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을 오게 되면 늘 먹거리로는 '충무김밥', '꿀빵'을 꼽는다. 실제로 생활을 하다 보면 제일 만만하게 때울 저녁 메뉴는 충무김밥에 시래깃국이고, 간식은 꿀빵이다. 하지만 통영은 끼니를 '때우'기만 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싱싱한 해산물이 많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섬에서는 각종 양식장이 줄지어 있다. 그렇게 올라오는 싱싱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만드는 음식들, 개인적 취향과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집들을 잘 섞어서 한번 쭉 정리해보았다.
1. 심가네 해물짬뽕
개인적으로는 짬뽕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짬뽕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늘 남들은 짬뽕과 짜장면을 고민할 때 망설임 없이 짜장면을 골랐다. 근데, 통영 짬뽕은 다르다. 그냥 동네 중국집이어도 다르다. 단순히 수산물의 질의 차이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집은 '심가네 해물짬뽕'이다. 가끔 강구안쪽을 돌다 보면, 이전 글에서 소개했던 도다리쑥국을 잘하는 분소 식당과 이곳을 늘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다리쑥국 시즌이 지나고 나면 이곳을 늘 많이 가곤 했다. 매주 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다.
메뉴판을 보면, 해물짬뽕, 하얀 짬뽕, 전복짬뽕 등이 있으나 웬만하면 2인 이상 가서(소식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3명까지도 같이 먹어봤다.) '심가네 해물 특짬뽕'을 시켜 먹는 것을 추천한다. 나름 지역분들만 알고 있던 숨은 맛집이었으나, '알쓸신잡'에 한번 방영된 이후 외지 분들도 많이들 오시는 집이 되어버렸다.
2. 대풍관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음식점이다. 겨울 통영은 굴의 도시라고 생각한다. 통영의 겨울은 축축하지만 정말 한겨울이 아닌 이상 영하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난 겨울을 하늘에서 내리는 눈보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굴로 느꼈다. 국내산 굴의 약 55%는 통영에서 난다. 아침에 운동 겸 산책을 나서면, 평소에는 조용하던 공장 몇 건물에서 기계음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박신장이 돌아가는 소리다. (사실, 박신(剝身)이라는 말을 여기서 처음 들었다. 사전을 뒤적이면서 찾아보니 역시나 '어패류의 껍질 등을 제거하다'라는 뜻이다.) 그 분주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이 중앙시장을 들를 시기가 온 것이다. 싼 가격에 굴을 엄청 많이 살 수 있는 시기다.
그렇게 관사에서 먹을 회와 생굴을 포함한 여러 해산물을 산 다음에, 중앙시장 중에서 이곳, 대풍관을 들른다. 이미 여러 방송을 타버린 바람에 나만 아는 맛집 느낌은 아니지만, 여기 굴 요리는 확실히 다르다. 굴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여기 굴만큼은 비리지 않고 맛있다며 잘 먹고 간다. A~C코스가 있는데, 비싸도 A코스를 추천한다.(굴해물모듬찜, 바지락무침, 굴전, 굴탕수육, 멍게유곽비빔밥/굴밥 중 택 1, 해물된장찌개) B, C도 훌륭하지만 A를 먹고 나서 먹으면 뭔가 아쉬운 감이 있다. 관광 목적으로 가시는 분들은 A를, 머무르며 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A~C를 다 먹어보시는 편이 좋다. 분명히 빠져들 것이다.
*봄/여름에는 메뉴가 바뀐다. 굴을 즐기시고 싶다면 꼭 겨울에 가야 한다.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수증을 들고 동피랑 마을 입구 옆 리치망고에 가면 500원 음료 할인이 가능함.
3. 다찌
남해안 지역에는 지역마다 선술집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이것도 통영 와서 처음 알았다.) 진주는 실비집, 부산/마산/창원은 통술집. 그리고 통영의 경우 '다찌집'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름에서 일본어의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누군가는 이 말을 일본어 '친구'를 의미하는 '토모다찌'에서 따왔다고 하고, 누군가는 일본어 '다찌노미', 번역하면 ‘선 채로 마시는 일.(술집에서 선 채로 술을 마시다)’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후자가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지금도 일본에는 다찌구이(立食い)라고 해서 역전에 우동이나 소바 등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이 다찌집의 특징은 바로 음식과 술이 나오는 시스템이다.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술을 많이 시킬수록 안주가 많이 나오는 시스템'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고로 메뉴판에 안주 종류가 없고, 술값이 한병한병 비싸다. 안주는 그날그날 잡히는 싱싱한 해산물 요리다. 당연하겠지만, 맛있는 음식일수록 술을 더 시켜야 나온다. 진정한 술꾼들을 위한 시스템이다. 더 많은 음식과,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면, 술을 계속 먹어야 한다. 그 뒷 메뉴가 뭘까 뭘까 하면서 술을 계속 시키게 되는 재미가 있다.
요즘은 술을 많이 줄이는 추세이니만큼 이렇게 전통 다찌집과 달리 최근엔 1인당 한상차림을 내오는 이른바 '반다찌(한상차림에 술을 더 시키면 안주가 더 추가되는 방식)'집이 많아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전통 다찌집을 찾기가 더 어렵다. 다찌집은 괜찮은 곳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는 항남동에 있는 대추나무다찌(055-641-3877)를 좋아한다. 그 외 항남동에 자리한 물보라다찌(055-646-4884), 벅수실비(055-641-4684), 정량동의 강변실비(055-641-3225) 등이 있고, 무전동의 호두나무실비(055-646-2773)와 토담실비(055-646-1617), 봉평동의 울산다찌(055-645-1350)도 많이 알려진 다찌집들이다.
4. 니지텐
텐동은 일본식 튀김을 올린 덮밥이다. 올라가는 튀김 종류는 주로 새우, 단호박, 오징어, 가지, 연근, 꽈리고추, 붕장어, 온천 달걀 등이 있다. 대개 튀김이 덮이는 작은 그릇이 얹어져 나오는데, 이 그릇에 튀김을 덜어가며 먹는다. 튀김이라는 음식 자체가 혼자 사는 입장에서 해 먹기가 까다롭고 뒷정리도 귀찮다. 그러다 보니 기름이 땡기는 날이면 가던 맛집이 여기 니지텐이다.
여기 또한 오래전부터 인기가 많아서 한번 먹어보려면 대기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주말에는 안 가고 평일에 사람 없을 시간에 갔다.) 거기다 테이블 수도 적어 회전율도 느리며,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관광으로 오시는 분들은 오픈 시간 전인 11:30 이전에 오시는 것을 추천한다. 예전에 어떤 친구 관광시켜준다고 주말 10시에 갔는데도 줄이 서 있었다.
가격 자체는 조금 비싸 보일 수 있으나 다른 텐동집들의 퀄리티를 생각해봤을 때 오히려 적은 감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맛있다. (비교대상: 샤로수길 텐동 요츠야, 합정역 타치가와텐) 스페셜텐동, 에비텐동, 니지텐동 3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격 순은 스페셜->에비->니지텐동 이지만, 개인적으로 스페셜->니지->에비텐동 순으로 맛있는 것 같다.
이 집은 메인 자체의 맛도 맛이지만, 옆에서 받쳐주는 명품 조연들이 있다. 밥새우와 사이드 메뉴인 바질 페스토 토마토인데, 밥새우는 밥에 같이 비벼 먹으라고 주는 갈아놓은 새우인데, 밥의 맛을 더 풍성하게 해 주고, 바질 페스토 토마토는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다른 곳 텐동집도 유자 토마토 같은 토마토로 만든 사이드 메뉴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여기 사이드 메뉴가 제일 괜찮았다.
5. 원은수산
주머니는 텅텅 비었는데, 회가 먹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막썰이 횟집을 찾게 된다. 그중에도 북신시장에 있는 원은수산으로 가면 된다. 차를 마련하기 전, 여기에 처음 갔을 때, 택시 아저씨 반응이 재미가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말하는 거 보니 서울 아 같은데, 우째 알았지?'... 뭔가 나만 알고 있는 맛집을 빼앗긴 듯한 반응이었다. 하긴,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도 시장 안에서 조금 헤매고 찾을 정도로 구석에 있긴 했다.
그럼에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집이다. 남자 4명이서 5만원으로 회를 먹을 수 있는 어마 무시한 가성비를 자랑한다. 대신 막설이 횟집이다 보니 비주얼적으로 일식집의 정갈함보다는 막설이 회 특유의 정겨운 투박함이 있다. 가시가 씹힐 수 있으니, 아이들과 함께 가기는 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횟집이다. 소주를 부르는 횟집이다.
여기의 또다른 장점은 서비스로 주는 산낙지와, 매운탕이다. 보통 산낙지는 그렇다 쳐도 매운탕은 일정 금액을 내고 먹는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다. 굉장히 착한 가격이다. 이곳을 알고 나서 요즘 서울에 올라와서 회를 먹게 되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맛이 더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격이 착한 것도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