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사랑은 처음에는 종종 방향으로 시작된다. 한 사람을 향해 마음이 기울고, 자꾸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내 삶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그 사람 쪽으로 옮겨가는 경험. 사랑은 원래 어느 정도의 치우침을 품고 있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주 떠올리고, 내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더 많이 내어주는 일. 그래서 사랑의 시작은 균형보다는 오히려 기울어짐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오래가려면, 결국 그 기울어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은 시작될 때의 열기만으로 계속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피로와 기질, 기대와 상처, 다른 리듬과 현실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그때부터 사랑은 단지 많이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어떻게 가까워질 것인가만이 아니라, 어떻게 너무 기울어지지 않을 것인가를 함께 배워야 한다.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감정보다 조율의 문제를 품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균형이 차갑고 계산적인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균형은 마음을 반으로 나누듯 정확하게 맞추는 일이 아니다. 누가 더 많이 주었는지, 누가 더 많이 참았는지 끊임없이 셈하는 관계는 오히려 사랑과 멀다. 내가 말하고 싶은 균형은 더 살아 있는 감각에 가깝다. 한쪽으로 너무 오래 기울어져 관계 전체가 무리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가까움이 숨 막힘으로 바뀌고 있지는 않은지, 다정함이 자기검열로, 배려가 자기소모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주 살피는 감각. 사랑의 균형은 정확함보다도 감지와 조정에 더 가깝다.
생각해보면 사랑이 오래 흐르지 못하는 많은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조정되지 않아서일 때가 많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참고 있었고, 누군가는 너무 많이 기대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기 상태를 너무 오래 숨기고 있었고, 누군가는 관계를 지키려다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모두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사랑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쪽은 가까움을 원했지만 다른 쪽은 쉼이 필요했고, 한쪽은 이해를 원했지만 다른 쪽은 그럴 힘이 없었고, 한쪽은 끝까지 다정하려 했지만 다른 쪽은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사랑이 있었음에도 관계가 메말라가는 순간들에는, 종종 이런 균형의 붕괴가 숨어 있다.
그래서 오래가는 사랑은 감정만이 아니라 리듬을 배운다. 언제 다가갈지, 언제 멈출지, 언제 말할지, 언제 쉬어갈지, 언제 나를 조금 더 들여다봐야 하고 언제 상대를 조금 더 중심에 두어야 하는지를 배운다. 이 배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의 상태도, 관계의 밀도도, 삶의 계절도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어제 가능했던 균형이 오늘은 맞지 않을 수 있고, 지금 필요한 배려가 다음 달에는 다른 모양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의 균형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해서 조율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어쩌면 사랑은 바로 이 조율을 통해 성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의 사랑은 자주 뜨겁고 단순하다. 좋으면 더 다가가고, 서운하면 더 확인받고 싶고, 불안하면 더 붙들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알게 된다. 늘 다가가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고, 늘 참는 것만이 사랑도 아니며, 늘 다정한 얼굴만 보여주는 것 역시 사랑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때로 가까이 있는 것이고, 때로 잠시 물러서는 것이며, 때로는 나를 내어주는 것이고, 때로는 나를 지키는 것이다. 그 양쪽을 오갈 수 있을 때 관계는 한쪽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균형이라는 말이 사랑을 덜 낭만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을 더 현실적이고 더 깊게 만든다고 느낀다. 낭만은 종종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해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의 사랑은 사람의 연약함과 한계를 함께 안고 가야 한다. 우리는 늘 같은 온도로 사랑할 수 없고, 늘 같은 방식으로 사랑받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맞춰간다는 것, 내 감정만 앞세우지 않되 내 감정을 잃지도 않는다는 것, 상대를 중심에 두되 나를 완전히 지우지 않는다는 것. 나는 이런 균형 감각이야말로 사랑을 실제의 시간 속에서 오래 견디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균형은 종종 포기가 아니라 성숙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전부를 관철하지 않는 것, 상대에게서 모든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 내가 늘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망을 조금 내려놓는 것, 관계가 완벽한 조화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환상을 천천히 접는 것. 이런 일들은 처음에는 조금 아쉽고, 조금 덜 뜨겁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런 내려놓음 덕분에 사랑은 더 숨 쉴 수 있는 자리를 얻게 된다. 균형은 사랑을 식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과열되어 스스로를 태워버리지 않게 하는 일에 더 가깝다.
나는 특히 사랑의 균형이란 결국 누가 중심에 있는가를 자주 다시 확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감정이 너무 커져서 상대가 잘 보이지 않는 순간, 나는 다시 바깥을 봐야 한다. 반대로 상대를 향한 마음에 너무 오래 기울어져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순간, 나는 다시 안쪽을 돌아봐야 한다. 사랑은 한 번 상대를 중심에 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상대를 중심에 두고 싶다는 마음도 때로는 나를 잃게 만들 수 있고, 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도 때로는 상대를 밀어내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계속해서 묻는다. 지금 나는 어느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는가. 지금 이 관계에는 무엇이 조금 더 필요하고, 무엇이 조금 덜 필요할까.
어쩌면 균형은 사랑을 오래 흐르게 하기 위한 겸손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옳은 방식으로 사랑할 수 없고, 지금의 내가 가진 사랑의 방식도 늘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정. 상대가 원하는 사랑의 모습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 있다는 인정. 그리고 사랑은 한 번 배웠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바뀔 때마다 다시 배워야 하는 살아 있는 감각이라는 인정. 이런 겸손이 있을 때 사랑은 고집이 아니라 조율이 되고, 자기확인이 아니라 만남이 된다.
사랑이 오래 흐르기 위해 배워야 하는 균형은, 어쩌면 거창한 원칙보다 작은 감각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조금 지쳤다는 사실을 늦지 않게 말하는 것. 상대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는 것. 지금은 가까이 가야 할 때인지, 잠시 숨을 고르게 해줘야 할 때인지 묻는 것. 내 서운함을 바로 진실로 믿지 않고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 나를 돌보는 일이 곧 관계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이런 사소한 감각들이 쌓일 때, 사랑은 한순간의 열정보다 더 깊은 형태로 남을 수 있다.
나는 사랑이란 결국 흐르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흐르기 위해서는 한쪽으로만 넘치지 않아야 하고, 바닥이 너무 마르지 않아야 하고, 막힌 곳이 있으면 조금씩 다시 터주어야 한다. 너무 빨리만 흘러도 지치고, 너무 오래 고여도 탁해진다. 균형은 그 흐름을 억지로 붙잡는 일이 아니라, 사랑이 제 모양을 잃지 않도록 강과 둑을 함께 살피는 일에 가깝다. 마음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지나가는 자리와 속도와 방향까지 함께 살피는 일. 어쩌면 오래가는 사랑은 그런 식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잘한다는 말을, 더 많이 주는 사람이나 더 많이 참는 사람의 뜻으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조금 더 균형을 배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타인을 향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지울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 가까움을 사랑하면서도 거리와 쉼의 필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다정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다정함이 자기검열로 바뀌지 않게 살필 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랑이 덜 화려해 보여도, 훨씬 더 오래 남는다고 믿는다.
사랑은 오래 흐르기 위해 균형을 배운다. 그 균형은 한번 얻어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자주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자주 기울고, 자주 놓치고, 자주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알게 될 것 같다. 사랑은 완벽한 조화의 상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서로의 무게를 계속 살피는 태도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 태도 덕분에 사랑은 단지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끝내 오래 흐를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