커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늘리려 했다. 매일 아침 커피콩을 드르륵드르륵 갈면서 맡는 향으로 잠을 깨는 낙이 당분간 없어진다니, 아이는 축복이지만 커피에 대한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입덧 때는 커피에 들어있는 미량의 기름도 거북할 만큼 커피가 안 당겼다. 2,3주 안 마시다 보니 안 마셔도 괜찮구나, 싶으면서 이 기회에 카페인도 줄이고 커피 지출도 줄여보자. 걱정했던 것보다 커피에 완전히 중독된 건 아니었어, 호호. 카페인 없는 캐모마일이나 루이보스, 유자차 등으로 티타임을 대신하며 차 마시는 취향으로 바꾸는 것도 좋고.


그럴 리가 있을까, 입맛이 한 번에 바뀔 리가 없다. 슬금슬금 입덧이 끝나가면서 디카페인을 한 잔 두 잔 홀짝이기 시작했다. 요새는 웬만한 카페에 디카페인 옵션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추가 요금을 천 원이나 더 받는 곳은 좀 너무하지만) 하지만 완전히 내 입맛을 회복하고 나니 추가로 돈을 더 주고도 맛이 없는 디카페인 원두를 먹는 게 아깝다. 대부분이 강배전 로스팅인 디카페인 원두는 우유를 섞어도 좀처럼 먹을 만해지기가 어렵다.


오늘은 그 불평불만을 잠재워 준 커피를 만났다. 디카페인 블렌딩 원두도 이렇게 싱그러운 맛이 날 수 있구나. 핸드드립 전문인 카페 바에 앉아 한 치의 오차 없이 전문적으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를 넋 놓고 구경했다. 친구와 나는 라테를 한 잔씩 마셨지만 드립 한 잔만 나눠먹자, 이끌리듯 주문했다. 저런 프로페셔널이 만드는 커피를 안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냐며. 카페인 함량이 더 높은 드립커피라 양심상(?) 에스프레소 잔에 받아 마셨는데,

와.

좋은 커피는 이런 맛이었지.

작은 한 잔이 소중해 한 모금 아니 반 모금씩 입안 전체를 돌아 혀끝까지 남기면서 커피 타임을 길게 늘여본다.

변하지 않아 다행인 내 입맛, 잃지 않아서 기쁜 내 취향.


또 한동안은 맛이 그저 그런 커피로, 근처 가성비 좋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겠지만

내 취향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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