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법전을 찾다
회사에는 아가씨의 몸으로 입사했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사실 한건 아니었으니-
그냥 늘 일 잘하고,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직원으로만 보였겠지.
그런데 어느 날,
내 배가 불러왔다.
회사 입장에선 황당했을 거다.
결혼도 안 한 줄 알았던 여자가,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오니..
솔직히 말하면,
나도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감정보다 더 컸던 건
살아내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무실에서 통보를 받았다.
“이제 몸도 힘들 테니, 그만두는 게 좋겠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참을 수 없었다.
참으면 안 되었다.
이곳을 나가면 정말이지 지금 내상황에서
갈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집에 와서 밤새도록
노동법을 뒤졌다.
‘임신 중 해고는 위법이다.’
대학 시절 수많은 법조문을 외웠고,
시험을 치렀고,
법전 속에서 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정작 살면서 단 한 번도
배운 것을 써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죽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책 속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건 그냥 글자에 불과하다.
공부는 현실에서 살아 숨 쉬어야 의미가 있다.
그날 이후,
나는 공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다음 날,
떨리는 손으로 법 조항이 적힌 종이를 들고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임신 중 해고는 위법입니다.”
목소리는 떨렸고,
손도 갈라지듯 흔들렸지만
그날만큼은 도망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지킨 첫 순간이었다.
죽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현실에서 살아 숨 쉬어야 그게 진짜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