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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Sep 18. 2020

다시, 이팝나무 꽃잎이 필 때까지

#3. 아빠의 발.

아빠에게 다녀오는 길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컨디션이었는데

아빠는 오늘 점심으로 만둣국에 들어있는 만두 두 알을 채 다 먹지 못했다.


식탁 밑에 뭐가 떨어져 주우려 하다가, 아빠의 포개진 두 발을 보았다.

발은 미라같이 새까매져 있었고, 발톱은 모두 불투명한 하얀색으로 변색되어 있었다.


뭘 떨어뜨렸는지 잊어버리고는 아빠 발을 한참 보았다. 슬픔이 해일처럼 넘쳐흘렀지만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을 안으로 집어넣으려면 하늘을 쳐다보면 된다. 어려서부터 잘 울던 내가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을 때면 나오는 눈물을 다시 집어넣으려 천장을 보곤 했다. 그렇게해도 눈물이 차오르면 흐를 수밖에는 없겠지만.


다음 주면 두 번째 시티 결과가 나온다. 아빠는 총 8번의 항암을 마쳤다. 아빠에게 독이 16주 동안 쌓여가고 있다. 항암제뿐만 아니라 한 끼에 먹는 십 수 알의 약들 또한, 아빠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겠지.


아빠는 아파트 단지 내 흔들거리는 그네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신다. 오늘도 엄마와 다정히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왠지 손을 오랫동안 잡고 있고 싶었는데, 아빠 손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원래 수족 냉증이 있는 내 손보다 차가운 손은 별로 없는데.


1미터, 2미터.. 아빠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원래 슈퍼 동안에 엄청난 머리숱을 뽐내던 아빠였는데, 이제는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노인 같아 보인다.


돌아오면서, 동생에게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다. "아빠 너무 병자 같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은, 끝까지 믿어지지 않는 법이다.


만두 두 알, 시꺼매진 발, 케모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어깨, 엉덩이 뼈까지 드러나 맨바닥에 앉을 수 없어 벤치에 갈 때조차 수건을 깔고 앉아야 할 정도로 마른 아빠의 몸.


그 모든 현실을 대하고도 나는 아직까지, 이 모든 것이 꿈인 것 같다. 내가 잘못해서 꾸는 나의 악몽.


이제 다음 주 화요일이 정말 며칠 안 남았다.

기적을 기도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 아빠가 실망할까 봐. 그게 제일 무섭다.

이렇게 몸을 갈아 항암을 하고 있는데, 너무너무 힘들지만 엄마와 우리를 위해 꾹 참고 견뎌내고 있는데

암덩어리들이 많이 없어져버려서 아빠가 힘을 내야 하는데,

아빠의 기대만큼, 우리의 기도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봐

사실 매일 너무 두렵다.


그러면서도 나는, 하루를 잘 살아간다. 만두 두 알로 한 끼를 먹지도 않고, 사사로운 마음으로 감정의 사치를 부리기도 하고, 갖고 싶은 것을 인터넷 쇼핑으로 사기도 한다. 이렇게 글도 쓰고, 야구도 본다.


아빠를 대신해서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막상, 내가 암에 걸린다면 그 독한 항암을 견뎌낼 수 있을까? 난 아마 항암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제주도 같은 곳에 가서 바다를 보면서, 통증을 다스리며 삶을 정리할 것 같다. 왜냐면, 항암을 이겨낼 용기가 내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빠는 처음보다 16킬로가 빠진 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매 시간을 불면과 엄청난 고통과 공포를 마주하면서도 울지도 못한 채.


무력감이 엄습해온다. 아빠의 까매진 발을 보니, 아빠의 속 안은 어떨지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암도 나쁘고, 항암제도 나쁘다.


까만 발이지만, 귀여운 우리 아빠.


우리에게, 시간을 좀 더 주세요.

아주 많이요.


아빠가 1도 안 아픈 시간을 허락해주세요


힘들다 나도, 슬퍼서 힘들고, 아빠 보기가 힘들어서 힘들고

그런데 그것조차 미안하다.


오늘은 좀, 나도 많이 자신이 없어진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고통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고양이로 변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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