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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이 다시 숨을 쉬는 방식

2026 프리폴, 파리의 옷이 언어를고르는 시간

by 루미 lumie

프리폴은 늘 경계에 있다.

선언과 침묵 사이.

그래서 어떤 프리폴은 다음 시즌을 설명하고, 어떤 프리폴은 브랜드의 태도를 드러낸다.

Dior 2026 프리폴은 분명 후자에 속한다.


이번 컬렉션은 무엇을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묻는다.

강조된 실루엣도, 즉각적인 유행도 아니다. 대신 옷은 강변에 서서, 물의 속도로 움직인다. 파리의 세느강 옆, 일상의 배경 속에서.



옷은 더 이상 명령하지 않는다


이 컬렉션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완화’다.

바 재킷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몸을 조이지 않는다.

데님은 청바지의 윤곽에서 시작해, 옆으로 흘러내리는 볼륨을 얻는다.

드레스는 구조를 숨기고, 구조는 기술로 남는다.


여기서 옷은 “이렇게 입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그 말투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그래서 룩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가능성으로 남는다.



‘여러 명의 디올 여성들’


이번 프리폴이 반복해서 떠올리게 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디올 여성은 한 명이 아니다.


이는 다양성이라는 단어보다 더 현실적이다.

다양성은 종종 개념이지만, 이 컬렉션은 실제 옷장에 들어갈 수 있는 차이를 만든다.


• 트렌치처럼 보이지만 트렌치가 아닌 코트

• 이브닝처럼 보이지만 낮에도 입힐 수 있는 드레스

• 장식처럼 보이지만 기능을 가진 주얼리


옷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하루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데님이라는 선택


이번 프리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데님이다.

왜냐하면 데님은 언제나 현실을 상기시키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 데님이 디올의 기술을 만나면서,

‘일상’은 ‘장면’이 된다.


스커트처럼 퍼지는 데님,

거리 위에서 자연스럽게 드레이프를 만드는 실루엣.

이는 스트리트와 오트의 구분을 무너뜨리기보다,

그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방식에 가깝다.



장식은 이야기를 품는다


주얼리는 이번 컬렉션에서 유난히 서사적이다.

열면 무언가가 나타나는 반지,

식물과 꽃과 곤충을 연상시키는 장식들.


이 장식들은 단순히 ‘예쁘기’보다,

만지고 싶고, 들여다보고 싶은 감각을 남긴다.


옷이 몸에 가까워지듯,

장식은 손에 가까워진다.



프리폴이라는 시간의 의미


프리폴은 결론이 아니다.

그래서 이 컬렉션은 완성보다 방향에 가깝다.


어떤 옷은 아직 말을 아끼고 있고,

어떤 실루엣은 다음 계절을 기다린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디올은 지금, 자신이 가진 언어를 다시 정리하고 있다는 것.


빠르게 말하지 않고,

크게 외치지 않고,

다만 어떤 단어를 계속 쓸 것인지를 고르고 있다.



루미의 기록


좋은 옷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반복해서 떠오른다.


이번 디올 2026 프리폴은 그런 컬렉션이다.

처음엔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다시 보게 되고,

어느 순간 “이건 괜찮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옷들.


디올은 지금,

더 강해지기보다

더 숨 쉬기 좋은 브랜드가 되려는 중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대개 오래 간다.





* All Images’ source: Vogue Ru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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