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여유의 언어로 설명한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마음에도 빈자리가 생기고, 타인을 돌아볼 만한 숨이 생겼을 때 비로소 가능한 감정처럼 말한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지친 사람보다 덜 지친 사람이 더 부드럽게 반응할 수 있고, 불안한 사람보다 조금 더 안정된 사람이 타인을 더 잘 품을 수 있다. 삶의 조건은 분명 사랑의 얼굴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삶이 한결같이 버거운 순간들 속에서 오히려 사랑을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마음이 복잡하고, 해야 할 일은 많고,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때 말이다. 그런 때 사람은 자기 안으로 깊이 웅크러들기 쉽다. 내 문제를 해결하는 일, 내 감정을 추스르는 일, 내가 무너지지 않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가득 차버린다. 세상은 갑자기 작아지고, 시야의 중심에는 늘 내가 놓인다. 그것은 이기적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운 반응일 것이다.
아마 그래서인지, 바로 그런 순간에 나는 사랑을 하나의 감정이라기보다 어떤 질문처럼 생각하게 된다. 삶이 이렇게 버거울 때에도 나는 여전히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사람인가. 내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인간적인 마음까지 닫아버리지 않는 사람인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좋은 날의 다정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이 복잡하고 좁아진 순간에도 타인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힘든 날의 사람은 대개 솔직해진다. 정확히는, 평소에는 잘 숨겨지던 마음의 방향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유가 있을 때의 친절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하지만 여유가 없을 때에도 누군가를 배려하려는 마음, 내 감정이 우선인 순간에도 상대의 서운함을 뒤늦게라도 돌아보게 되는 마음,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관계 전체를 내 쪽으로만 기울게 두지 않으려는 마음은 조금 다른 종류의 진실을 보여준다. 그럴 때 사랑은 예쁜 감정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태도에 가까워진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삶이 힘들수록 사랑을 더 생각한다는 말이, 마치 힘들 때일수록 더 다정해야 한다는 자기 압박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경계를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다. 사람은 지칠 수 있고, 예민해질 수 있고, 때로는 자기 안으로 숨어들 수 있다. 그것은 잘못이라기보다 인간적인 일이다. 다만 내가 오래 붙들고 싶은 것은 완벽한 다정함이 아니라, 다시 바깥을 향하려는 마음이다. 순간적으로 나 중심이 되더라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려는 마음. 내 버거움을 이유로 타인을 함부로 배경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
어쩌면 삶이 버거울수록 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내 삶을 장식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방식마저 조금은 바꾸어놓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힘든 순간에도 끝내 타인을 완전히 잃지 않는 사람, 자기 안으로 숨어들더라도 다시 천천히 문을 열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내게 사랑은 여유가 넘칠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따뜻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이 나를 점점 더 나 자신 쪽으로 끌어당길 때, 그 힘에 전부 끌려가지 않으려는 조용한 저항에 가깝다. 내 걱정이 전부가 되지 않도록, 내 감정이 세계의 중심이 되지 않도록, 내 바깥에도 여전히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어쩌면 사랑은 바로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이 버거울수록 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때야말로 사랑이 가장 필요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때야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좋은 날의 감정이 아니라, 어려운 날의 방향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아마 오래도록, 사랑을 그런 방향으로 이해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