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드러내는가

26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사람은 혼자 있을 때보다 관계 안에 있을 때 더 많이 드러난다. 평소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선택해서 믿고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라고, 나는 성숙한 사람이라고, 나는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는 그런 자기 이해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 삶 가까이 들어오고, 내 기대가 생기고, 내 불안이 흔들리고, 내가 상처받고 서운해지는 순간들 속에서, 나는 내가 믿고 있던 나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람이라는 사실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관계는 나의 좋은 면만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얼굴을 더 자주 데려온다. 쉽게 불안해하는 나, 이해받고 싶어 하는 나, 서운함을 오래 붙드는 나, 내가 힘들 때 세상을 나 중심으로 해석하는 나,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상대를 내 기대 안에 넣고 싶어 하는 나. 이런 모습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 관계 안에서 훨씬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서 사랑은 때로 누군가를 만나는 경험인 동시에,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예상보다 더 깊게 알게 되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것이 관계의 중요한 진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관계는 나를 꾸미게 하기보다 드러내는 쪽에 가깝다. 물론 처음에는 누구나 조금 더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더 다정하고 싶고, 더 성숙하고 싶고, 적어도 내 가장 거친 부분은 보이지 않게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점점 덜 연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피로가 쌓이고, 기대가 생기고, 두려움이 드러나고, 내 안의 익숙한 방어 방식들이 하나씩 고개를 든다. 그때 관계는 묻는다. 너는 정말 어떤 사람이냐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냐는 질문보다, 흔들릴 때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질문에 더 가깝게.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통해 누군가를 얻기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을 잃게 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고, 생각보다 더 쉽게 서운해지는 사람이었고, 생각보다 더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고, 또 생각보다 더 쉽게 자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사람이었다는 사실. 관계는 이런 것들을 부끄럽게 폭로하는 자리일 수도 있고, 동시에 정직하게 배우게 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는 것은 자존심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모르면, 결국 관계 속에서 반복해서 같은 방식으로 상처 주고 상처받게 되기 때문이다.


관계는 특히 내가 무엇을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인지 드러낸다. 나는 사랑을 확인으로 이해하는 사람인지, 자유 속의 신뢰로 이해하는 사람인지. 나는 사랑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 사람인지, 아니면 사랑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고 싶은 사람인지. 나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만나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나와 맞는 방식으로만 사랑을 이해하려는 사람인지. 이런 것들은 혼자 생각할 때보다 관계 안에서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랑에 대해 갖고 있던 내 믿음들이 실제의 한 사람 앞에서 어떤 모양으로 작동하는지가 관계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관계가 사람을 좋게만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관계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미성숙함과 두려움을 먼저 드러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어떤 관계는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고, 어떤 관계는 내 안의 방어를 더 강하게 만들고, 어떤 관계는 내가 얼마나 쉽게 상대를 내 필요에 맞춰 해석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관계는 성장의 자리가 될 수 있다. 드러나지 않았다면 끝내 보지 못했을 내 안의 모순들이, 사랑이라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숨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관계는 나를 완성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보다, 내가 아직 배워야 할 사람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나의 모습은 언제나 두렵다. 나는 늘 좋은 사람이고 싶고, 내가 믿고 있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실제의 관계는 종종 그 기대를 무너뜨린다. 나는 상처 앞에서 꽤 자기중심적일 수 있고, 불안 앞에서 상대를 신뢰하기보다 확인하고 싶어 할 수 있고, 사랑 앞에서도 상대보다 나 자신의 진심과 태도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어쩌면 성숙은 바로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사람일 리 없다고 부정하는 대신, 그렇구나, 내 안에도 이런 결이 있구나 하고 인정하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조금 더 다룰 수 있게 된다.


관계는 또한 내가 얼마나 타인을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지 드러낸다. 내가 힘들 때도 상대의 현실을 완전히 지우지 않을 수 있는지, 내 기대와 다른 사람을 너무 빨리 단정하지 않을 수 있는지, 내 감정이 크더라도 그것이 관계 전체의 진실이라고 믿지 않을 수 있는지. 결국 관계는 내 감정의 깊이보다 내 태도의 방향을 드러낸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보다, 사랑하는 순간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 점에서 관계가 단순한 감정의 영역을 넘어 삶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어쩌면 그래서 관계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전에, 더 정확한 사람으로 만든다.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너무 빨리 결론내리기보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고 어떤 방식으로 방어하는 사람인지 더 구체적으로 보게 한다. 내가 어디에서 자주 나 중심이 되는지, 어떤 말에 쉽게 무너지는지, 어떤 순간에 다정함이 자기검열로 바뀌는지, 어떤 기대를 품을 때 상대를 실제보다 역할로 보기 시작하는지. 관계는 나를 미화하지 않고, 나를 해석 가능한 사람으로도 너무 빨리 끝내지 않는다. 다만 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보여짐 앞에서 내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는 결국 나의 몫으로 남는다.


나는 관계가 사람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두렵지만,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우리는 혼자서는 끝내 배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혼자 있으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다가도, 관계 속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의 그림자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그림자를 본다는 것은, 적어도 그 부분이 이제 더는 완전히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드러난 것은 다룰 수 있다.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은 조금 다르게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관계는 상처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인식의 자리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가 나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자체보다, 내가 그 드러남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일 것이다. 나는 관계 속에서 보게 된 나를 너무 빠르게 미워하는가, 아니면 그 모습을 이유로 성장 자체를 포기해버리는가. 혹은 나는 그 모습을 모른 척하며 늘 상대만을 문제로 만드는가. 관계는 나를 드러내지만, 그 드러남을 책임으로 바꾸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달려 있다. 나는 사랑을 통해 완벽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사랑이 드러낸 나의 미성숙을 보며 조금 더 정직한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관계를 단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로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관계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불안을 어떻게 다루는지, 내가 다름을 얼마나 견디는지,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런 질문들 앞에 계속 서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을 나는 오래 붙들고 싶다. 어쩌면 관계는 그 문장이 왜 필요한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관계는 나를 드러낸다.
내가 믿고 싶었던 나와, 실제의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그리고 아마 사랑은 바로 그 틈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서부터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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