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
2025년 7월 15일 화요일
1. 스페인 한달살이 갓생 살기
스페인 알리칸테 14일차, 벌써 한달살이의 반이 지나갔다. 주말이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라나다와 말라가도 가고 싶고 발렌시아와 마요르카도 가고 싶은데.
평일은 매우 바쁘다. 매일 2시간씩 스페인어 과외 수업을 받고 오후에 별도로 복습을 한다. 월, 수, 금요일에는 필라테스를 하고 화, 목요일에는 바차타 수업이 있다. 목요일에는 스페인어 그룹 수업이 하나 더 추가된다.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만들어 먹으려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며 주 2회 정도는 바다에 간다. 바다가 알리칸테에 정착한 이유다! 이렇게 살다 보면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바쁘다, 바쁘다, 바쁘다, 스스로가 불러온 재앙에 둘러싸여,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전부 내 욕심으로 만든 일상을 부끄럽게 바라보며, 특별한 일은 없고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도서관 바로 옆에 있는 알리칸테 해변을 바라보며 이토록 멋진 일들을 찬란하게 아름다운 바다 옆에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열심히 쓴다, 바쁘다 바빠.
2. 데자뷰, 나를 위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
오늘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 또 한 번의 데자뷰를 만났다. 오전 11시,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문장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이래도 미래가 결정된 게 아니야? 이렇게 운명의 신호가 확실한데 안심하고 정해진 미래를 만나면 안 되는 걸까? (라고 믿고 싶은 어처구니없는 마음)
목돈을 지출하고 나니 ‘돈이 녹는다’ 라는 표현을 가슴 속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수입이 없는 여행 중에는 경제적 불안이 가장 큰 적들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불안한 건 아니라는 게 핵심. 여행할 때 정확한 예산 계획은 세우지 않고 적당히 본능적으로 움직여서 대책 없는 부분도 있지만, 예금도 있고 투자금도 있는데 통장에 찍히는 현금 숫자가 갑자기 작아지면서 나타나는 가짜 두려움이었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마음은 휘청휘청 흔들리게 되는 상태.
이럴 때는 한껏 아슬아슬했던 2010년의 여행을 떠올린다. 그때는 3개월 인도 여행 후 호주 입국할 때 300달러 정도의 돈만 남아 있었고 (곧바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을 시작해서 해결) 심지어 유럽 여행 후 재입국할 때는 200달러밖에 없었다. (헝가리에서 만난 호주 친구네 집에 묵으면서 돈을 빌려서 해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삶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뭐가 그렇게 여전히 어려운 걸까.
돈을 더 많이 모아야 할 것 같아서. 노후준비 잘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가난해져도 괜찮다는 결심은 아무리 각오해도 어려운 일이라서. “돈 다 쓸 때까지 여행하고 돌아올게!” 라고 당당히 외치고 출발했지만 진짜 돈을 다 쓰는 건 심각한 문제라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어서.
내가 보는 데자뷰가 이미 정해진 미래이길 바라는 마음. 이렇게 별생각 없이 흘러가다가 어느 날 운명처럼 삶의 해답을 만나게 되길 기도하는 마음.
3.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잡생각이 많다는 건 보통 피로감이다. 아직 화요일인데 이상하네. 너무 많은 것들을 하고 싶었던 욕심 때문인데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사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뭘 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아서 일단 계속 가 보기로 한다.
좋아하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며 집에 돌아왔다. 지금은 힘들어도,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결국 넌 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노래들을 들으면서 매일 출근길에 눈물짓던 날들도 있었다.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닌데. 좀 더 행복할 자격이 있는데. 그때 결심했던 완전히 다른 미래를 실현하는 중이다. 세계여행 143일차, 불평하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 어느 때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나. 여기가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다.
4. 운동이 정답, 결코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
필라테스 수업 시간이다.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뇌를 비우고 나니 다시 힘이 난다. 역시 운동만이 살 길이다. 더위와 바쁜 일정으로 인해 기운이 빠지는 것 같다. 러닝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스트랩을 당겼다. (그러나 너무 더워서 한 달 동안 러닝은 한 번도 못 했다)
외식 기분은 아니라서 집에 들렀다. 밥, 살라미, 김, 당근, 토마토 등을 꺼내서 허겁지겁 저녁을 먹었다.
바차타 수업이 정말 재밌었다! 세 번째 수업, 이제 기본 스텝은 익숙하다. 새로 오신 강사님이 너무 웃겨서 배꼽 잡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리더 강사님인데 세상에서 가장 요염하게 팔뤄 동작을 보여주고, 음악에서 전화벨 소리가 나면 내 손을 끌어다가 전화받는 동작을 만들어 주었다. 알고 보니 스페인 원어민이 아니라서 숫자 카운트나 오른쪽, 왼쪽 등 수업에서 쓰는 스페인어도 어렵지 않고 잘 들렸다. 힙 움직임을 매우 강조하는 선생님이라 수업 따라가느라 골반 통증에 시달렸다. 그 모든 과정이 참 즐거웠다. 새로운 동작을 많이 배워서 신나는 밤. 오전에는 계속 심란한 마음이었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뜬금없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귀가했다.
5. 가르치는 사람의 특성이 배움에 미치는 영향
오늘 스페인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과 가르치는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은 친절하고 외향적이어야 한다고 믿고 살았는데 선생님은 각각 다른 캐릭터가 학생에게 다양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얕은 생각에 새로운 관점을 더해주는 대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친절하고 재밌는 선생님이 제일 좋아요. 매번 딱딱하고 엄격한 바차타 강사님의 눈빛에 상처받다가 웃는 얼굴로 춤과 수업을 즐기는 강사님을 만나서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