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통영 바닷가를 떠나게 된 것을 축하한다. 그리고, 한창 새로운 생활을 기대하는 너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앞에 있는 가시밭길에 온 것을 환영한다. 이미 뉴스로는 보고 있을거야,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 아직은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섞여서 기사가 나가고 있을텐데, 조심해야 할 거야. 일반적인 독감과는 다르게 꽤나 고약한 녀석이거든.
너가 서울로 도착하자마자 이 병은 이제 중국을 넘어서 2월에는 아시아, 3월말까지는 아마 전 세계로 퍼질거야. 그리고 너의 모든 생활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지내는 일이 더 많아질 거야. 왜냐하면 전국적으로 4명 이상 모이지 못하게 나라에서 규제를 만들거고 사람들도 서로가 닿는 것조차도 조심하는 시대가 올 거거든. 5명인 우리 가족은 이제 강원도 본가에 모여도 가게 눈치가 보여서 외식을 못 할 거야,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올거야. 그리고 더 안타까운 소식을 알려줄게, 이게 대략 3년 간다.
아니다, 사실 지금의 너에게는 오히려 좋은 소식일거야, 그래, 너는 코로나 시국을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기도 할거야. 선천적 집돌이, 넓지않은 인간관계, 왁자지껄한 것보다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까지. 그냥 주변이 어수선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아플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피로감은 있을지언정 너에게는 오히려 딱 맞는 시대가 찾아온 거기도 해. 회식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모이기보다는 흩어지는 것을 중요시하는 세상, 10시 이후에는 가게도 닫아서 한적해진 거리까지 너가 상상만 해봤던 것들이 이루어질 거야. 그야말로 너의 세상이지. 그 증거로, 너는 너희 회사에서 코로나를 제일 늦게 걸린 사람이라는 타이틀도 얻게 될 거야.
이렇게 써놓고 지금 돌이켜보니, 어쩌면 몇년이 지난 지금 2024년의 내가 봤을 때, 이 디지털 중독 경험은 어차피 한번은 무조건 넘었어야 할 산이 아니었을까 싶네.
아무튼 이런 환경적으로 좋은 핑곗거리와 너의 성향으로 인해서, 너의 디지털 중독 생활이 시작될거야. 넷플릭스라는,이름만 들어봤던 OTT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지겠지. 2021년 말까지는 뭐가 문제인지도 모를거야. 2022년 여름부터 조금씩 눈치를 챌거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몸이 안 좋아서 오는 불쾌감,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느낌이 주는 외로움, 모니터 스크린 너머로 나갈 수 없다는 무력감이 생기면서 힘든 시간이 시작될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너가 힘들어할 사실은 21년부터 22년까지 핸드폰 사진 갤러리에 사진 한 장도, 써놓은 일기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일거야. 한마디로 2년을 도둑맞는 거지.
그래도, 괜찮아. 고생은 하겠지만 결국 길을 찾을거야.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 11편의 글이야.
그렇게 오래 걸려 돌아온 길 후에 2024년이 행복하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대답을 할 거 같아. 뭐랄까, 이제서야 겨우겨우 출발점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보면 이제는 이 생활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가는 것이 필요한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 근데 적어도 20년보다는 나은 삶이 널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위축되지 말고 잘 버텨주길 바라. 생각보다 오는 길이 마냥 괴롭기만 하진 않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