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건, 결국 내가 짊어질 짐
나는 그의 서류를 내주었고,
그는 비자 요건만 채운 뒤 떠났다.
그날, 나는 물컵을 닦다 말고 멈춰 섰다.
믿는다는 건, 왜 늘 나에게 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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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 조심스럽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늘 웃으며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오직, 말뿐이었다.
작년 1월, 주방 요리사를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던 어느 날,
네이버 쪽지함에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은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돼 한국에 있지만,
일할 기회가 생긴다면 스페인 여자친구와 함께 세비야에 거주하고 싶습니다.”
나는 바로 연락했고,
3월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던 나는 그때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가 남긴 몇 마디 안 되는 말 속에서
‘이곳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저 언젠가 떠나고 싶은 젊은이의 환상이 아니라,
간절히 머물고 싶은 사람의 태도처럼 보였다.
서로에게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믿고,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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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특유의 느리고 복잡한 행정 절차가 시작됐다.
남편이 함께 서류를 준비해 주었고,
그 과정은 열 달이 넘게 걸렸다.
그 무렵, 스페인 정부는 2025년 세금을
2024년에 예납하게 제도를 바꿨다.
고용주가 제출해야 할 ‘세금 완납 증명서’를 받으려면
예납분까지 납부해야 했다.
2만 5천 유로.
예상에도 없던 큰 금액이었다.
망설였지만,
나는 약속을 떠올렸다. 내가 먼저 내민 손이었다.
결국 예납을 진행했고,
신청한 지 3주 만에 완납 증명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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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자친구가 머물던 G도시에 잠시 머문 뒤, 세비야로 왔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이상했다.
그는 주방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배우는 태도조차 없었다.
“다시 해볼래요?”
“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다음 날이면 또 같은 실수였다.
간단한 손질도 놓치고, 가만히 서서 바라만 보기만 했다.
같은 일의 반복인데 익숙해지지 않는다,
생각없이 일하는 사람처럼, 늘 분주하지만 마무리 되는 일이 없다.
단순 간단한 일도 못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이제 눈에 보인다. 이 일 자체가 싫구나.
그는 늘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잘할게요.”
하지만 그 말 이후,
스스로 나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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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자친구는 결국 오지 않았다.
그는 혼자였고, 머물 집도 없었다.
세비야는 집 구하기가 어렵다.
입주 조건도 까다롭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다.
그가 제출할 수 있는 서류는 없었고,
결국 나는 내 명의의 서류를 대신 내밀어
그의 임시 계약을 도와주었다.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방이라도 구했어?”
“계속 알아보는데… 안 구해져요. 조건이 안 맞거나, 연락이 안 와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알았다.
그는 집도, 일도, 생활도
스스로 꾸려갈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다.
며칠 후,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방에만 들어가면 심장이 뛰고, 머릿속이 하얘져요. 주저앉을 것 같아요.”
나는 그가 할 수 있다고 한 일만 맡겼다.
재료 손질, 채소 준비.
하지만 그조차 익숙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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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구경은 해봤어?”
“아뇨, 안 했어요.”
그는 매일 집에만 있었다.
마트에 다녀온 게 유일한 외출이라고 했다.
그는 말로는 항상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고마움이 행동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그는 익숙해지지 않았고, 기억하지 않았고,
대화하려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바뀌려 하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사장님은 저에게 귀인이십니다.”
낯 간지러운 그 말을 참 자주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에 걸맞은 태도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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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도운 이유가 분명했다.
기회를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자원과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내 사업의 확장도 있었고,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몇 년간 스페인에서 살며
혼잣말처럼 내뱉게 된 말이 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어쩌면 청년들은
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곳에서 펼치고자 오는 게 아니라,
그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도피하듯 외국을 택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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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세비야에 오고 싶어 했다고 믿었다.
그 믿음 안에 진심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그에게 중요했던 건 이 도시가 아니라,
그저 스페인 땅에 합법적으로 발을 들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걸.
나는 매니저에게 조용히 말했다.
“진지하게 한 번 이야기해봐.”
며칠 후 매니저는 돌아와 말했다.
“할 얘기는 다 했어요. 이제 나머지는 저 친구 몫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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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TIE(신분증)을 받을 수 있는
정확히 3개월만 머물고 세비야를 떠났다.
그 시간은 비자 요건을 채우는 데 필요한 시간과 정확히 같았다.
“제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요. 건강을 생각해서… 오늘까지만 일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서,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결국 나 혼자만 지키고 있었던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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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친구들은 물었다.
“뭘 믿고, 모르는 사람에게 그 고생을 다 해줘?”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어려운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주방 보조 일정도는 하겠지”
나는 사람을 이용만 하는 부류를 가장 싫어한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단물만 쏙 빼먹고 사라진다’고.
내가 화가 나는 건 그가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내 진심이 ‘배신’이라는 단어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그 단어가 또 한 번,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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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물컵을 닦는다.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날에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믿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결국, 내가 끝까지 믿고 싶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혹시 우리도,
누군가의 진심을 말 한마디로만 판단하진 않았을까.
나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짐이 될 수 있는지를
아직도 아주 천천히 배우고 있다.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들보다,
다시 사람을 믿으려는
나 자신을 더 오래 지켜내고 싶다.
당신의 작은 반응 하나가,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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