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계절이 뒤섞인 온실

2월, 국립수목원(2/2) - 열대온실과 난대온실

by 빛샘

지난여름~가을쯤에 국립수목원 난대온실이 공사한다고 출입이 통제되던 때가 있었다. 갈 때마다 몇몇 구역은 아예 못 가보고 돌아가야 했는데, 난대온실 공사가 늦어지는지 내가 갈 때마다 공사 중이었다. 참 운도 없지.


올해 들어 다시 가보니, 난대온실 공사는 어느새 끝나 있었다. 이전 글에서 숲 구역의 사진을 찍다가, 슬슬 한기가 밀려와서 온실을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열대온실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열대온실은 정각마다 입장이 가능한데, 다행히 이번에도 타이밍이 맞아서 정각이 아니어도 들어갈 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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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온실은 매우 더웠다. 렌즈에 김이 서려서 몇몇 사진들이 좀 많이 뿌옇게 나온다. 그냥 닦으면 되긴 한데, 온실은 좁고 사람이 많으니 주섬주섬거리기 귀찮아서 자연스럽게 김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열대관을 들어서자마자 꽃은 저거밖에 안보였다. 이름표를 못 봤네. 온실도 계절을 타므로, 여름과 가을에 보이던 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천장이 상당히 높은데, 덩굴이 바닥까지 뻗어 있었다.
습하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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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이후로 처음으로 마크로렌즈를 제대로 꺼냈다.

언제나 자연물을 찍을 땐 풀더러 고개 좀 돌려 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내가 이리저리 돌아야 하는데, 역시나 출입 금지 구역 밖에서 답이 안 나오면 정말 답이 없다. 셀카봉을 들고 사진 찍는 사람들과 유모차들을 피해서 조심조심 찍고 나왔다.



이렇게 꽃술이 내장형(...)인 것들은 찍을 때 참 난감하다. 어쨌든 꽃의 중앙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드디어 난대온실을 들어가볼 수 있었다. 여기는 다행히 열대온실처럼 출입시간제한이 없는 듯했다.

입구에서부터 꽃이 사람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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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렌즈를 다시 구한 뒤로, 요즘은 조리개를 거의 5.6까지만 조이거나 어지간하면 최대 개방으로 놓고 쓴다. 조금 더 추상적인 느낌을 원하기도 하고, 작은 사물 내에서도 공간감을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개방 위주로 찍는 편이다.


영산홍인지 철쭉인지 진달래인지 헷갈리는 꽃들이 제법 피어 있었다. 개중에는 꽃이 엄청 큰 것들이 있었고, 꽃에 파묻혀 있는 기분으로 담을 수 있었다. 크롭 하기 나름이겠지만, 아직은 꽃이 최소한 주먹 크기 절반 이상은 되어야 이러한 구도로 담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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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말고도 열매가 열린 식물이 제법 있었다. 봄에 볼 것들과 가을에 볼 것들이 한 곳에 섞여 있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렌즈를 갈아 끼는데, 가방 안은 아직 차가운지 자꾸 김이 서린다.



불꽃같은 느낌. 실제로는 나무에 이런 꽃이 한가득 피어 있다.



꽃이 많이 피어 있긴 했지만, 실제로 종류는 예닐곱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다. 온실은 바깥의 정원처럼 몇 개의 작은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구역은 사람 무릎 높이 정도의 돌담 위에 식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돌담 근처의 꽃들이라면, 식물이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선 팔꿈치나 손 정도는 올려놓을 수 있으니 조금 덜 흔들리게 찍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식물원은 삼각대나 모노포드를 못 가져가므로, 이런 곳에 접사를 찍을 만한 것이 있다면 꽤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위쪽 꽃과 가운데 꽃은 나무에서 무리 지어 피는 꽃들이다. 나무 전체를 잡으려니 위쪽 꽃은 꽃이 산발적으로 퍼져 있어서 조금 불만족스럽고, 가운데 꽃은 나무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포기했다. 위쪽 꽃은 꽃들이 중간중간 뭉쳐져 있는 지점을 찾았고, 가운데 꽃은 최대한 수직 방향으로 예쁘게 서 있는 꽃을 찾아보았다.


맨 아래 꽃은 돌담 근처의 꽃들 중 하나였다. 꽃 뭉치는 10원짜리보다 약간 작은데, 그중에서 꽃봉오리가 열린 것을 찾느라 눈알 빠지는 줄 알았다. 그렇게 찾아놓고도 꽃이 워낙 작으니 높은 확률로 배경이 거슬린다. 옆에 풀잎 하나가 끼어든다든지, 꽃이 무리 지어 있는데 초점을 맞출 꽃과의 배치가 애매하든지 그런 식으로. 눈치 없이 배경에 끼어드는 풀잎 하나 정도는 손가락으로 치워볼 수도 있는데, 근처에 다른 풀잎이나 나뭇가지 등에 걸쳐 놓든가 하는 식으로 확실히 치워질 것 같지 않으면 실수로 꺾일까봐 시도도 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내가 이리저리 돌면서 구도를 찾다가, 답이 없으면 아예 다른 꽃을 찾는다. 한 몇십 개 피어 있던 꽃들 중 후보를 고르다가, 그나마 저 꽃이 가장 찍히기 좋게 피어 있었다.


구역 안쪽 깊은 곳에 핀 꽃들도 많았는데, 여긴 가까이 찍을 수 있는 꽃이 없더라.




오후 들어 점점 구름이 많아졌는데, 온실 안으로 빛이 멋지게 스며들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온실까지 모두 돌고 수목원 문을 나서는데, 여전히 가기 전의 불만스러운 생각이 밀려왔다. 역시나 오늘도 다른 날과 같은 사진이겠구나 싶은 느낌이. 그래도 작년 한 해동안 찍은 사진을 모아 보면 약간이나마 변화가 있긴 했으니, 이런 것들이 쌓이면 마지막에 지난 사진을 돌아볼 순간에는 이날보다 나아져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뭐 안되면 바깥공기라도 마시고 들어오니까 건강에 1g라도 도움이 됐겠지.



적어도 4월은 되어야 정원이 제 모습을 갖추겠지만, 해는 점점 오래 떠있고 날은 조금씩 따뜻해진다. 아직 손은 시리고, 일찍 피는 봄꽃들이 만개하더라도 아직 구석구석 초록빛이 돌진 않겠지만, 매년 새로 꾸며지는 정원처럼 내 사진도 조금이나마 달라져 있기를.






w_ A7R2, Loxia 2/35 + sel90m28g




LumaFonto Fotografio

빛나는 샘, 빛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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