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었던 것이, 더 이상 나의 기준이 아니게 되었을 때
까르띠에 팬더 워치는,
스몰 사이즈가 정답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내 머릿속에서 팬더 워치는
늘 같은 이미지로 정리되어 있었다.
스몰 사이즈, 옐로골드.
아이코닉하고, 분명하고,
누가 봐도 팬더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
특정 시계에 로망이 생길 때,
우리는 종종 ‘대표 전통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 브랜드가 가장 잘 알려진 얼굴,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정답 같은 것.
나에게 팬더의 정답은
오랫동안 스몰 옐로골드였다.
그래서 미니 사이즈는
사실 크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작다는 인상,
조금은 서브처럼 느껴질 것 같다는 선입견.
하지만 어느 날,
별다른 기대 없이 손목에 올려본
팬더 미니 세미파베는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기준을
조용히 흔들어놓았다.
‘작다’는 느낌보다 먼저 들었던 건,
이상하리만큼 정확하다는 감각이었다.
스몰 사이즈가
손목을 완성해주는 느낌이었다면,
미니는 손목을 존중해주는 쪽에 가까웠다.
시계가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손의 움직임을 따라온다는 느낌.
내가 시계를 차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 손이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는지가
더 또렷해지는 경험.
그때 처음으로
‘정답’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낡게 느껴졌다.
미니 세미파베는
화려함으로 설득하지 않는다.
다이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과시하지 않고,
금속 역시 자신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시계를 차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고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선택한 물건처럼 느껴진다.
그날 이후로
내가 시계에서 바라는 지점이
조금 더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전에는
‘대표하는 선택’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지금의 나에게 어긋나지 않는 선택’이
더 중요해졌다.
크기, 골드의 색,
얼마나 아이코닉한지보다
손목 위에서 남는 감각이 기준이 되었다.
스몰 옐로골드의 로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로망이
내 지향점의 중심에 있지는 않게 되었다.
미니를 착용해보고 나서
나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지금의 나는
설명해야 하는 선택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에
마음이 간다는 것을.
정석의 스몰 사이즈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건,
덜 원한다는 뜻도, 포기했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에 와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팬더 미니 세미파베는
선택의 이유를 묻지 않는다.
손목 위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고,
그저 지금의 나와 어긋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시계다.
어쩌면 취향이 바뀐 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바라보는 기준이
조금 낮아지고,
조금 정직해졌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계는
처음보다 나중에 더 마음에 남는다.
설명할 필요가 사라진 뒤에도
조용히 함께 남아 있는 선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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