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말은 쉽게 오해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삶의 모든 기준을 그 사람에게 맞추는 일처럼 들릴 수도 있고, 상대를 위해 나를 계속 뒤로 미루는 헌신처럼 들릴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지나친 의존이나 자기소멸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삶의 중심을 통째로 타인에게 넘기는 일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만큼은 적어도 내 감정과 내 서사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태도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사람은 원래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경험한다. 내 몸으로 아프고, 내 마음으로 서운하고, 내 기억으로 상처를 해석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쪽에서부터 삶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 자연스러운 중심성을 조금 넘어서는 일과 닿아 있다. 내 감정이 전부라고 믿는 자리에서 아주 조금 비켜서서, 내 바깥의 한 사람이 자기 삶과 자기 결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아마 이 이동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먼저, 상대를 내 삶의 기능으로 축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를 덜 외롭게 해주는 사람, 나를 더 안정시켜주는 사람, 나를 더 좋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주는 사람, 내 결핍을 메워주는 사람으로만 두지 않는다는 뜻. 물론 사랑 안에서 사람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기쁨이 된다. 그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상대를 그런 역할로만 붙들게 되면, 한 사람의 실제는 점점 흐려진다.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누군가가 되고, 관계는 내가 무엇을 얻는지로 측정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추는 일이다. 이 사람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인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실제를 내 기대보다 앞에 두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사랑할 때 자꾸만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진다. 이런 순간에는 이렇게 반응해줬으면 좋겠고, 이런 마음에는 이런 표현이 따라와줬으면 좋겠고, 사랑이라면 이 정도는 자연스럽게 통할 것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하지만 실제의 사람은 언제나 내 기대보다 더 복잡하고 낯설다.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그 낯섦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기대가 그 사람의 실제를 덮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만나려는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일이다.
이 말은 사랑에서 내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왜 이 문장을 붙들게 되었는지는, 나를 너무 지우는 사랑 역시 결국 상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완전히 사라진 자리에서는 사랑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나를 잃지 않아야 오래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나는 없어지고 너만 남는다”는 뜻이 아니라, “나만 남아 있지 않겠다”는 뜻에 더 가깝다. 내 감정만, 내 불안만, 내 기대만, 내 서사만이 사랑의 중심이 되는 상태를 경계하겠다는 뜻이다.
어쩌면 사랑은 바로 이 미세한 중심 이동의 연습인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나를 먼저 느끼는 존재이지만, 그 자연스러움에 전적으로 머무르지 않으려는 연습. 내가 힘들어도 너 역시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연습. 내가 서운해도 네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를 성급히 단정하지 않는 연습.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만이 사랑의 유일한 형태는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연습.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이런 작은 이동들을 반복하는 삶의 기술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나는 이 문장이 사랑을 덜 낭만적으로 만들기보다 오히려 더 진실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의 감정으로만 이해하면, 관계는 쉽게 자기표현의 무대가 된다. 나는 얼마나 진심인지, 얼마나 다정한지, 얼마나 오래 애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되기 쉽다. 하지만 사랑을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질문이 달라진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실제로 보고 있는가. 나는 내 해석보다 이 사람의 현실을 앞에 두고 있는가.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이 사람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더 붙들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사랑을 더 어렵게 만들지만, 동시에 훨씬 더 정직하게 만든다.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내 사람으로 대하는 일이다. 내 감정의 배경도 아니고, 내 성장의 재료도 아니고, 내 외로움의 해답도 아닌 한 사람. 나와 다르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내 기대를 자주 벗어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삶의 무게를 지닌 한 사람. 사랑은 그 사람을 얼마나 내 마음에 맞게 품을 수 있는가보다, 얼마나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둘 수 있는가와 더 닿아 있다. 나는 이 점이 사랑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내가 상대의 기대를 얼마나 잘 충족하는 사람인지와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한 사람으로 보아주는 사랑. 나를 누군가의 서사 속 역할로만 보지 않고, 내 복잡함과 내 다름을 함부로 줄이지 않는 사랑.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같은 태도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받고 싶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사람으로 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이 태도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사람은 자꾸 자기 감정 쪽으로 기울고, 자기 기대를 기준으로 타인을 보려 하고, 사랑 안에서도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선언이라기보다 훈련에 가깝다. 나는 지금 누구를 중심에 두고 있는가. 지금 이 관계에서 가장 선명한 것은 나인가, 아니면 내 앞의 한 사람인가. 이 질문을 반복해서 꺼내볼 수 있을 때, 사랑은 조금씩 자기확인에서 만남 쪽으로 옮겨간다.
나는 사랑이란 결국 누군가를 내 삶의 중심에 앉히는 일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만큼은 내가 영원한 중심으로만 머무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내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관계 전체를 설명하지 않겠다는 뜻. 내 상처가 크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상대의 존재를 지워버리게 두지 않겠다는 뜻. 내 삶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 삶 속에 들어온 한 사람의 현실을 진지하게 맞이하겠다는 뜻.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아마 그런 식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삶의 태도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이 아니라, 내 바깥의 한 존재를 함부로 내 필요에 종속시키지 않으려는 태도. 타인을 내 감정의 재료로만 쓰지 않으려는 태도.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이, 내 삶만큼이나 실제적이고 무거운 것임을 기억하는 태도. 그래서 사랑의 중심은 결국 상대방이라는 문장은, 단지 연애에 대한 문장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문장이기도 하다.
나는 아마 오래도록 이 문장을 다시 배우게 될 것 같다.
한 사람을 중심에 둔다는 것.
그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나만을 중심에 두지 않는 일이다.
사랑은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라는 말을,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 문장을 통해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