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신입생
2022년 8월 나는 인생에 크나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일주일 뒤 나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에서 의대생으로 입학해 새 삶을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저번주부터 슬슬 내가 진짜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 나는 한국나이로 29살이다. 나이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내 무의식은 자꾸만 불안해한다. 다녀오면 난 35살, 너무 나이가 많은 게 아닐까?, 남들은 집사고 결혼할 시기에 이렇게 떠나는 게 가치있을까?, 한국에서 의사는 할 수 있을까? 등등 불안한 생각이 가득하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반년 전만해도 합격하기만 하면 열심히 죽을때까지 해야지! 라는 결심이 가득했던 나는 막상 합격하니 걱정만 한가득이다.
내 이십대를 돌아보며..
벌써 20대의 마지막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나는 서울에 있는 한 공대를 나왔고 전공 공부를 하면서 흥미가 생기지 않아 대학에 다니는 내내 고생했다. 고3때 과외 선생님이 기계공학과에 여자가 가면 취직이 잘 된다는 말을 듣고 수시 6개 중에 단 하나에만 기계공학을 지원했다. 결국 6개 중 하나의 학교에 붙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입학하게 되었다. 사실 입학하기 전에는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가장 하양지원한 학교가 붙었기 때문에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만 한다면 벼락치기로 A를 받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신나게 놀기만 했다. 1학년 1학기 땐 F도 받아봤다.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 나에게 멋진 20대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지는 못한 채 나는 그렇게 1,2학년을 보냈다. 나에게 흑역사가 될 연애도 해보고 학점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나중이 되면 취직을 다 잘 하는줄만 알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하는 것은 3학년 때 교환학생에 간 것이다. 교환학생은 놀러간거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해외 생활이 내 인생의 최대 꿈이었다. 중학교 때 우연히 Onstyle채널에서 미국에 사는 16살 축하 생일파티를 본적이 있다. 나에게는 너무나 큰 문화충격이었다. 넓은 2층 집에서 엄청난 선물들, 친구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16살 생활을 하는 내 또래를 보니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나는 해외 생활을 꿈꿨다. 어린 마음에 미국에 사는 할머니 동생분들에게 보내달라고 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집에서 유학을 갈 방법은 없었다.
교환학생을 하면서 처음에는 엄청난 꿈에 부풀었다. 영어도 잘 못하던 나지만 살다보면 영어가 늘겠지라는 생각으로 비행기를 탔다. 첫 비행기에서 나는 자전거가 영어로 뭔지도 모를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다행이도 포르투갈 친구들은 나에게 관심이 많아서 먼저 말을 걸어주고 놀자고 불러줬다. 중요한건 영어를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나가기가 싫었다는 것이다. 그 좋은 시간에도 나는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돌아가면 나는 4학년인데 어떡하지? 졸업 작품을 누구랑 하지? 취직 준비는 어떻게 하지 등등.. 왜 나는 항상 현실을 즐기지 못했을까?
학교로 돌아왔고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다. 고작 22,23살밖에 안되었던 나는 지금 뭔가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공부와 또 환경이 나의 생각을 점점 가두었다. 그때라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 잘할 수 있는 공부를 시작했으면 벌써 졸업하고도 남았을텐데.
그 뒤로 제대로 취직준비도 하지 않은채 시간이 흘렀고 난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20대 중반에는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진짜 원해서 하는 게 아닌 다른 사람이 원하는 걸 도와주다보니 나의 장점은 다 사라지고 단점만 남게 되었다. 하기로 한 건 끝까지 다 해냈던 내가 점점 금방 포기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20대 후반이 되고 매일매일이 불안해졌다. 뭐 하나 이룬것 없이 시간만 보냈던 내 자신이 한심했다.
이렇게 불안한 날들을 보내던 나에게 어느날 큰 자극이 왔다. 나와 같은 교실, 비슷한 성적이었던( 물론 그 친구가 훨씬 잘했지만 ) 친구가 벌써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모습을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도 큰 도전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 브런치에는 날것 그대로의 나의 생각을 적고싶다. 20대 초반의 나는 즐거웠지만 불안했다.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의 나는 불안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나는 조금의 희망을 가지고 나의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