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당신도 나를 지나쳤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지만
그 누구도 들어온 적 없다.
오전 아홉 시와 오후 여섯 시 사이,
창밖 풍경도 마음도
한 장의 종이처럼 얇아진다.
손끝은 반복을 기억하는 법을
이미 오래전에 잊었다.
지문도 문장도 닳아 없어지고,
남는 건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엔터와 저장.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매번 다른 무언가를
입력하고 지우고 입력한다.
그러나 어쩐지
그 모든 내용은 다 똑같다.
눈동자는 흐릿한 문서의 줄을 따라가고,
어깨는 시간보다 먼저
접힌다.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스크린에 반사되어
내 얼굴을 흐리게 만든다.
누구도 그것이 내 얼굴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어떤 날은 문장이 부서지고,
어떤 날은 마침표조차
누르지 못한다.
복사된 하루는 오늘이 아니라
어제와 내일의 연장선일 뿐이다.
퇴근은 저장이 아니라
삭제로 이뤄지고,
남는 것은
문서 번호와 파일명,
그리고 불러올 수 없는 감정들.
나는 묻는다.
이 하루가 정말 저장되었냐고.
그러면 스스로 답한다.
“이 파일은 이미 존재합니다.”
from. 문서작업 인력