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까레의 오래된 숨결과 함께
가끔은 오래된 까레 한 장이 새로운 것보다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번 시즌, 다시 돌아온 Tyger Tyger가 그랬다.
한때 목에 둘렀던 흑백의 호랑이가 기억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새로운 색으로 다시 말을 건네는 순간.
그건 단순한 재발행의 반가움이 아니라,
오래전 내가 사랑했던 까레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작은 안도였다.
요즘의 까레 신작들은 조금 다르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가까이 다가서면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다.
25FW 신상 까레인 아카데미아 히피카(Academia Hippica)는 색감은 풍성하고,
옷과 매치하기도 조화로웠지만
그 속의 모티브는 정성스레 담아낸 이야기보다는 복잡한 장식처럼 흘러갔다.
셀레네 까레(Dans les Bras de Séléné)는 달빛 같은 은은함을 품었지만, 정작 감정을 오래 붙잡아 둘 힘은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목에 감아도,
벽에 걸어도 금세 시선이 떠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반대로 Tyger Tyger는 오래된 리듬을 기억하고 있었다.
강렬한 호랑이의 등줄기와 그 주변을 에워싼 꽃들의 흐름이 다시 살아나자, 나는 다시 까레가 지닌 본래의 힘을 느꼈다.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을 목에 묶는 행위.
그 순간 호랑이는 장식이 아니라 구조가 되었고,
꽃은 무늬가 아니라 계절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리이슈는 묘하게 위안이 된다.
신작들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쌓여가던 시기에, 과거의 아이콘이 돌아와 다시 감정을 일깨워주니까.
까레가 가진 본질은 언제나 ‘이야기를 품은 천’이었다.
Tyger Tyger의 귀환은 그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나는 여전히 까레 앞에서 설레고 싶다.
단순히 잘 만든 그림을 넘어서, 목에 감는 순간 시간이 흔들리고, 감정이 여운으로 남는 까레.
이번 시즌의 신작들이 그 자리를 다 채우지 못했기에, 오히려 오래된 호랑이가 다시 반짝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것보다 오래된 것에서 더 큰 생명을 발견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Tyger Tyger는 다시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감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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