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서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

한국에서도 좋은 사람은, 여기서도 좋은 사람!

by luna Han 윤영

세비야에 처음 도착했을 때,

크게 기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저 이곳에서, 내 손으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마음을 먹었다.

스페인에 가면, 한식당을 열어야지.

스페인어는 한 마디도 못했지만,

내가 잘하는 게 딱 하나 있었으니까.


요리.


가족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넌 뭘 만들어도 간이 딱 맞고, 맛이 있어.”


아무것도 자신 없던 날들에도,

‘요리만큼은 괜찮다’는 확신 하나는 늘 있었다.


스페인 사람인 남편은

언어도, 행정도, 현지 사정도 모르는 나를 곁에서 도와줬다.

그 덕분에 나는

‘Han’s’라는 이름의 한식당을 세비야 중심에 열 수 있었다.


이 식당은 ‘우리 둘’의 가게가 아니다.

처음부터 내 이름으로 연, 나의 첫 번째 공간이었다.

남편은 그 자리에

묵묵히 힘을 보태주는 동반자였고,

나는 매일 그 주방 안에서

내 이름을 걸고 책임지는 법을 배워갔다.


음식은 어느새,

이곳에서 내 자존심이 되었다.

한국에서 먹던 집밥처럼 만들고 싶었다.

그게 내 모토였다.


세비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는 한정적이었고,

없는 것들은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큰 한인마트에서 배송받아 썼다.


매일이 공부였다.

내가 만드는 음식 하나하나가,

이방인인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손님은 점점 많아졌고,

K-food 열풍은

하루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을 만큼

분주한 날들을 안겨주었다.


그때부터,

한국인 직원이 꼭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한식당이지만,

주방에서 한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끌고 갈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주변에선 자꾸 말했다.

“다른 데는 현지인도 주방에 세우던데,

굳이 한국 사람만 고집하지 않아도 되잖아.”


하지만 나는

한국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 뜨거운 국물의 간을 맡길 수 없었다.


맵다는 맛조차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입맛에

김치 하나, 찌개 하나를 맡긴다는 건

내겐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건 단지 고집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었던 ‘기준’이었다.


물론, 시도는 해봤다.

현지인에게 레시피를 가르치고,

하루하루 함께 주방을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 한 끗의 정성이, 늘 아쉬웠다.

그걸 말로 설명하기도, 억지로 주입시키기도 어려웠다.


그건 손맛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까지 전해줄 수는 없었다.

세비야의 한국 사업자로, 한국인을 고용하려면,


이 나라에서 외국인 직원을 정식으로 고용하려면

모든 책임과 절차는 고용주인 내 몫이었다.


우선 정부에 구인 공고를 올려야 한다.

“이 일을 대신할 스페인인이나 유럽인은 없다”는 걸

공식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4주간 아무도 지원하지 않으면,

‘적합한 후보가 없음’이라는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그 증명서 하나 받는 데도 보통 2~3개월이 걸린다.


그 다음은 서류의 전쟁이다.

회사 재무상태, 납세내역, 계약서, 고용인의 자격 증명,

심지어 수수료(Tasa)까지.

정식 근무 40시간 기준으로 약 120유로 정도.


다 준비하고 나면,

또다시 기다림.

거주허가 취업허가 실제 비자.

모두가 제각각의 시차로 도착한다.

한 사람을 정식으로 고용하기까지

최소 6개월.

그 시간 동안 나는

계약이 아니라,

신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경우엔

여권 전면 사본과 항공권,

그리고 워홀 기간 중 나와 함께 일한 근로계약서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 외엔

범죄경력증명서, 건강진단서, 주민등록등본 정도.

정말, 그게 전부였다.


새롭게 비자를 신청하는 경우에도

• 조리 관련 자격증

• 범죄경력증명서

• 건강진단서


정리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의 무게는,

대부분 고용주의 어깨 위에 있었다.

나는 가끔,

그 청년이 주방 안쪽에서 묵묵히 일하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그 오랜 서류들과 기다림이,

지금 이 순간으로 이어졌구나.’


이건 단지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의 일부를,

내가 책임지기로 한 일이었다.


그 청년이

내 옆에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비자는 단지 체류허가가 아니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끝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다.


다음 편 예고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준 비자였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걸 ‘스페인 체류 수단’ 정도로 여겼다.


약속은 없고,

계약만 남긴 사람.


— 다음 편, 나를 수단으로 삼았던 사람의 이야기.



당신의 작은 반응 하나가,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연재 안내

이 에세이는 실명으로 연재되는 회복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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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해도 괜찮아》 :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말 한마디 못한 채 끝난 결혼,

이제는 나를 위해 입을 여는 이야기.

《루나의 세비야》 : 매주 화요일, 토요일, 일요일

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된 도시,

세비야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진실, 유죄》 : 매주 목요일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시대.

그럼에도, 말해야만 회복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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