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음료 하나와 약간의 간식을 챙겼다. 간만에 타보는 자전거라 감을 잡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고향이지만 가본 곳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은 곳이었다. 평소 차를 타고 도로를 스쳤을 뿐, 그 갈래갈래에 나 있는 길까진 알지 못했다. 친구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아예 가볼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서툰 페달질이 익숙해질때까지 달린 끝에 나타난 건 관광객이 드문 항구였다.
눈을 돌린 곳 어디나 바다가 세게 물결치고 있었다. 정박한 선박들 중 막 도색을 끝마친 듯한 배가 알록달록한 깃발을 옷감처럼 두르며 자태를 뽐냈다. 안전한 항해와 만선을 기원하는 진수식을 끝마친 배였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배 옆으로 세월의 흔적이 여실한 낡은 선박들이 허름한 모양과 상관없이 의기양양 늘어서 있었다. 뱃사람 몇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그 근처에서 다양한 생김새의 고양이를 마주쳤다. 사람을 봐도 피하는 기색이 없고 햇볕 아래 늘어져 있는 모습이 게으르며 평화로워 보였다. 친구와 나도 고양이처럼 거기 머무르며 시시콜콜한 대화에 킬킬거렸다.
와보지 않았다면 내게 없었을 풍경을 눈으로 담다 떠나는 마음이 아쉬웠다. 그럼 더 누려보란 뜻이었던지 자전거 체인에 문제가 생겼다. 모래 위에서 페달을 밟듯 발이 밑으로 푹푹 무겁게 빠졌다. 친구는 저만치 가고, 나만 거기 홀로 남아 난색을 표했다. 자전거 체인과 씨름하는 사이, 낯선 생김새의 이들이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왜소한 체구와 바닷가의 강한 햇빛에 그을린 피부, 한국인과 묘하게 다른 이목구비는 단번에 봐도 이질적인 느낌을 풍겼다. 눈짓과 손짓으로 체인을 가리키는 그들의 얼굴은 청년보다는 소년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바닷가 태양처럼 반짝거리는 눈빛에서 읽혀지는 것은 단순한 마음이었다.
도와줄게요.
언어로 말하진 않아도 눈빛으로 전해지는 마음이 그들과 나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체구와 달리 굵고 굳은살 투성이의 손이 엇나간 체인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톱니바퀴처럼 뾰족한 틈 사이에 하나하나 끼워 맞춰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힘든 기색 없이 이어나갔다.
내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눈치 챈 친구가 다시 돌아와 내 곁에 나란히 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조용히 그들을 응원할 밖에. 십여분이 흐르고, 체인 가까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린 얼굴이 이제 걱정할 일 없단 듯 맑게 웃는다. 자신들의 언어로 몇 마디 뱉더니 이내 자전거 운전대를 내게 돌렸다.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페달을 밟으니 처음처럼 잘 돌아갔다. 아무 말 없이 돌아가려는 그들을 붙잡아 가방 안에 있던 간식을 몽땅 건네주었다. 손바닥 가득 쥐어진 간식을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던 그들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한국말보다는 그들의 언어로 서툴게라도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조차 모르는 이국의 이들이 서서히 멀어져갔다. 뒷모습을 오래 눈에 담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어느 한 부분 엇나가거나 늘어지는 구석 없이 페달은 힘차게 돌아갔다. 초행길에 찾은 서먹한 풍경들이 달갑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