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던 분만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우리는 갈 곳이 없었다.
시댁은 공간이 마땅치 않았고,
결국
내가 야반도주하며 뛰쳐나왔던 그 집,
친정으로 다시 들어갔다.
철없이 떠났던 딸이
어린 남편과 돌도 안 된 아이,
그리고 만삭의 몸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은 이해하지만,그땐 몰랐다.
집안의 공기는 차갑고,
엄마와 남편 사이에서
나는 늘 중간에 껴 있었다.
말 한마디, 눈빛 하나도
쉬이 건넬 수 없던 분위기.
당연히,
“힘들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못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는 여행사에 다시 출근하게 되었고
남편도 새로 시작한 일로 바빠졌다.
그날도
남편의 해외 출장이 잡혀
아침 일찍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몸이 이상했다.
이미 겪어봐서 알았다.
'양수가 터졌구나.'
엄마에게 큰애를 맡기고
짐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 신청하고
남편에게 전화로 동의를 받은 뒤,
그날 밤 9시쯤
둘째를 세상에 안았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편했다.
그렇게 편한 순간은
얼마만이었을까.
누구 눈치도 안 보고,
애써 웃을 필요도 없고.
그냥 나와 아이, 단둘이 있는
그 시간이
그렇게 평온했다.
물론,
그 평온은
하루도 못 가서 사라졌다.
회사에 급히 넘겨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다음 날, 환자복을 입고
병원 근처 피시방에서 업무를 봤다.
4박 5일 만에 퇴원하고
도우미 아주머니를 맞이하러 갔더니
그분이 말했다.
“산모는 어디 계세요?”
나였는데.
그 말이 웃기지도 않고
그냥,
좀 슬펐던 기억.
그때 이미,
살은 다 빠져 있었다.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나는 나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