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26SS 프리 컬렉션에 대한 기록
마티유 블라지가 곧 런칭하는 첫 시즌인
샤넬 26P 프리 컬렉션은
처음 보았을 때, 아주 조용했다.
눈에 띄는 실험도 없고,
의도를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입히기 위해 만들어진 옷들”이
차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6S 런웨이에서 느꼈던 불안—
이 브랜드가 과연 일반적인 몸들을 계속 품어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26P는 다소 현실적인 답을 내놓는다.
“여전히, 가능하다.”
요즘의 옷장은 점점 가벼워진다.
관리하기 쉬운 소재,
몸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구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실루엣.
이런 시대에
샤넬은 더 이상 새로움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질문을 남긴다.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은
하루가 끝났을 때
어떤 인상을 남기는가.
이번 시즌의 샤넬은
대답하지 않고, 묻는 쪽에 가깝다.
이번 프리 컬렉션을 관통하는 감각은
‘과하지 않은 구조’다.
트위드는 더 단정해졌고,
니트와 카디건은 생활의 언어에 가까워졌으며,
스커트와 슈즈는
걸음을 방해하지 않는 비율을 택했다.
런웨이를 위한 옷이 아니라
아침에 옷장 앞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손이 가는 옷들.
P 시즌 특유의 파스텔이나
몽글한 무드는 많이 정제되었다.
대신 옷은, 더 오래 남을 쪽을 선택한다.
이 정도의 실용성이라면
다른 브랜드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가볍고, 편하고, 잘 만들어진 옷은
이미 너무 많다.
그런데도 샤넬의 옷은
기능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트위드는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고,
가디건은 편안함보다
레이어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쓰인다.
그래서 이번 시즌의 데일리 룩은
‘편하다’기보다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이번 시즌이 세련되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루엣은 안정적이고,
컬러는 오래 입기 좋으며,
체형 역시 비교적 유연하게 받아준다.
하지만 동시에
샤넬을 샤넬로 만들어왔던
르사지 공방 특유의 밀도는
한 발 물러선 느낌이다.
조직감은 매끈해졌고,
손으로 느껴지던 시간의 흔적은 조용해졌다.
옷은 충분히 아름답지만,
가격표 앞에서는
잠시 멈추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옷은
그 가격을
촉각으로 설득하고 있는가.
디자인에는 동의하고
체형을 품는 태도도 여전히 조금은 유효하지만
지금은 서두르고 싶지 않다.
입어보고,
움직여 보고,
시간을 두고 판단하고 싶은 시즌.
요즘 많은 브랜드가
젠더리스와 중성성을 말하지만,
샤넬은 여전히 여성의 옷을 만든다.
다만 그 여성은
꾸미는 존재도,
보호받는 존재도 아니다.
혼자 이동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래서 옷이 앞서지 않는다.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은 사람이 먼저 보이고,
그 다음에 샤넬이 남는다.
도시 여성의 데일리에는
이미 기능적인 옷들이 옷장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샤넬을 입는 이유는
기능 그 이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샤넬은 옷을 통해
오늘 내가 어떤 태도로
하루를 살아갈지를 정리해준다.
눈에 띄더라도, 띄지 않더라도,
분명히 느껴지는 중심.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기능적인 옷은 많다.
하지만 나는 오늘,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가.
이번 시즌의 샤넬은
그 질문을
아주 조용하게,
하지만 끝까지 놓지 않는다.
#샤넬
#샤넬26P
#패션에세이
#마티유블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