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장&에필로그.
사랑을 오래 생각하다 보면, 결국 질문은 상대에게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돌아옴은 예전과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처음의 나는 사랑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사랑이 나를 얼마나 더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지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붙들게 되는 질문은 조금 다르다. 사랑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끝내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기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나를 사랑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질문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게만 갇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질문에 더 가깝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늘 자기 감정으로 먼저 느끼고, 자기 상처로 먼저 해석하고, 자기 기대를 기준 삼아 타인을 바라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사람 자체보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방식, 내가 확인받고 싶은 마음, 내가 믿고 싶은 서사에 더 오래 머물 때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를 정말 만난다는 것은, 그 자연스러운 자기중심성에서 조금씩 비켜나는 법을 배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적어도 나만을 중심에 두는 사람으로만 남아 있지는 말아야 한다.
나는 먼저, 내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내 감정은 늘 실제다. 내가 서운한 것도, 지친 것도, 불안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이라는 것과 전부라는 것은 다르다. 내가 느끼는 것이 곧 관계 전체의 진실은 아닐 수 있고,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현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내 감정을 부정하지 않되 그것을 유일한 중심으로 절대화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안의 소란을 느끼면서도, 그 바깥에 있는 한 사람을 완전히 잊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또 나는, 내 기대보다 실제를 앞에 둘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언제나 기대를 낳는다. 이런 순간에는 이렇게 해주었으면, 이런 관계라면 이 정도는 자연스럽게 통했으면, 사랑이라면 적어도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바라게 된다. 그러나 실제의 사람은 언제나 기대보다 더 복잡하고 더 낯설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내가 바라는 너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를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 기대와 다른 너를 너무 빨리 실망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왜 이렇지”보다 “그렇다면 너는 어떤 사람이었지”를 물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 싶지만, 다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갇히지는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은 아름답지만, 그 욕망이 실제의 너보다 커지는 순간 사랑은 쉽게 나 자신의 서사가 된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다정함을 자기증명의 방식으로 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드럽고 싶지만 부드러운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고, 이해하고 싶지만 이해하는 내 모습을 지키느라 정작 너를 놓치는 사람은 아니어야 한다. 다정함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식이 아니라, 너를 조금 더 정확히 만나기 위한 태도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또한 나를 지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은 어쩌면 사랑을 말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말은 자칫 나를 계속 뒤로 미루는 일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서는 너도 끝내 제대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내가 바닥난 채로는 너를 사람으로 보기 어렵고, 내 한계를 모른 척한 채로는 오래 진실할 수 없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나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나만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균형은 어렵지만, 아마 사랑은 바로 그 어려운 자리에서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완성된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 앞에서 완벽하게 성숙한 사람, 늘 다정한 사람, 늘 상대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나는 너무 지쳐 있다고, 지금 나는 내 감정이 너무 커져 있다고, 지금 나는 너보다 내 서운함에 더 오래 머물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정직함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자기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 타인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끝내 너를 만난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어 너 앞에 서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채로 너 앞에 서는 일에 더 가깝다.
나는 판단을 조금 늦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은 관계를 빠르게 해석하게 만든다. 왜 그랬는지, 무슨 뜻인지, 이 관계가 어디로 가는지 자꾸 결론 내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너무 빠른 해석은 자주 실제의 너보다 내가 만든 너를 더 또렷하게 만든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내 판단보다 너의 존재를 조금 더 앞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알겠다는 말보다 궁금하다는 말을 더 오래 붙들 수 있어야 하고, 정리된 문장보다 아직 다 설명되지 않는 한 사람 앞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때때로 이해보다 만남에 가깝다는 말을, 나는 아마 이런 자리에서 더 분명히 배우게 될 것이다.
나는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서도, 상처 하나로 세계 전체를 닫아버리지는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말은 무방비로 살겠다는 뜻이 아니다. 경계는 필요하고, 분별은 필요하고, 나를 해치는 관계로부터 물러설 줄 아는 힘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의 가능성만으로 인간적인 태도 전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세계의 어두움과 사람의 복잡함을 알면서도 그것만으로 모든 관계를 해석하지는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냉소가 나를 덜 다치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너무 오래 냉소 속에 머무르면 나는 결국 너뿐 아니라 나 자신의 어떤 결까지 함께 잃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필요한 사람은, 거창하게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 더 넓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 감정 밖으로 한 걸음 나갈 수 있는 사람, 내 기대보다 실제를 앞에 둘 수 있는 사람, 다정함의 그림자를 보면서도 다정함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나만을 중심에 두지 않는 사람. 나는 사랑이 나를 그런 사람으로 단번에 만들어준다고 믿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랑은 내가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님을 자주 보여줄 것이다. 나는 자주 흔들리고, 자주 서운해하고, 자주 나 자신에게로 굽고, 자주 너보다 나를 먼저 붙들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마 완성되어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가일 것이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너를 나의 이야기 속 역할로만 두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를 내 성장의 재료로, 내 외로움의 해답으로, 내 진심을 증명해주는 무대로만 두지 않는 사람. 너를 내 삶의 중요한 사람으로 사랑하되, 동시에 네가 너 자신의 삶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방식보다, 네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를 더 배우려는 사람. 나는 사랑이 결국 이런 태도를 요구한다고 믿는다. 사랑은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라는 문장이, 아마 이 마지막 질문 속에서 가장 또렷해진다.
그리고 어쩌면 이 질문은 결국 사랑만의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 물음은 한 사람을 향한 마음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내가 세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묻게 한다. 나는 타인을 얼마나 기능이 아니라 존재로 대하는 사람인가. 나는 내 바깥의 삶을 얼마나 실제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나를 지키면서도 누군가를 중심에 둘 수 있는 사람인가. 그래서 이 질문은 사랑의 마지막 문장이면서 동시에 삶의 첫 문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아직 그 답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자주 틀리고, 자주 놓치고, 자주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에게만 갇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의 너를 끝내 보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되 그것을 자기검열로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고, 나를 잃지 않되 나만을 중심에 두지는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마 나는 그런 사랑을 믿고 싶은 사람이다. 나를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사랑을 통해 더 아름다운 서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그 마음이야말로, 내가 오래도록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의 가장 조용하고도 정확한 이름인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오랫동안 나는 사랑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왔다.
사랑은 사람을 바꾸고, 넓히고, 때로는 더 깊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을 배우고,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얼마나 다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 얼마나 쉽게 나 자신에게로 굽는 사람인지도 새롭게 알게 되니까.
하지만 사랑을 오래 생각할수록, 나는 조금씩 다른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랑의 의미가 결국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얼마나 깊은 사람이 되었는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사랑은 분명 나를 바꿀 수 있지만, 그 변화가 사랑의 목적이 되는 순간 사랑은 쉽게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상대는 어느새 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관계는 만남이라기보다 자기 서사가 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조금 다르게 믿고 싶다.
사랑은 나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라고.
내 기대보다 실제를 앞에 두는 일, 내 해석보다 존재를 앞에 두는 일, 내 감정이 가장 크게 들리는 순간에도 그 바깥에 있는 한 사람을 완전히 잊지 않으려는 일. 어쩌면 내가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은 처음부터 그런 태도에 더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다.
사람은 쉽게 자기 안으로 좁아지고, 쉽게 자기 감정을 전부라고 믿고, 쉽게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머문다. 나 역시 자주 그렇다. 나는 여전히 서운해하고, 여전히 기대하고, 여전히 내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어 한다. 어떤 날은 다정함이 의무가 되고, 어떤 날은 나를 지키는 일이 너무 어려워지고, 어떤 날은 타인을 향한 마음보다 나 자신의 버거움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랑은 나에게 완성된 답이 아니라, 자주 놓치고 자주 다시 배우게 되는 방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이 방향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세상이 나를 더 빠르게 판단하게 만들고, 더 쉽게 냉소하게 만들고, 사람보다 기능을 먼저 보게 만들 때에도, 적어도 나는 내 바깥의 한 사람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는 쪽으로 살고 싶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감정은 아닐지 몰라도, 내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끝내 다시 묻게 하는 힘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사랑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쓴 글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랑을 생각하다가, 결국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묻게 된 기록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내 바깥의 존재를 얼마나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내 감정만이 아니라 타인의 현실도 함께 품을 수 있는가.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나만을 중심에 두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랑은 아마 이 질문들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능하게 하는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나는 사랑을 예전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랑은 나를 더 빛나게 만드는 일이 아니고, 내 결핍을 완전히 채워주는 일도 아니다.
사랑은 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증명하는 일도 아니고,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일도 아니다.
사랑은 그보다 더 조용하고 더 어려운 일이다.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기 위해, 내가 나 자신에게만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
내 기대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오래 바라보려는 태도.
아마 내가 믿고 싶은 사랑은 끝내 그런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삶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서부터 살아가지만, 그 안에만 갇혀 살고 싶지는 않아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고,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건네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래서 삶의 한 장면인 동시에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을 통해 배우게 된 시선과 다정함과 조율의 감각이, 나를 조금 덜 좁은 사람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면, 사랑은 이미 관계를 넘어 삶 전체에 스며든 셈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만큼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은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한 감정이 아니라, 여유가 없어도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은 태도일 수 있다는 것.
사랑의 중심은 결국 상대방이라는 것.
그리고 사랑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아마 나는 앞으로도 그 문장을 오래 붙들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를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 너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