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다정함

23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다정함은 흔히 누군가를 향해 건네는 마음처럼 여겨진다. 부드러운 말, 조심스러운 태도, 상대의 처지를 한 번 더 헤아려보는 시선. 그래서 우리는 다정함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타인을 먼저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싶고,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정하고 싶고, 적어도 내 감정 때문에 누군가를 함부로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은 분명 소중하다. 다정함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을 조금 더 오래 지나오면서, 나는 다정함이 반드시 밖으로만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어떤 날의 다정함은 나 자신을 향해 먼저 필요하다. 특히 마음이 쉽게 거칠어지고, 이유 없이 예민해지고, 무엇 하나 받아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날에는 더 그렇다. 그런 날의 나는 타인을 향해 충분히 부드럽지 못한 것 같아서 먼저 미안해지지만, 사실 더 먼저 필요한 것은 “지금 나는 너무 지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마음일 때가 많다. 내가 버거운 상태라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지금의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 역시 다정함의 한 형태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혹할 때, 타인에게도 오래 다정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애쓰고 있을지 모른다. 끝까지 좋은 얼굴을 하려 하고, 가능한 한 상처 주지 않으려 하고, 관계를 함부로 흔들지 않으려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쪽에서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이고 있다면, 그 다정함은 점점 힘을 잃는다. 나는 왜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할까, 왜 이렇게 예민할까, 왜 더 성숙하게 반응하지 못할까. 이런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반복될수록 사람은 겉으로는 조용해도 안에서는 점점 더 무너진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진 마음은 언젠가 타인을 향한 온기까지 함께 데려가고 만다.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다정함이, 결국 나 자신을 지나치게 재판하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약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부끄러움으로 바꾸지 않는 것, 지쳤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성의 없는 사람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 충분히 다정하지 못한 날의 자신을 곧바로 사랑이 부족한 사람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 사람은 누구나 흔들리고, 누구나 자기감정에 매몰되고, 누구나 어떤 날에는 타인보다 자기 자신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자신을 몰아세우면, 사람은 회복하기보다 더 빨리 메말라간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향한 다정함이 자기연민이나 자기합리화와 같은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자기연민은 때때로 나를 세상의 중심에 더 단단히 붙들어두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다정함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조용히 인정하게 만든다. 자기합리화는 내가 상처 준 일까지 쉽게 덮어버리게 만들 수 있지만, 다정함은 오히려 그 일을 더 정직하게 돌아보게 한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공격하지 않아도 사실을 볼 수 있을 때, 사람은 방어보다 책임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정하다는 것은 내 잘못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연약함까지 포함한 채 더 정확히 나를 보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다정함은 종종 아주 작은 형태로 찾아온다. 지금은 잠시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마음, 이 상태로는 좋은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조금 있다 이야기하자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마음, 오늘의 나는 충분히 지쳐 있으니 모든 것을 잘해내지 못해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마음. 이런 것들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사소해서 쉽게 놓치기 쉽다. 하지만 사람은 대개 이런 작은 허락 하나 없이 오래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다 타버린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무리해왔는지를 알아차린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타인에게는 비교적 쉽게 건네는 말을, 자신에게는 너무 인색하게 아낄 때가 많다. “그럴 수도 있지”, “많이 힘들었겠다”, “지금은 쉬어야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애쓴 거야.” 이런 말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건넬 수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잘 허락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만은 늘 더 잘해야 하고, 더 성숙해야 하고, 더 다정해야 하고, 더 많이 견뎌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을 끝없이 압박하면서, 그 사람이 타인을 오래 사랑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진짜 다정함이란 결국 살리는 쪽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향한 다정함이든, 나를 향한 다정함이든, 그 마음이 누군가를 더 얼어붙게 만들고 더 숨 막히게 만들고 더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이미 다정함의 본래 자리에서 멀어진 것일 수 있다. 다정함은 억지로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규율이 아니라,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을 조금 더 살아 있게 하는 힘이어야 한다. 나를 향한 다정함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자리로 데려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다정함은 결국 내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늘 괜찮을 수 없고, 늘 충분히 성숙할 수도 없고, 늘 관계를 아름답게 감당해낼 수도 없다. 어떤 날은 너무 쉽게 지치고, 어떤 날은 작은 말에도 깊이 흔들리고, 어떤 날은 누군가를 생각할 힘보다 나를 붙잡을 힘이 더 먼저 필요하다. 그런 날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람은 계속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자기 자신을 적이 아니라 돌봐야 할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타인을 향한 마음도 조금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내가 나를 적당히 돌볼 수 있을 때, 상대를 향한 다정함도 억지와 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선택으로 남는다. 내가 내 피로를 알고 쉴 수 있을 때, 관계 안의 작은 불편도 덜 파괴적으로 느껴지고, 상대의 한계도 조금 더 사람답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결국 나를 향한 다정함은 타인을 덜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마음이 더 이상 소진과 원망으로 변하지 않게 붙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우리는 다정함을 너무 오래 밖으로만 향하는 것으로 배워온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사람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고, 성숙한 사람은 자기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끝까지 누군가를 품는 사람이라고. 그런 말들은 어느 정도 맞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가 자주 빠져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의 다정함은 쉽게 마르고, 자신에게만 끊임없이 엄격한 사람의 사랑은 쉽게 자기검열로 기울 수 있다. 그러니 다정함은 타인을 향한 미덕이기 전에,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 안에 먼저 남겨두어야 할 결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다정함이 타인을 향한 태도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 안에도 함께 있기를 바란다. 지친 나를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고, 상처받은 나를 너무 쉽게 비난하지 않고, 흔들리는 나를 곧바로 부족한 사람으로 단정하지 않는 다정함. 그런 마음이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더 오래 살아 있는 상태로 누군가를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다정함은 특별한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아주 조용한 문장 몇 개일 뿐이다. 지금은 힘들어도 된다고.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오늘의 너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애쓰고 있다고.

사랑은 종종 타인을 향해 시작되지만, 오래가려면 나를 향한 이런 작은 문장들 위에서도 함께 자라야 한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사랑을 배우는 만큼, 이런 다정함도 함께 배워가게 될 것 같다.

누군가를 끝까지 사람으로 대하고 싶다면, 먼저 무너지는 나 자신도 사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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