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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에서 시작된 계절

프라다의 균형

by 루미 lumie

오렌지빛 런웨이는 계절의 공기처럼 묘하게 뜨겁고 선명했다.

단순한 조명이 아니었다.


무대 위를 스치는 모든 발걸음을 강조하고, 작은 오브제조차 계절의 징후처럼 떠오르게 했다.


이번 시즌 프라다는 거대한 장식이나 화려한 무대 대신, 손끝과 발끝에 쥘 수 있는 것들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토트백이었다.


곡선을 거부한 채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듯 단단했고, 얇고 길게 뻗은 끈은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건축의 미니어처를 손에 들고 걷는 듯한 인상.


프라다가 늘 강조해온 실용성의 미학은 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하게, 고전적인 균형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같은 구조 속에서도 악어결로 새겨진 버전은 전혀 다른 울림을 남겼다.


평면적인 매끈함 대신 표면에 흐르는 결이 드러나면서, 정제된 도시의 그림자에 본능적인 리듬을 더한다.


같은 백이라도 선택의 순간은 결국 ‘성격’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런웨이의 흐름은 결코 단일하지 않았다.


갑작스레 나타난 연보랏빛 파우치는 그 대비를 한층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기능적 소재 위에 주름진 입구 장식이 얹히자, 완벽한 매끈함 속에 불완전의 미학이 깃들었다.


기능과 장식, 긴장과 완화. 프라다는 언제나 이런 대립항을 나란히 세운 뒤, 둘 사이에 흐르는 대화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 가방은 실용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불완전함의 여백’을 즐기는 이에게는 오히려 시선이 머무는 지점이 된다.



발끝에 놓인 검정 슈즈는 더욱 과감한 침묵처럼 보였다. 꾸밈 없는 형태는 기능의 끝자락에 가까웠고, 불필요한 설명을 덜어낸 한 문장의 마침표 같았다.


하지만 같은 구조의 슈즈 위에 크리스털이 흩뿌려진 순간,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발걸음을 따라 흩날리는 장식은 마치 평범한 문장 속에 숨겨둔 쉼표 같은 반짝임. 과잉과 절제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또 다른 균형을 만들어낸다.


이번 시즌의 프라다는 거대함을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것, 미세한 디테일에 집중하며 ‘균형’을 정의한다. 단순한 가방과 신발이었지만, 그것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우리는 종종 일상의 무게를 거대한 사건에서가 아니라, 손끝에 잡히는 작은 물건, 발끝에 스치는 감각에서 느끼곤 한다.


프라다는 그 지점을 포착하고, 런웨이라는 극장에서 극대화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남는 것은 화려한 드레스의 이미지가 아니다.


오렌지빛 무대 위에서 한 손에 쥔 백의 모서리, 발끝에 스친 장식의 반짝임. 작고 사소한 것들이 계절을 바꾸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균형을 배운다.



그것은 단순히 패션의 균형이 아니라, 일상과 감정의 균형, 삶의 리듬을 다시 정돈해주는 순간이다.



끝내 기억에 남는 것은 거대한 장면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 흔들린 한 줄기 끈, 구두 뒤꿈치에 달린 작은 빛, 손에 스친 가벼운 감각.


그것들은 언젠가 우리의 일상에서도 스며나, 문득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그렇게 프라다는 이번에도 화려함 대신 여운을 남긴다.





*All images’ source : Vogue ru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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