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사랑은 종종 넘치는 마음으로 시작된다. 좋아하는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고 싶고, 더 많이 이해하고 싶고, 더 많이 내어주고 싶어진다. 사랑은 원래 어느 정도의 기울어짐을 품고 있는 감정이라서, 사람은 사랑할 때 자기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떠올리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한다. 그런 마음은 아름답다. 누군가를 향해 마음이 자연스럽게 기울고, 내 시간을 나누고, 내 익숙한 질서를 조금씩 조정하면서까지 그 사람을 삶 안으로 들이는 일은 분명 사랑의 한 얼굴이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진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소홀히 대해도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 오래가려면, 내 안에 그 사랑을 감당할 바탕도 함께 남아 있어야 한다. 마음은 아무리 좋더라도 무한하지 않고, 사람의 감정도 체력도 언제나 쓰는 만큼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사랑을 말할 때 이 단순한 사실을 잊는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미루고, 조금 더 버티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그렇게 줄어드는 내 안의 여백이 결국 관계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늦게 깨닫는다.
나를 돌보지 못한 사랑이 쉽게 마르는 이유는, 사랑이 결국 마음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동시에 상태이기도 하다.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얼마나 버거운지, 내 안에 지금 얼마나 여유가 남아 있는지에 따라 사랑의 얼굴도 달라진다. 마음으로는 여전히 소중한데, 실제로는 작은 말에도 쉽게 예민해지고, 평소라면 흘려보냈을 일에 오래 서운해지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힘보다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커지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 사랑이 식었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사랑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랑을 흘려보낼 내 안의 통로가 먼저 말라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스스로 바닥나 있을 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려워진다. 상대의 말은 자꾸 부담으로 들리고, 상대의 기대는 요구처럼 느껴지고, 상대의 서운함은 내 사정도 모르고 더 짐을 얹는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물론 그 상대는 실제로 아무 잘못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이미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관계 안의 많은 것들이 원래보다 더 무겁고 더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돌봄이 부족한 사랑은 단지 내가 힘든 상태에 머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상태는 결국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 사랑을 느끼는 방식까지 서서히 바꾸어 놓는다.
나는 사람이 사랑 안에서 쉽게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나를 돌보는 일은 마치 사랑을 덜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쳤다고 말하는 순간 이기적으로 보일 것 같고, 잠시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처럼 느껴질까 두렵고, 내 한계를 먼저 인정하는 순간 사랑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 불안해진다. 그래서 사람은 종종 자기 상태를 조금 더 뒤로 미룬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조금만 더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지금은 내가 먼저 감당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 미뤄진 자기돌봄은 어느 순간 사랑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사랑을 서서히 메마르게 만드는 누수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메마름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마음이 단번에 닫히는 경우도 있지만, 더 자주 사랑은 아주 천천히 마른다. 어느 날부터 답장이 의무처럼 느껴지고, 어느 날부터 상대의 기쁨에 예전만큼 함께 기뻐하기 어려워지고, 어느 날부터는 설명 없는 피로가 관계 전체를 덮는다. 겉으로는 여전히 관계가 유지되고 있고, 마음으로도 여전히 소중하다고 생각하는데, 안쪽에서는 점점 더 감정이 흐르지 않는다. 그때 사람은 종종 상대를 탓하거나, 사랑이 예전 같지 않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이전에 이미 나 자신을 오래 돌보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돌봄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지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감당할 수 있고 무엇은 감당하기 어려운지 아는 것, 필요한 휴식과 침묵과 거리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 내 감정을 무조건 뒤로 미루지 않는 것. 때로는 “지금은 내가 너무 지쳐 있다”고 말하는 것, 때로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것, 때로는 상대를 향한 마음과 별개로 내 상태를 먼저 정리하는 것. 이런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사랑을 더 오래 살아 있게 하는 기반이 된다. 사랑은 거대한 헌신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이런 작은 자기보호 위에서도 자란다.
나는 자기돌봄이 사랑을 식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식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돌본다는 것은 상대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여기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상대를 향한 마음을 억지와 피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상태로 유지하고 싶다는 뜻에 가깝다. 내가 나를 전혀 돌보지 못하면, 관계 안에서 건네는 마음도 점점 의무와 습관의 얼굴을 띠게 된다. 반대로 내가 내 상태를 알고 돌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상대를 향한 마음도 억지 없이 흐를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그러니 자기돌봄은 사랑의 반대편이 아니라, 사랑이 바닥나지 않게 지켜주는 조용한 바닥이다.
물론 여기서도 균형은 중요하다. 자기돌봄이란 이름으로 모든 불편함을 피하고, 관계가 조금만 버거워도 곧장 내 상태만을 절대화한다면 그것 역시 사랑과는 멀어질 수 있다. 나는 이 장에서 사랑보다 나를 우선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돌보는 일과 상대를 향한 마음이 서로를 해치지 않는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늘 둘 사이의 조율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조율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한 사람의 소진과 침묵 위에만 관계가 서 있어서는 안 된다.
나를 돌보지 못한 사랑은 결국 상대에게도 부담이 된다. 처음에는 내가 더 많이 감당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피로는 관계의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서운함은 쌓이고, 나는 참았지만 몸과 마음은 지치고, 나는 배려했다고 믿었지만 결국 관계 앞에서 점점 덜 살아 있는 사람이 된다. 그 상태가 오래가면 상대 역시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과 무게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 자기돌봄은 나 혼자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관계가 감당해야 할 보이지 않는 부담을 미리 덜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사랑이 마르지 않으려면, 마음만이 아니라 삶 전체가 어느 정도 숨을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사랑만으로 살 수 없고, 사랑만으로 회복되지도 않는다. 잠, 침묵, 혼자 있는 시간, 몸의 피로를 알아차리는 감각, 내 삶을 내 삶으로 다시 붙잡는 시간 같은 것들이 함께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무너진 상태에서 사랑만 끝없이 잘해내려고 하면, 사랑은 결국 내 삶을 살리는 힘이 아니라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드는 과제가 되기 쉽다. 나는 사랑이 그렇게 사람을 지치게 하는 모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쩌면 사랑은 물과도 비슷한 데가 있는 것 같다. 흐르지 않으면 탁해지고, 바닥이 메마르면 더 이상 흘러갈 수 없다. 자기돌봄은 그 물을 위한 근원이자 통로와도 같다. 나를 돌보지 못한 채 타인에게만 계속 흘러가려는 마음은 어느 순간 바닥을 드러낸다. 그리고 바닥이 드러난 뒤에는 마음이 식은 것인지, 지친 것인지, 이미 너무 말라버린 것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사랑을 오래 지키고 싶다면, 흐르는 마음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흘러나오는 자리도 함께 돌보아야 한다.
나는 이제 사랑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이나, 사랑이 무리한 소진 위에 세워지지 않게 하고 싶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를 계속 밀어붙이는 대신,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을 핑계로 내 피로를 무시하지 않고, 배려라는 이름으로 내 한계를 지우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가능한 만큼 진실하게 상대를 향할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싶다. 아마 오래가는 사랑은 그런 균형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나를 돌보지 못한 사랑은 쉽게 마른다. 그것은 사랑이 약해서가 아니라, 사랑도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바닥난 채로 건네는 마음은 오래 버티기 어렵고, 나를 잃은 채 이어가는 관계는 언젠가 생기를 잃는다. 그러니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먼저 사랑하는 사람인 나 자신이 너무 오래 메마르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자기돌봄은 사랑의 바깥에 있는 사치가 아니라, 사랑이 오래 흐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현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문장은, 사랑을 덜 낭만적으로 만드는 대신 더 진실하게 만든다. 사랑은 마음만 좋으면 되는 일이 아니고, 많이 참으면 오래가는 일도 아니다. 사랑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이 건네는 마음이고, 살아 있는 마음은 돌봄 없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잊고, 또 자주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사랑하는 나 자신도 함께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