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
사람은 살수록 자기 안으로 굽기 쉽다. 삶은 늘 각자의 몫으로 버거워서, 누구나 먼저 자기 문제를 감당하느라 바쁘다. 내 몸의 피로, 내 마음의 불안, 내 미래에 대한 걱정, 내가 지금 견뎌야 하는 하루의 무게가 늘 가장 가까운 현실이다. 그것은 잘못이라기보다 인간의 조건에 가깝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몸으로 아프고, 자기 마음으로 흔들리고, 자기 삶의 자리에서 먼저 버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 쪽으로 기울어진다.
어쩌면 그래서 타인을 향한 마음은 그 자체로 이미 작은 역행인지도 모른다. 내 사정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와중에, 내 바깥에 있는 한 사람의 마음과 현실을 함께 생각한다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만이 전부는 아닐 수 있다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자기 삶의 무게를 지닌 존재라고 받아들이는 것. 나는 이 움직임 안에 인간다움의 중요한 한 조각이 들어 있다고 느낀다. 인간은 자기 안에 갇히기 쉬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 바깥으로 마음을 내보낼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다움이란 결국 어떤 능력이라기보다 방향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똑똑한가, 얼마나 강한가, 얼마나 완벽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바깥의 존재를 얼마나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의 문제에 가깝다. 타인을 하나의 기능이나 배경이나 도구로 보지 않고, 나만큼이나 무거운 삶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 그 태도는 관계를 더 좋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전에 나 자신을 조금 덜 메마르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 타인을 향한 마음은 결국 “세상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감각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힘들수록 세계를 자기 중심으로 해석한다.
그건 너무 자연스러워서 쉽게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이 너무 오래 지속될 때다. 내 버거움이 세상의 기준이 되고, 내 상처가 관계 전체의 진실이 되고, 내 불안이 타인을 해석하는 유일한 렌즈가 되기 시작하면 사람은 점점 좁아진다. 그 좁아짐은 단지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을 조금씩 메마르게 만들기도 한다. 타인을 볼 여백이 사라질수록, 결국 자기 자신도 더 단단히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향한 마음이 단지 윤리적인 선택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덜 갇히게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아닌 존재의 현실을 상상하고, 내 기대와 다른 사람의 리듬을 받아들이고, 내 감정만큼 타인의 감정도 실제적이라고 인정하는 일. 이런 태도는 한편으로는 관계를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삶을 너무 나 하나의 무게로만 해석하지 않게 해준다. 타인을 향한 마음은 세상을 조금 더 넓게 경험하게 하고, 그 넓어짐 속에서 나 자신도 조금 덜 경직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타인을 향한 마음은 자기희생과는 다르다. 모든 사람을 다 품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고, 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다움이란 그런 완벽한 도덕성보다, 내가 내 바깥의 존재를 함부로 지워버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지금 내 감정이 너무 커도, 그 바깥에 다른 사람의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지 않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의 사정과 맥락이 있을 수 있음을 떠올리는 것. 나는 인간다움이 바로 이런 작고 반복적인 태도 안에서 지켜진다고 믿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그렇게 대해지기를 바란다. 내가 누군가의 기분이나 필요를 충족시키는 존재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고, 내 설명되지 않는 결까지 너무 쉽게 단순화되지 않기를 바라고, 내가 한 사람의 삶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받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내가 타인을 대할 때도, 적어도 같은 기준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타인을 향한 마음은 결국 내가 받고 싶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람으로 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단지 관계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윤리와 닿아 있다.
나는 사랑이 왜 자꾸 인간다움이라는 말로 확장되는지, 점점 더 이해하게 된다. 사랑은 결국 한 사람을 향한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그 마음이 가르쳐주는 것은 단지 한 관계 안의 기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내가 내 감정 바깥의 현실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는지, 내가 사람을 기능보다 존재로 대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사랑의 태도는 연애의 바깥으로도 이어진다. 타인을 향한 마음은 결국 삶 전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와 연결된다.
어쩌면 인간다움을 잃는다는 것은 거대한 악으로만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 자주, 너무 지쳐서 타인을 배경으로만 보기 시작할 때. 너무 자기 안에 갇혀서 다른 사람의 현실을 상상할 힘을 잃을 때.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 존재인가로만 판단할 때.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인간적인 감각을 잃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다움을 지킨다는 것도 거창한 일이 아닐 것이다. 타인을 끝내 사람으로 놓치지 않는 것. 내 바깥에 있는 누군가의 삶이 내 삶만큼이나 무겁고 실제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나는 그것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가장 조용한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향한 마음은 그래서 약함이 아니라 힘일지도 모른다. 냉소는 빠르고 방어는 쉬우며, 세상을 불신하는 태도는 때로 나를 안전하게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 안전이 나를 점점 더 좁고 딱딱하게 만든다면, 그것을 정말 강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상처받을 가능성을 알면서도 타인을 전부 도구로만 보지 않으려는 마음, 이용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알면서도 인간적인 태도 자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안에 다른 종류의 강함이 있다고 느낀다. 그 강함은 순진함과는 다르다. 그것은 세계의 어두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두움만으로 세계 전체를 정의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타인을 향한 마음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일까라는 질문에, 조심스럽지만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타인을 향한 마음은 내가 더 착한 사람이 되게 만드는 장식이 아니라, 내가 너무 쉽게 냉소와 자기중심성 속으로 굳어버리지 않게 하는 방향이다. 내 삶이 버겁고 내 안이 복잡할수록, 내 바깥에 있는 누군가를 완전히 잊지 않는 태도는 나를 조금 더 사람답게 붙잡아주는 힘이 된다. 사랑이 누군가를 향한 마음인 동시에 삶의 태도일 수 있다면, 아마 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마음은 늘 쉽지 않다. 나는 자주 나 중심이 되고, 자주 내 감정만 크게 느끼고, 자주 타인을 내 기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타인을 향한 마음은 내게 자연스러운 완성형이 아니라, 계속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선택해야 하는 방향에 가깝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다움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선택하고 돌보아야 하는 어떤 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을 향한 마음은, 나를 덜 중요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만이 전부가 되는 삶으로부터 나를 꺼내기 위한 움직임에 가깝다. 내 삶의 무게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게가 세상의 유일한 중심은 아니라고 배우는 일. 사랑은 아마 그 배움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능하게 하는 경험일 것이다.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통해, 나는 어떻게 타인을 사람으로 볼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배움 덕분에, 나 역시 조금 덜 메마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 그래서 사랑을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이 늘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나를 자주 흔들고, 자주 드러내고, 자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계속 배우게 된다. 내 바깥에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결국 나를 어떤 사람으로 남게 하는지. 타인을 향한 마음은 어쩌면 관계를 위한 선택인 동시에, 끝내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기도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