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ía 1 Hace mucho Calor

너무 덥다

by 여행하는 루나씨



2025년 7월 2일 수요일



1. 왜 하필 알리칸테?


드디어 알리칸테에 도착했다. 생각해 보니 이번 퇴사여행 일정 중 정확하게 계획하고 온 장소는 알리칸테가 유일하다. 지난 2월 말에 직장을 그만두면서 일단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스쿠버다이빙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곳을 먼저 여행했다. 태국 시밀란, 필리핀 샤르가오와 코론, 이집트 후루가다까지. 다합에서 프리다이빙 자격증도 취득하고, 바다에서 원 없이 놀았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유럽에 와서는 이탈리아에 한 달쯤 머무르며 베네치아 리도에 사는 친한 동생 C와 그의 남편 M의 집을 방문했다. 2주 정도, ‘이왕 간 김에 다 돌아보자’ 타입의 사람들이라면 기겁할 만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베네치아는 세 번째 방문이라 꼭 해야 하거나 간절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아르바이트하던 펍에서 만난 언니를 가족처럼 대해주는 친한 동생의 집에 머무르며 냉파스타를 만들고 샴페인을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 후,


이제 본격적인 스페인 생활의 시작.


스페인에 머무르고 싶었던 이유는

첫째, 스페인어 익히기

둘째, 바차타 배우기


난 외국어 공부에 미쳐 있는 사람이다. 영어 공부는 20년 가까이 성실하게 하고 있다. 다만 대학에 진학하거나 업무를 영어로 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어도 배우고, 프랑스어 쪽에도 기웃거려 보고,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를 찍어 먹다가, 남미에서도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스페인어를 깊이 공부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독학으로 기본 문법을 익히고 현지에서 말 트기, 외국어를 공부할 때 변함없이 사용하는 방법.


바차타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스윙댄스를 꽤 오래 배우고 나니까 살사와 바차타도 배우고 싶었다. 살사는 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바차타는 왠지 현지에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중년의 여성이 바차타를 배우는 건 여러모로 주변의 시선을 견디는 데 에너지 소모가 크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외국생활을 한다는 건 그런 면에서 편안하다. 어차피 외국인의 신분이니까 내가 뭘 하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 아, 이건 나라별 문화의 차이보다 사람의 마음가짐의 차이다. 한국의 문화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국내보다 국외에서 좀 더 자유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알리칸테는 스페인에서 오래 생활했던 제주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았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처럼 붐비지 않고, 물가 싸고, 무엇보다 바다가 가까이 있는 작은 도시. 인구밀도 높은 곳을 점점 견디기 어려워하는 개복치 같은 여행자가 머무르기 꽤 적당한 장소. (물론 7월 휴가 시즌이라 알리칸테도 만만치 않게 복잡하긴 했다.) 알리칸테에 오기 전에는 바르셀로나를 일주일 동안 여행했다. 가우디의 멋진 건축물과 타파스바와 와인바 등이 즐비한 밤문화는 종종 즐거웠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는 이제 좀 버거워지는 시기,


알리칸테라서 다행이야.



2. 남부 유럽의 더위는 대단히 대단하고 대단해


하지만 인생이 마냥 핑크빛일 수는 없겠지? 문제는 기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째서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지만 창문도 열 수 없는 객실은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내릴 때쯤 문득 궁금해서 스낵칸에 갔더니 거기는 에어컨을 켜 놨더라. 아, 배신감. 차가운 탄산수를 마시며 잠시 열을 식혔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알리칸테의 첫인상은

너.무.덥.다.


그리고 첫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이야기 중에 너무 덥다는 말이 수백 번 나올 예정.


기차역 앞 택시를 기다리는 줄이 생각보다 길어서 우버를 불렀다. 만나는 장소를 대충 입력했는데도 채팅을 통해 잘 찾아왔다. 아마 바로 잡는 택시보다 조금 비싼 요금이겠지만 오후 1시,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긴 기다림을 견디는 건 무리였다. 돈을 조금 더 쓰고 약간의 편안함을 구하는 게 여유로운 여행자의 태도. 한달살이 숙소가 있는 Calle Sevilla까지 소요 시간 10분 정도, 요금은 12유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많이... 비싸다...)


“Un poco Espanol, voy a estudiar.”

“스페인어를 아주 조금 해요. 공부할 예정이에요.”




3. 쉐어하우스에 살면서 간단한 음식을 준비하는 일상


에어비앤비를 통해 구한 한달살이 숙소에는 3명의 여행자가 함께 살게 되었다. 여행자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첫 번째 구성원은 3년간 알리칸테에 살면서 3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베네수엘라 청년 L, 두 번째 구성원은 지질학 박사(!) 과정에서 연구 중인 중국인 Z, 마지막으로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직장도 없지만 마음만은 여유로운 대한민국에서 온 세계여행자까지(나야 나). 더운 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헐떡거리며 도착한 쉐어하우스에는 L이 안내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30분 이내로 출근해야 하는 그의 속사포 같은 설명이 시작되었다. 그는 보통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고 나의 스페인어 듣기, 말하기 실력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번역어플이 동원되었다. 서로 어떤 말을 하고 들을지 대강 정해진 상황에서는 번역어플이 아주 유용한 것 같다.


점점 더 완벽에 가까워지는 통번역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싶은 욕망은 좀 촌스러운 걸까? 계속 외국어 공부에 집착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번역 어플이 바르게 되는지는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 공부와 스페인어 공부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바르셀로나에서 느꼈는데, 영어는 그 외 대체할 말이 없다 보니 더듬더듬 배우는 과정이 즐거웠던 것에 반해 스페인어는 버벅거릴 때마다 상대방도 영어를 시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습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어학원으로 해결해야겠지.


뭐, 잘 안 되는 게 있어? 일단 돈을 들여보자.


L이 출근하고 나니 정신없는 태풍이 지나간 느낌이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집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 한달살이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해야 한다는 마음과 적응을 위해 고요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그냥 쉬어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숙소가 아닌 쉐어하우스 생활이 시작되다 보니 마음이 시끄러웠다. 계속 복작거리는 마음을 안고 해가 넘어갈 때까지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너무 더워서 움직일 기운조차 없는 오후였다.


맙소사, 배달음식 먹으며 뒹굴거리고 싶은데 장 보러 나가야 하네.



세계여행 130일차, 외식은 옛날옛적에 질렸고, 그래서 중간에 한국도 한 번 다녀왔다. 건강식을 좋아하고 미식의 기준이 높아진 상황이라 이제 현지 음식에 큰 감흥이 없다는 슬픈 진실. 정말 맛있는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거나, 아주 가깝고 편안한 지인들과 식사를 즐기거나, 매우 건강하게 요리된 단순한 메뉴를 먹는 정도의 취향만 남은 것 같다. 알리칸테에서는 주말에만 외식을 하는 게 나름의 목표.


한 달 동안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재료들이 많다. 쌀, 파스타, 또르띠야, 올리브오일, 레몬즙, 바질페스토, 홀그레인 머스타드, 햄, 살라미, 그 와중에 삼겹살도 있었고, 치즈, 올리브, 물, 달걀, 토마토, 과일, 샐러드 채소 등을 구매했다.


“Tengo que pesarlo?”

“무게를 달아야 하나요?”


늘 가던 마트들과는 다르게 계산대에서 과일과 채소의 무게를 달아서 계산을 해 주는 곳이었다. 장바구니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탄산수도 음료수도 더 사지 못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음식재료를 정리한 후 여행 중에 더러워진 빨래도 돌리는 동안에도 날씨는 변함없이 계속 무더웠다.



한식보다 양식이 만들기 쉬운 거 알고 있는지, 특히 파스타.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냉파스타 외에 다른 걸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샐러드 채소, 베이비 당근, 블랙올리브, 토마토를 넣고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으로 맛을 낸다. 밍밍하지만 아주 건강한 메뉴다. 냉파스타에는 숏파스타가 어울려서 푸실리를 삶았다. 아주 조금씩 준비한다고 했는데 다 넣고 보니 양조절 실패라서 저녁에는 조금 남은 냉파스타에 삼겹살을 구웠다. 스페인에 있는 삼겹살은 지방이 좀 더 많아서 살짝 느끼한 듯했다. 오늘은 홀그레인 머스타드를 곁들였고 다음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소고기볶음고추장을 활용해 볼 예정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챙겨 온 코인육수, 사골육수 분말, 라면스틱, 볶음김치캔 등이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겠지.


아, 계속 너무 덥다.


거실에 에어컨이 있긴 한데 아무도 안 쓰는 듯한 분위기인 데다가 저녁 내내 집에 아무도 없어서 애매한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남의 집에 와서 첫날인데 괜히 에어컨 틀었다가 전기요금 폭탄 사태를 만들 수는 없으니까. 찬물샤워를 해 본다.


소신발언 한다. 온수 샤워 할 수 있다면 진짜 더운 거 아니다. 에어컨 없는 유럽에서는 찬물샤워밖에 답이 없다. 한국에서도 에어컨 28-29도로 고정해 두고 너무 싸늘한 은행이나 버스나 술집 등에서는 꼬박꼬박 셔츠를 입는 사람이라 크게 더위 타는 성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남부 유럽은 차원이 다르구나.


그런데 왜 그 많은 날들 중에 하필이면 7월을 골라서 왔을까? 이렇게 덥다는 걸 미리 조사했어야 했다(!)


후회하긴 이미 늦었습니다.

아무 계획 없이 휘적휘적 전 세계를 헤매는 생활,

한동안은 정착해서 살아보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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